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鋪道 / 송혜영
내 분노는 공정하지 않았다.
정류장도 아닌데 버스가 오래 지체한다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앞차와 시비가 붙었나 보다. 버스 운전사의 상반신이 반 넘어 운전석 차창 밖으로 나가 있었다. 먼저 젊은 남자와 어린 여자 몇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차에서 내렸다. 설왕설래가 길어지자 젊지 않거나 혹은 조금 늙은이 몇이 슬슬 버스를 버렸다. 이제 운전석 바로 뒤에 앉은 남자와 맨 뒷좌석에 높이 올라앉은 나만 남았다.
버스 운전사를 올려다보고 대거리하는 것 같던 앞차 운전사가 적극적으로 한 판 붙어볼 요량인지 드디어 버스에 올라탔다. 창밖으로 나가 있던 목을 급히 불러들인 버스 운전사도 뒤질세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럽쇼. 둘 다 여자다.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중년 아낙인데 급수가 달랐다.
꼬불꼬불한, 손질과는 무관한 지나치게 검은색 머리의 버스 운전사. 통풍이 원활해 보이지 않는 파란색 제복이 어색하다. 분연히 몸을 일으켰지만 살집이 없는 마른 체구가 몸으로 하는 싸움에서는 불리해 보인다. 핸드폰 폴더를 신경질적으로 내리면서 승차한 자가용 운전자. 균형 잡힌 육감적인 몸매다. 실크 처리한 연보라색 면 셔츠의 뒷깃이 세워져 있다. 굵게 웨이브를 넣은 갈색 머리는 꽤 공을 들인 모양이다. 그녀는 검지를 곧추세우고 곧 운전사의 미간을 찌를 듯이 기세가 등등했다. 억울한 듯 가슴을 탕탕 치던 운전사는 그때까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만큼 한가해 보이는 늙수그레한 남자에게 구원을 청했다.
“아저씨도 보셨죠. 제가 끼어들기 하지 않은 것 아시잖아요.”
남자는 별 말없이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한 시비에 말려들고 싶지 않겠지. 비겁이 몸에 밴 듯한 남자가 굼뜨게 버스에서 내리자 이제 버스에는 세 여자만 남았다. 내가 두 여자와 삼각구도를 형성하게 된 까닭은 굳이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야 할 만큼 바쁜 일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결말을 보고 싶기도 해서다. 언젠가 끝나겠지. 느긋하게 갈등의 현장을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증인마저 사라지자 싸움은 시간 끌기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갈색 머리가 또 핸드폰 폴더를 밀어 올렸다 내리며 목청을 높여 끈질기게 사과를 요구했다. 잠시 수세에 몰리는 듯했지만 검은 머리도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짙은 피로감이 몰려오고 있었다. 관찰의 재미를 넘어 나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이 밑도 끝도 없는 싸움을 끝낼 사람은 나뿐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됐다.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두 여자는 싸움에 골몰하느라 맨 뒷자리에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나를 의식하지 못했는지 좀 놀란 듯했다.
“뭐예요? 도대체.”
누군가 말려줬으면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두 여자 모두 반색하며 자기에게 유리하게 사태를 설명했다. 말허리를 끊고 현장을 보기로 했다. 버스의 앞부분과 자가용의 뒷 범퍼 사이가 10센티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충돌을 면한 걸로 보아 위협 운전이나 무리한 끼어들기의 혐의는 있어보였다. 버스 운전사는 고의성은 없다고 하고 자가용 운전자는 놀란 자기 가슴에 사과하라는 것이었다. 누구의 손을 들어주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뒤늦게 자가용 꽁무니에 돌출되어 있는 ‘VOLVO’라는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예기치 못한 대폭발이 일어났다.
“부딪치지 않았으면 다행이다 하고 갈 일이지, 당신이 뭔데 대중교통을 잡고 이 난리야!”
마지막 음절은 파열음이었다. 있는 힘껏 소리 지르느라 꽉 감았던 눈을 떠보니 볼보 운전자는 자취가 없었다. 버스 운전사만이 가슴께에 두 손을 모아 잡고, 끈끈한 동류의식과 더불어 약간의 경의와 큰 고마움이 흘러넘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운전사에게 호기롭게 출발을 외쳤다.
격정의 순간이 지나가자 목이 아팠다. 과도한 양의 데시벨을 생산한 성대에 무리가 간 듯했다. 만만한 데 말뚝 박는다고 버스 운전사가 남자라면 그렇게 사과하라고 날뛰었겠나. 그리고 자기가 그러라고 시키지는 않았지만 험한 생활전선에 뛰어든, 자기 또래 여자에 대한 안쓰러움이나 까닭 모를 미안함 정도는 있어야 되는 거 아냐. 그리 모지락스럽게 굴 게 뭐람.
다음 정거장에서 승객들이 타고 울분도 좀 숙지근해졌다. 그러자 조금 전의 포효가 어째 석연치 않았다. 마치 정의의 사도처럼 자가용 운전자에게 칼을 휘둘렀지만 대중의 발을 책임진 막중한 임무를 망각한 버스 운전사의 잘못도 물어야 했다. 사과 한마디면 간단하게 끝날 일이었다. 버스 운전사의 끈질긴 자기변호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목적지에 내리는 내 등에 대고 기사 아줌마가 활기찬 목소리로 다시 감사의 인사를 했다. 한 손을 들어주고 버스에서 내리는데 목은 아프고 입은 썼다. 입이 쓴 건 내 분노가 결코 공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만약 앞차가 소형, 아니 중형차 정도였더라도 그리 반응했을까. 자가용 운전자가 전화 한 방이면 너는 국물도 없다는 암시를 줄 때부터 슬슬 배알이 꼴리기는 했었다. 그래도 꼭 그게 다가 아니다.
재물은 팔자에 있어야 한다기에 그 부분도 접었다. 궁색한 대로 내게 허용된 한도 내에서 잘 살아보기로 마음먹지 않았나. 그런데 애초에 그게 문제다. 접었다는 말속에는 얼마간의 미련이 포함되어 있다. 세상사의 이런저런 자극에 접었던 것들이 곧잘 들썩거리곤 했다. 탐이 나는 것이 있어도 내 것이 아니야. 아니야. 그동안 표 안 나게 그럭저럭 잘 다독여 왔건만. 보통을 넘지 못하는 사람인지라 의식의 바닥에는 많이 가진 자에 대한 시기심과 못 가진 것에 대한 분노가 억눌려 있었을 것이다. ‘VOLVO’는 돌발적이면서 강력한 촉매제였다. 그리하여 마치 수백 년에 걸쳐 누적된 것 같은 분노의 대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더 깊은 산골로 들어가 세상과 인연을 끊는다면 모를까. 곧잘 저잣거리를 얼쩡거리니 이런 복병을 만나 못난 속을 내게 들킬 수밖에. 여태껏 돈을 벌기 위해 전력투구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건달 생활을 청산할 생각이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제 권력을 내려놓고 동지가 되자며 손 내미는 반려자에게도 크게 기대할 게 없다. 그렇다면 욕심을 접지 말고 아예 묻자. 그것도 열 길 땅속에 묻어버리자. 망령도 살아나지 못하게 한 석 달 열흘 달구질을 하자.
비장하게 각오를 다지는데 꽉 다문 입가가 나도 모르게 슬슬 풀어졌다. 빛의 속도로 내 앞에서 사라진 자가용 운전자의 바쁜 엉덩이가 떠오르며 웃음이 비죽비죽 새어 나왔다. 격노가 적빈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한몫을 했나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