엽서 / 천수호
이건 멀리서 바라보는 불 켜진 창이다. 집의 따스함을 축약한 겨울 유리창. 엽서 한 장을 앞에 두고 불 켜진 너의 세계를 두드린다. 안방에 드러누워 두 발 높이 치켜들고 가위질하며 이 엽서를 읽게 될까. 통째로 하나의 창(窓)인 엽서에 불을 켠다. 침향을 하나쯤 피워도 좋겠다. 향불 끝에 남아 있는 작은 불씨를 타고 연기가 긴 꼬리를 끌수록 할 말은 더욱 유연해진다. 그렇지만 말은 또박또박 그리고 짧게 끝내야 한다.
먼 곳으로부터 그것이 날아올 때가 있다. 내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이국의 여행지에서 그 땅의 언어로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을 엽서에 적어 보내오는 것이다. 어느 상공에서 맞은 빗방울일까. 가끔 글자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잉크가 번져 있기도 하여 먼 데를 돌아서 당도한 엽서 한 장은 더없이 애틋하다. 어떤 때엔 당황스럽게도 사각의 엽서 한 장에서 이국의 매미울음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내가 이방인이 될 때에도 엽서는 늘 따라다닌다. 그곳의 엽서를 구할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한 일이다. 그곳 풍경이 담긴 미끈한 엽서 한쪽 면에 향기 넘치는 꽃의 말을 꼭꼭 눌러쓴다. 문자가 얼금얼금 피운 꽃이 정녕 너에게 가려는 말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그 허공을 조각조각 엮어서 어떤 기묘한 공간을 만들고 그것을 누군가 앞에 부려놓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럴 때는 쓰기 위한 엽서라기보다 편안히 베고 싶은 베갯잇이라고 해두자. 가끔 너에게도 슬쩍 빌려주는 그런.
누구에게나 애틋한 엽서 한 장쯤 보내고 싶을 때가 있다. 나도 그러했다. 네가 아파서 오로지 연명(延命)이라는 절실한 하느님의 엽서만 기다리던 때였다. 내 목소리는 도무지 네게 들리지 않을 때였으므로 그즈음 내가 너를 잡아둘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엽서를 띄우는 일뿐이었다. 내 엽서는 어떤 때는 매일, 어떤 때는 두세 개가 함께 네게 당도했다. 너는 그것을 읽을 힘조차 없어서 한 줄씩 한 줄씩 아껴 읽는다 했다. 살아 있는 모든 소리들을 축약한 생의 화급한 몸부림이 아름답다고 썼다. 그리고 어떤 때엔 다락방에서 내다보는 기하학적 하늘을 너와 한 조각씩 나눠 가지고 싶다고도 했다. 너를 붙잡을 수 있는 밧줄은 다 던졌던 시간이었다.
세상에! 그래서인지 지금도 너는 내 곁에 있다. 여전히 내 창에 불을 켜게 한다. 네가 떠나지 못한 것은 저 불 켜진 창 때문이다. 엽서 칸칸마다 그렇게 많은 불들을 켜뒀으니 너는 나를 견뎌냈을 것이다. 어떤 날의 엽서 끝에 나는 ‘내 의식의 점화는 오로지 너라는 뜨거운 화약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다. 너는 그 화약이 엉뚱한 곳에서 터질까 봐 얼마나 힘겹게 추켜들고 있었을까. 너의 엉거주춤함이 크리스마스트리의 꼬마전구처럼 내 의식을 얼마나 사랑스럽게 깜빡여주던지……. 나는 엽서를 쓰다 말고 먼 별 하나를 끌어내려 엽서의 사각 창 안에 꼭 눌러 박는다. 그 별이 마냥 너인 듯이.
오늘 내가 받은 이 엽서. 이건 아무래도 아주 미세한 것을 확대한 사각 돋보기다. 그렁그렁한 몇 마디의 말이 도톨한 육체를 갖는다. 보고 싶다는 너의 말에서 나는 네가 그렇게 보여주려 하지 않던 네 알머리를 어느새 만지고 만다. 그러고는 이 사각의 창을 열고 어디 멀리까지 날아가서 미친 듯이 날개를 퍼덕였다가 돌아온다. 이제는 나의 불 켜진 창으로 네가 기웃기웃 자주 날아들 거라는 이 기쁨…….
엽서는 이렇듯 우리를 서정의 영역으로 바짝 당겨놓는다. 다 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만의 신호가 서로를 열게 하고 또 스미게 한다. 읽기도 전에 이미 두근두근한 설렘이다. 절제하고 축약한 시(詩)에 가까워 ‘공개’라는 엽서의 형식에 딱 맞다. 엽서 한 장을 받을 수 있다면 듣고 싶은 말이 착하게 공개되더라도 두렵지 않다. 엽서는 어두운 눈길을 헤매다 만나는 따뜻한 인가의 창(窓)이므로 염치도 없이 그 창을 두드리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