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을 찾아 떠나다 / 최재남
여름이 끝나고 있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가보면 확연히 달라진 것을 느낀다. 어둠이 깔리는 시간대와 옷깃에 스치는 기온의 차이가 달라졌다. 계절이 물갈이를 하고 있다. 가을이 오고 곧 겨울이 올 것이다. 싱그러웠던 앞산은 어둡게 착색되어 칙칙해질 것이며, 내 의지와 상관없는 세월은 또다시 흘러갈 것이다.
여름내 빠졌던 것 중의 하나가 5절지에 사물을 그리고 연필로 채색을 하는 일이다. 화려한 색감과는 거리가 멀어 색을 입힌다는 표현이 그렇지만, 흰 도화지 위에 4B연필로 사과를 그리고, 주전자를 그리고, 나무를 그려내는 일은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밝음과 어둠은 작은 선 하나에도 미세한 반응을 보인다. 나뭇잎이 방향에 따라, 보여지는 각도에 따라, 달라보이므로 음영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어둠을 나타내기 위해 연필로 덧칠할 때는 새끼손가락이 까맣게 묻어나 초보임을 입증한다. 서투르지만 설렌다. 그 설렘으로 여름을 보냈다.
삼십여 년 전, 큰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갔을 때 여가활동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있었다. 집값 갚느라 생활이 여의치 않을 때였는데, 얼마 남지 않은 생활비를 몽땅 털어 유화물감과 붓을 샀다. 젊어서였는지 의욕이 앞섰고 빨리 잘 그려야 한다는 초조가 따랐다. 학교에서 하는 것으로 양이 차지 않아 몇몇 엄마들과 조를 짜서 같은 학부모인 화가에게 도움을 받기로 했다. 몇 개월이 지나자 처음 의도한 것과 다르게 모임의 순수성이 빗나갔고, 경제적으로 힘에 부쳤던 나는 그림을 그만두고 말았다.
삼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색연필로 동화를 그려 이야기책을 만들었는데, 그걸 그리며 어찌나 재미있고 신나던지 하루 종일 그 일에 매달려 시간가는 줄 몰랐다. 오래 묵었던 열망을 끄집어내어 다시 꿈을 펼치고 싶었다. 그 길로 문화센터로 달려가 등록을 했고, 어렸을 적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내 꿈에 조금 가까이 다가서는 줄 알았다. 첫 시간이 끝나고 전화를 받을 때까지 그런 기대로 부풀었다.
작은 아들이었다. 인파선암일지도 모른다고 실시한 검사에서 승모근으로 가는 신경을 잘못 건드려 팔이 안 올라가는 사고가 생긴 것이다. 의료사고는 모든 것을 단절시켰다. 급기야 연필을 잡았던 손은 덜덜 떨며 삿대질까지 해댔고, 변명을 해대는 의사 앞에 목청을 돋아 소리소리 질렀다. 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아름답던 선과 면들이, 곡선과 직선들이 마구잡이로 엉켜버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어지럽게 나뒹굴던 원망이라는 놈은 생활을, 삶 자체를 정지시켜놓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앞날이 창창한 자식의 몸을 내 어찌 감당할지. 캄캄한 절벽을 딛고 선 듯 무섭기만 했다. 언제 올라갈지 모르는 연극의 장막은 두텁게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순간순간을 색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핑크빛 사랑이라든지, 붉은 노을, 푸르스름한 새벽, 회색빛 도시, 암청색 바다, 그런 것들. 색깔은 명사를 꾸며 아름답고 몽환적인 느낌이 들게 하는데, 불행히도 내게 찾아온 것은 위험을 내포한 경고음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라든지 ‘머릿속이 깜깜해졌다’라는 말의 커다란 울림, 절망의 늪으로 빨려 들어갔다.
암전 같았던 재활의 시간을 견디며 강을 건넜다. 다시 못 올 것 같은 시간들을 견디고 견뎠다. 새까맣게 칠해졌던 시간들이 많이 흐려지고 연해졌지만 그렇다고 지우개로 싹싹 지워버릴 만큼 상처가 아문 것은 아니었다. 그저 먼 훗날 나쁜 기억이 소실점을 찍고 사라지길 바랄 뿐.
아침에 눈을 뜨면 이젤 위의 그림과 눈인사를 한다. 잘 잤어? 오 너 거기 그러고 있었구나, 난 역시 포기한 게 아니었어. 그리다만 나무 그림은 내게 말을 한다. 추워요 나뭇잎을 더 많이 그려주세요. 색을 더 많이 입혀주세요. 이젤 앞에 앉는다. 늦었지만 이젠 어떤 방해나 압력에도 굴하지 말자고, 비록 지금은 흑백에 빠져 있지만 더 많은 색과 만나 삶을 진지하게 토론해보자고, 나뭇가지는 작은 선들로 그려서 굵고 진하게 칠해간다. 무채색을 살리려면 음영을 잘 나타내야 해. 선은 드러내지 않은 듯 진한 색과 연한 색으로 경계를 살려야 해.
‘아직 남아 있는 여름의 나뭇가지 사이로 조각조각 보이는 회색빛 하늘’이나 ‘빛바랜 초가지붕 위의 눈이 부시게 하얀 박꽃’, ‘병아리 떼처럼 이름을 알 수 없는 노란 꽃들’, ‘파란 하늘 유황빛으로 반짝이는 태양’. ‘창백한 분홍색의 살구나무’, ‘흰 물감을 떨어뜨리면 온 세상으로 번져나갈 것 같은 코발트빛의 카프리 섬, 그 푸르고 넓은 바다’ - 그런 것들을 그리고 싶다. 색색의 물감들을 섞어 그에 맞는 몸짓을 칠할 수 있다면.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리스 섬의 포말을 일으키며 달려오던 바다를 그리려면, 노르웨이의 가공하지 않은 원초적 자연을 그리려면, 강원도 산골 어느 낡은 선술집의 오래 묵은 냄새를 그리려면…. 삶의 끝자락에 입혀질 색이 무엇일지 그걸 찾을 때까지 조율하며 음미하며 의지하며 그렇게 가볼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