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따라 / 박순태

 

 

통성명이 묘하다. 꽃자루에 잔털이 가득한 덩굴풀이 ‘며느리밑씻개’란 표찰을 달고 있다. 이제껏 이름도 모른 채 지나쳤던 낯익은 풀을 들꽃학습원에서 다시 만나 정식 인사를 나눴다.

풀의 생김새를 다시금 세세하게 관찰한다. 풀이 자신의 속내를 보여주려는 듯 바람결에 삼각형 잎을 나부끼며 줄기를 살며시 드러낸다. 마디가 있는 네모난 줄기가 덩굴을 이루었다. 잎을 따서 잘근잘근 씹어보니 시큼 새콤하다. 줄기를 꺾어 비벼보니 까칠한 돌기에 손바닥이 따끔거리고 스치기만 해도 피부에 붉은 줄이 생긴다. 상생과 공존에는 포용이 따라주어야 하건만 외형상 공격성 침을 달고 있어 미덕과는 거리가 먼 성질이다. 여느 덩굴식물과 다름없이 부드럽고 여리게 보이건만 실체는 그윽이 앙큼하고 공격적이다.

초명草名의 연유를 파고든다. 자손만대의 바탕이 될 며느리의 은밀한 신체 부위, 세상의 기원인 그곳을 도출한 진의가 의문스럽다. 풀의 속성상 건강에 특별한 효험이 있다는 말인가. 겉으로 드러난 모양새를 두고 고부간의 갈등을 의역으로 풀어낸 은어일까. 전자이면 부인병에 효험이 있다는 긍정을 내포한 이름일 게고, 후자이면 시어머니의 민낯을 도려낸 것이리라. 이래저래 해석하자니 골계미와는 거리가 먼 허드레 명칭 같다.

여섯 글자 명칭을 곱씹다가 근처 팔각정 쉼터로 자리를 옮겼다. 중년을 넘긴 여인이 핸드폰을 잡고 넋두리를 풀어내느라 정신이 없다. 인상을 찌푸린 채 침까지 튀기며 한껏 열을 올린다. 생수통 뚜껑을 열어 목을 축이는 시늉을 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요새 젊은것들 시어미 알기를 부뚜막 강아지로 알아.”

저쪽 늙은이가 맞장구를 맞췄는지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간다. 아마 우리 며느리도 마찬가지라는 돌림이 왔나 보다.

“오늘 아침에는 하는 짓이 하도 뭣해 그냥 밥숟갈을 던져버리고 훌쩍 나와버렸지.”

상대 늙은이의 후렴이 흡족하지 않은지 얼굴에 밭고랑 같은 주름살을 지으면서, “나는 이제 더 참을 수 없어.”라고 내뱉는다.

상대도 며느리에 대한 험구로 맞장구를 쳤는지.

“그 댁 며느리도 별수 없구먼그래, 우리는 시어미가 죽으라 하면 죽는시늉을 했는데.”

문득, 자갈길에서 짐이 잔뜩 실린 수레를 끄는 젖먹이 딸린 암소가 떠오른다. 동시에 할멈이 내뱉는 고부간의 갈등에서 조금 전에 봤던 풀이름의 전모가 드러나는 듯하다. 며느리를 둔 여성들의 마음을 저울질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집안의 여인열전을 빼놓을 수 없어 소환한다. 조금 전 씹었던 시큼 새콤했던 풀잎 맛을 다시며 작고한 할머니를 떠올린다. 생전에 보름달 같기만 하던 할머니였다. 고모님이 친정 와서 시댁의 내막을 꼬치꼬치 알렸을 때 할머니는 그런 말 입에 담지 마라며 호통을 쳤다. 그런데, 감기몸살로 삶은 시래기 같은 몸이 되었어도 들일이며 대식구의 밥상을 챙겼다는 하소연을 고모님이 토해내자, 며느리 몸 상태를 그토록 몰랐을까 하면서 저쪽 사돈네의 내리사랑을 두고두고 애통해하셨다. 하지만, 정작 당신의 며느리가 심한 고뿔을 앓으며 입술이 부르트고 불덩이 몸이 되었을 때 몸소 부엌에 들어가는 게 눈에 찍히지 않았다. 방에 들어가서 몸조리하라는 배려조차 없었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마음은 손바닥과 손등이었다.

명절 끝에 숙모님 넷이 한자리에 모였다. 여인들의 시집살이 사연이 넘쳐흘렀다. 첫째 숙모님이 사연을 털어냈다.

“딸 셋을 연달아 낳고 나서 어머님 눈살이 무서워 미역국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배턴을 받은 둘째 숙모님 왈.

“미장원에서 조금 색다르게 머리를 꾸미고 오던 날, 머리카락이 하늘 찌르겠다며 부릅뜬 눈으로 뱉어내는 어머님의 목소리에 주눅이 들어 원상태로 풀었심더.”

셋째 숙모님이 가담했다.

“저는 예, 어머님께 한 소리 듣고 울분이 치솟아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 세게 틀어놓고 훌쩍였다 아입니꺼.”

넷째 숙모님도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의 차이점을 겨울 날씨의 삼한사온에 비유하며 맞장구를 쳤다.

어머니의 행적도 그게 그것이었다. 내 아내는 시누이 넷이 결혼할 때마다 시댁에서 기죽지 않아야 한다면서 빚을 내어 혼수를 장만해주었다. 초등학교 3학년생 시동생을 시골에서 도시로 데려와 공부시켜 가정까지 이루어주었다. 종부로서 대소사의 궂은일을 가리지 않고 처리했다. 어머니는 며느리의 공을 알아주다가도 딸들이 들리면 합작하여 긁어 부스럼 생길 엉뚱한 목소리를 내곤 했다. 그런데 진즉 어머니는 목석의 인생이라며 타의 찬사를 듣던 주인공이 아니었던가.

자신만은 이중적인 시어미가 아니 될 거라며 다짐한 아내를 저울대에 올린다. 가끔 아들네에 들렀다 오면 며느리 찬사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손자 손녀를 밝고 건강하게 키우고, 이웃이 건네준 아이들 옷을 거리낌 없이 받아서 입히는 검소함에 잔뜩 녹아들었다. 그러다가도 귀를 거슬리게 하는 말을 내뱉곤 한다. 시댁에 들렀으면 며느리 노릇을 치러야만 하는데 뒷전으로 물러나곤 한다는 불평이다. 평소 잔잔한 말꼬리에 가시가 돋아났다.

개불알꽃, 중대가리풀, 소경불알풀, 오랑캐꽃, 아기똥풀꽃, 며느리배꼽, 며느리밑씻개 등 듣기에 기이한 이름들이 줄을 잇는다. 타고난 형체나 속성에 따라 이름을 붙이나 보다. 그런데 아무리 동류로 취급하려 들어도 마지막 하나는 독특하다. 이름자에서 시어미의 고약한 심사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며느리밑씻개. 배달민족의 텃밭인 며느리를 대하는 시어미의 마음. 이것 이상의 영원한 유전병이 어디 있으랴. 마음 따로, 이름 따로.

‘며느리밑씻개’, 시어미의 표리부동을 풀의 이름에서 읽는다. 이름 따라, 마음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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