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 / 박호선
죽도어시장은 생기가 넘친다. 질펀한 바닥에 장화 신은 사람들이 왁자지껄 소란스럽다. 비릿한 냄새가 물씬 풍긴다. 먼바다에서 잡혀 온 활어가 눈길을 끌어당긴다. 수족관 유리 벽에 빨판을 붙이고 있는 큰 문어도 보인다. 동해에서 수족관으로 옮겨온 어떤 놈은 눈을 지그시 감고 이 상황을 헤아려 보는 듯하다. 그중 한 놈이 눈에 들어온다. 흥정이 이어지고 지갑을 연 손님이 짙은 바다 냄새나는 문어를 받아 든다. 주인이 바뀌는 순간이다. 그는 얼른 어물전을 빠져나간다.
어물전에서 십여 년간 세월을 보냈다는 김씨 아주머니는 고물거리는 문어를 치켜들고, 값을 물어보는 나에게 말한다.
“요놈은 뼈도 없는 생물이 참 영리해요. 어쩌다 손에서 미끄러져 놓치면 머리를 치켜들고 왔던 길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꼭 바다 쪽으로 달려가더구먼요.”라고 덧붙인다. 여덟 개의 다리 중 두 개는 탐색하거나 사냥하는데, 쓰이고 여섯 개는 이동할 때 균형 잡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얼마 전 어업권을 가진 지인을 통해 문어잡이 하는 배를 타고 통발 어업에 나섰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부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파도에 흔들리는 스티로폼은 녹색 신호등 같았다. 넓은 바다에서 그 가벼운 것이 어부들에게 이정표가 되었다. 쉴 틈 없는 바다 위에서 어부는 문어가 든 통발을 반가운 손님 맞듯 했다. 먼저 던져 놓았던 통발은 건져 올리고, 또 다른 통발을 넣으며 만남과 배웅을 거듭하였다. 통발에는 희비애락이 함께 들어있었다. 밧줄에 매달린 통발을 끌어 올릴 때 손에 닿은 감각으로 어획량을 감지할 수 있지 싶었다.
문어는 바닷속에서 숨바꼭질하며 어느 때는 돌멩이처럼 둔갑해 스스로 몸을 감춘다. 빈 통발만 끌어 올리는 어부는 애간장이 탄다. 어쩌다가 잡힌 문어들은 물통에서 거품 꽃을 뽕뽕 뿜어낸다. 문어 색은 붉은 갈색빛에서 흰빛으로 변하기도 한다. 좁은 공간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 이내 적응하는지 숨 고르기를 하듯 빨판을 모으고 조용해진다.
文魚는 복잡한 뇌를 가졌다고 한다. 장기 기억과 단기 기억을 지니고 있으며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 해결을 익힌다는 것이다. 한 번 어떤 문제를 해결하면 기억하는데, 비슷한 문제가 생겼을 경우 그 기억을 소환한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文語라는 글월 문자가 내 마음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어떤 문체에 골몰하다가 나만의 문어라고 생각하는 선생님을 찾아 나섰다. 그에게는 촌철살인의 비결이 숨어있을 것 같았다. 나는 어부같이 바다에서 문어를 잡듯 글을 건져내고 싶었다. 늘 책을 들고 다녔지만 내실 없이 겉멋만 들어있음을 깨달았다. 文語가 가슴에 출렁거렸다. 미지의 망망대해를 향해 노트북 앞에 앉아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들겼다. 그러나 文語는 늘 미끄러지며 내 손에서 벗어났다. 갈지자를 그리며 허둥대기만 하였다.
선장에게서 문어 잡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나만의 문장을 찾아 나섰지만, 넓고 모호한 바다에 내린 내 통발에는 쓸모없는 언어들이 걸려들었다. 이름도 모르고 먹을 수 있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은 잡다한 물비린내 나는 쓸모없는 고기들만 잡혔다. 채 자라지 못한 치어들로 가득 찼다. 손가락 끝이 아릴 때쯤이면 가끔이나마 진득한 빨판 같은 게 딸려 올라오기도 했다. 文語를 찾은 기쁨은 큰 文魚를 낚아 올린 어부의 마음이지 않을까.
글을 쓰며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 보았다. 文魚 먹물로 쓴 글씨는 오래도록 변치 않는다고 하니 나도 그 먹물에 찍은 문장 하나를 쓰고 싶다. 언제가 되어야 읽는 이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을 글 한 편을 세상에 내어놓을 수 있을까. 찐득한 빨판을 기다리며 자판을 향해 다시 손가락을 뻗곤 했다. 수족관에서 나온 文魚 빨판이 주인 손등에 찰싹 붙는다. 어쩌면 문어의 끈질긴 생명력은 포기를 모르는 수백 개 빨판에서 나오는 힘인 것은 아닐까.
내가 바라는 文語도 희망을 놓지 않는 손끝에서 나타날 것인지? 깊은 바닷속 갯바위 틈에 몸을 낮추어 사는 文魚 사이에 가느다란 줄 하나가 이어지는 순간을 그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