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셋 / 박영란
버스 안은 모두 하객들이다. 빈틈없는 자리에 얌전히 앉아 서울까지 가야 하는 불편한 공간이다.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 온갖 불편한 것들이 들쑤신다. 몸에 착 밀착되어 있는 코르셋마저 스멀거리며 갑갑하다. 미세하고 질긴 섬유질이 숨구멍을 막고 있어 당장이라도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인다.
감촉 좋은 블라우스를 입을 때나, 모처럼 정장을 차려 입고 당당해 보이고 싶은 날, 혹은 오늘처럼 결혼식장 가는 날에는 무장을 하듯 코르셋을 착용한다.
갑옷이 몸을 보호하는 장비라면 코르셋은 몸을 보정해 주는 장치다. 가슴에서 엉덩이 부분까지 하나의 자루에 몸을 밀어 넣기. 자루에 밀가루를 넣으면 밀가루 포대가 되듯이, 코르셋 속으로 들어간 몸은 동일한 압력을 받으며 구조조정이 일어난다. 새우의 유선은 새우의 껍질 속에서 유지되듯, 방만한 몸통은 고무의 탄성을 받으며 단단히 조여든다. 뱃집은 살포시 들어가고 처진 힙은 올라붙고 등은 곧추세워진다.
동시에 호흡은 약간 거북해진다. 이때 말초신경은 온몸으로 긴장감을 전달한다. 몸이 긴장되면서 전달되는 의외의 만족감. 마치 얼굴에 화장을 하듯 몸에 코르셋을 덧씌우는 이 작업은 단지 몇 미리의 오차를 위한 노력이다. 뭔가 고양된 듯한 기분은 사실 알량한 자기만족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불편한 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에이, 다시는 이놈에 코르셋을 하나 봐라’ 하며 참고 있을 때, 도시락이 전달된다. 뚜껑을 열자 김밥의 오묘한 냄새가 확 퍼지면서 코르셋의 존재는 사라지고 만다. 불편한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계란의 부드러운 감촉과 단무지의 소리와 우엉의 쌉쌀한 질감이 어우러지는 맛을 씹는다. 문득 이 총체적인 맛을 싸고 있는 ‘김’이라는 놈이 보인다. 얇고 부스러지기 쉽고 찢어지기 쉬운 성질의 것이 더 단단하고 야물고 물기가 있는 것들을 감싸고 있다. 쭉쭉 늘어진 당근과 우엉, 계란, 시금치들을 가지런히 모아 조용히 밥 속에 가두고 있다. 김 속에 갇힌 야채들은 한 몸이 되어 김밥이 되고 있다. 아직 옆구리 터진 김밥이 없으니, 김은 여전히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김밥도 긴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버스에 탄 혼주야말로 정말 긴장되겠구나 싶었다. 차는 밀리지 않고 제시간에 도착할지, 결혼식은 별문제가 없을지, 하객들은 편안한지…이런저런 걱정을 싣고 차는 달렸다.
그런데 우아하게 한복을 차려입은 여인이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혼주의 노모인지 가까운 친척인지 모를 그 여인은 저고리의 옷고름에 손을 갖다 대더니, “마, 다 자식같응게 이 할매 옷 좀 벗을람미더”라고 한다. 그리고 저고리가 벗겨지고 치마가 벗겨진다. 그 안에는 적삼과 속치마의 말기가 노친의 가슴을 동여매고 있었다. 어디까지 벗을지 남자들은 일체 그곳으로부터 민망한 시선을 거두어 창을 향한다. 그 사이 여인은 긴 홈웨어를 목에서부터 뒤집어 입는다.
아! 저 여인도 코르셋을 하고 있었구나. 허리가 아닌 저 가슴에! 혜원 신윤복이 그린 <미인도> 속 다소곳한 여인의 가슴 라인이 떠오른다. 치마 말기로 가슴을 동여매어 그 존재를 숨죽여 버렸던 우리의 잔인한(?) 코르셋. 인체의 부속물 중 ‘가슴’만큼 가슴 설레게 하는 것도 없었으니, 가슴을 죽이든 살리든 미의 중심은 가슴에 있었나 보다. 비비안 리의 풍만한 가슴은 여전히 보는 이를 뇌쇄하지 않는가.
아무튼 육감적인 노출과 은근히 감추려는 욕망 그 지점에 아름다움의 비등점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코르셋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비등점을 유지시키는 공신이었다.
긴장을 놓아 버리듯, 용감하게 치마 말기를 풀어버린 저 노부인의 시원함이 자꾸 부러워진다.
나도 두리번거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