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의자 / 권남희
‘그의 빈자리를 그리려고 했습니다. … 고갱의 의자에는 고갱 대신 불을 밝힌 초와 소설책 몇 권이 있을 뿐입니다.’
고흐는 고갱이 떠난 후 밤색 나무 틀의 의자를 그리고 편지를 썼다. 가운데 초를 밝히면서 관계 회복의 소망을 담았던 것일까. 화가로서의 공동체를 만들어 보려던 계획이 실패했다는 좌절감은 아무리 변명을 해도 고흐를 괴롭혔다.
그가 돌아올 리 없지만,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노력하고 싶은 마음 가득했을 것이다, 관계 맺기에서 늘 서툴렀던 고흐가 느꼈을 절망은 상처의 반복임이 틀림없다. 그가 떠난 원인을 제공한 것은 자신이라고 자책하면서 그린 〈고갱의 의자〉는 때늦은 후회와 기도하는 마음이 보인다. 마음의 힘을 키우는 것은 슬픔이라지만 고흐는 늘 불쌍하고 아팠다.
길을 가다 보면 버려진 의자, 쓸만한데 디자인 때문에 재활용장에 ‘그의 빈자리를 그리려고 했습니다. … 고갱의 의자에는 고갱 대신 불을 밝힌 초와 소설책 몇 권이 있을 뿐입니다.’
결혼이 깨진 후 서른 넘은 딸이 단기 기억상실증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 치매 전 단계라고도 하여 충격을 받은 딸과 우리는 집으로 오는 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배운 대로 바른 생활을 하느라 가끔 엄마도 꾸짖었던 유치원생 딸, 남자친구라며 데리고 와서 ‘맛있는 거 해달라’고 큰소리쳤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담력 좋고 위풍당당했던 6살이었다.
아직은 젊으니 이 또한 지나가지 않을까 궁색한 핑곗거리나 찾으며 안절부절못했다. 수도권에 집 한 채 가진 서민 부모라는 자책과 작가의 일이 자식을 위해 해줄 게 없다는 부끄러움이 알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지게 했다.
사랑은 처음부터 기만으로 시작하는 것일까. 거래 규모를 맞춰줄 수 없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는 사실이 인생 최대의 난관이었을 딸에게 어떤 위로도 닿지 않았다. 사랑과 별개로 결혼은 집안 간의 냉정한 거래였다. 시대가 변해도 결혼문화는 달라지지 않는다. 연애가 용납되지 않고 각 가문의 수장이 만나 혼담을 주고받는데, 어느 편에서 무엇을 가져올지 세부사항을 결정하며 시장에서처럼 흥정하고 깎기도 했다는 중세 유럽이나 21세기나 달라지지 않았다. 속 가름이 합리적으로 더 심화된 등급을 본다. 그리고 딸아이가 믿었던 짝이 얼마 지나지 않아 보란 듯 비교되지 않는 집안과 결혼했을 때 설마 하고 기다렸던 딸은 종적을 감추었다.
어찌어찌 소동을 잠재우고 마음을 잡으러 돌아온 딸에게 할 말이 겨우 ‘노력하면 회복이 될 거야’라니…. 말로 꺼낼 수 없는 마음은 이미 심장에 들어앉았을 텐데. 세상 어디에서나 타인의 사랑은 인정하지 않는 양가 부모와 친척들의 반대, 험담으로 매시간 한 사람의 심장이 찢어지고 있다는 통계를 막스 뮐러는 『독일인의 사랑』에서 말하고 있다. 딸은 의자에 앉아 다시 밤새워 공부하고 책을 읽었다.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기억을 앉히기 위해 공부하며 사투를 벌인 후 더 나은 직업을 잡고 제살이하러 떠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의 빈방을 정리할 때였다. 바퀴 달린 의자의 방석을 들어내다가 심장이 쿵 내려앉는 소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가운데가 커다란 접시 모양으로 꺼진 채 닳아 없어졌기 때문이다. 파여버린 의자의 모습처럼 아이의 심장도 패어버린 것인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없다는 통증으로 그 기억을 통째로 지워버리려 한 딸의 기억상실은 의자에 남아 시간을 파낸 모습으로 둥그렇게 주저앉아있다.
빈방, 딸이 앉았던 의자를 볼 때마다 절망의 웅덩이를 보는 듯하다. 방문을 열 때마다 의자는 기억을 불러내고 가죽이 닳아 가운데가 움푹 팬 빈 의자는 말을 한다. 딸의 가장 깊은 마음을 함께 한 의자, 어미로서 무능하다는 무력감,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을 알아?’ 아이의 질책도 내려앉는다.
푹 꺼진 빈 의자에 그냥 앉아 있다.
모두에게 빈자리는 다른 얼굴이지만 의자는, 온 마음을 다해 무엇을 기다리는 같은 아픔이다.
비 오는 날 반복되는 통증으로 때로 한꺼번에 내게 찾아 들어 눈물을 쏟고 만다. 살아가는 내내 자식이 있는 이 땅에서 오로지 어미가 하는 일이라고는 밑다짐 흙으로 버티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