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의 꽃 / 박귀숙

 

 

계산을 마친 첫 고객이 사탕 하나를 건네며 빙긋이 웃는다.

“애쓰셨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네, 감사합니다. 고객님도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계산대를 빠져나가는 고객을 향해 인사를 건네는 내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우연히 신문 전단에 이마트 사원모집 광고를 보고 지원서를 제출했더니 덜컥 합격이 되어 2007년 10월 3일에 입사했다. 처음엔 다른 직업을 찾기 전에 잠시 거쳐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이마트에서 근무하고 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수학을 무척 좋아하다 보니 수학 선생님까지 좋아했었다. 그렇지만 그건 공부고, 캐셔로 일하는 건 다르다. 그리고 나는 계산하고 따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말이다.

캐셔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정신적 육체적인 노동자다. 거기에 또 하나 감정노동자다. 근무 시간을 이탈할 수 없고, 신속 정확 친절하게 고객을 응대해야 하며, 계산할 때는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그날의 행사 내용과 자주 업데이트되는 업무 등을 숙지해야만 빠르면서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마트의 꽃’이라 할 정도로 계산대의 최접점에서 캐셔의 역할과 태도는 아주 중요하다. 그래야만 고객이 마트를 다시 찾아올 수 있다.

최근 셀프계산대가 설치되었다. 그 후 캐셔가 결원이 생겨도 자리를 메꾸지 않는다. 고객의 신속한 계산과 편의성을 위함이란다. 하지만 한 사람이 셀프계산대 여섯 개를 관리하니, 바쁜 주말엔 호출하는 고객이 많아 더 힘들다.

“여기요.”

“고객님, 뭐가 문제인가요?”

“기계가 고장이 났는지 계속 창이 떠서 안 돼요.”

“네, 이 고객님 다 끝나가니 잠시만요!”

도와주고 있던 고객의 계산을 마치자마자 부랴부랴 뛰어가 보면 상품을 스캔하지 않고 포장 대에 넘겨 제대로 안 되고 있었다.

“제가 찍었을 때 분명 소리가 났단 말이에요.”

“아, 그러시면 화면에 상품이 찍혔는지 확인하고 포장대로 넘기면 되어요.”

내심 화가 나기는 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게 감정노동자의 현실이다.

또 여기저기서 호출이다. 기계가 제대로 안 된다는 둥, 포인트를 사용하려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둥, 이유도 제각각이다. 기계는 터치하면 움직일 뿐인데 처음 대하는 고객들은 어렵고 어색하다. 창이 뜰 때마다 선택하고 다음 단계로 넘겨야 하는데 할 때마다 헷갈린단다. 그러니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그래도 어쩌랴. 일반 계산대가 부족한데 말이다.

꼼수처럼 보인다. 계산대의 인력을 줄여 타 부서의 빈자리에 배치하면 인건비가 절약되기 때문이 아닐까. 회사는 셀프계산대를 ‘스피드계산대’라 칭하면서 신속함과 편리함을 내세운다. 거기에 더해 ‘고객의 안전한 쇼핑을 위해 CCTV가 녹화 중입니다.’라고 녹음된 음성이 들린다. 상품의 로스를 예방하기 위함이 숨어 있는데…. 어쩌다 고객들은 계산이 빠르고 잘 되면 신기해하면서도 캐셔의 일자리를 염려해주기까지 한다. 캐셔도 마찬가지로 본연의 업무가 없어질까 걱정이다.

일부 고객들은 일반 계산대를 선호한다. 그들은 여태 해왔던 것에 익숙해 있고 사람이 직접 계산해야 신속하고도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고객은 대면 업무라 놓칠 뻔했던 행사 정보까지 알 수 있어 더할 수 없이 좋단다.

어느 날 금자 씨를 닮은 고객한테 쫓아가 인사했더니 내 친구가 아니었다. 그 순간 멋쩍어했지만, 지금은 그 고객과 인생 선배 같은 관계가 되었다. 계산할 때마다 고객 또한 굳이 나를 찾아오기까지 한다. 그것도 인연이라 고맙기만 하다.

또 어떤 고객은 계산하는데 내 말씨가 불친절하다며 사투리를 고치라고 한 적이 있다. 오십 년 넘게 사용한 사투리를 어떻게 하루아침에 고칠 수 있단 말인지…. 어이가 없긴 했지만, 고객님이 잘 안 들린다고 해서 큰 소리로 말했던 건데 그게 화난 것처럼 들렸나 보다. 내 설명 끝에야 고객도 오해했다면서 그다음부터는 ‘최우수 캐셔’라고 칭찬하며 꼭 나한테 찾아와 계산한다.

그렇듯 여러 고객을 대하다 보니 내가 마음을 다할 때 고객도 감동하고 고마움을 표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곧 정년퇴직을 앞두고 일터로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기도 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더 크다.

그동안 이마트가 내게 휴일을 안겨주어 자기 계발과 취미활동에 활력소가 돼주었고, 숨통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힘들 때마다 따듯한 동료들의 응원과 가족 사랑의 힘으로 즐거운 삶을 선물 받지 않았던가.

갈수록 기계가 대체되는 세상에 고객은 소통을 원하고 있다. 기계는 인간의 감정을 다독여 줄 수 없다. 시대를 거스를 수는 없다지만, 유통의 변화로 ‘마트의 꽃’이 사라져가니 내심 씁쓸하다. 고객과 함께해야 따듯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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