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그 뜨거운 기억 / 홍윤선

 

 

과식을 꼭 하게 된다. 자주 가는 밥집 때문이다. 밥과 국 한 그릇을 푸고 반찬 몇 가지를 덜어와 먹는 소소한 밥상이지만 간편식에서 느낄 수 없는 사소한 즐거움이 있다. 사장님은 내일이 복날이라 닭개장을 끓였다며 많이 먹으라고 권한다. 절기 음식까지 챙기는 마음에 답례라도 하듯 연거푸 떠다 먹었다. 그릇을 싹 비우는 것이 만든 이를 기쁘게 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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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식당, 저 식당을 전전하던 때가 있었다. 자주 가서 눈인사를 몇 번 하면 알은체를 한다. 멀쩡하게 차려입은 젊은 여자가 어린 아들 둘을 앞세우고 정해진 요일마다 와서 공기밥 추가는 기본이니 측은한 눈빛은 덤이다. 내 나이 또래 딸이 있음 직한 사장님은 한가한 틈을 타 개인사를 묻기도 한다. 나는 뺄 것도 보탤 것도 없이 바쁘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엄마의 등과 이야기를 나누던 시기이다. 한번은 계산을 마친 내 손에 된장찌개를 담아주며 집에 가서 아이들 끓여 주라고 한다. 마음으로 먹는 밥이 있다면 이런 구수한 맛이 나지 않을까. 검은 비닐봉지가 명품 가방 부럽지 않다. 그렇다고 사 먹기만 하진 않았을 터. 집에서 내 손으로 찌개를 만들면 큰아들은 식당에서 파는 것처럼 감칠맛 나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은 지나친 정성으로 엉성한 집밥 대신 프로 정신으로 무장한 알찬 식당 밥을 먹고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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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페식당에서 잡곡밥인 줄 알고 접시에 담았는데 먹어보니 찰밥이다. 떡이면 모를까 밥의 찰기는 그리 즐기지 않는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시험 기간인 고3 아들에게 먹기를 권했더니 저도 끈적한 밥알은 별로인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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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손길은 투박했다. 정성을 들일 시간도 재료도 부족했던지라 밥상은 단출했고 간식으로 사과라도 줄 때면 깎지도 않은 통으로 건넸다. 시험날 아침이었다. 새벽에 깨워주지 않아 공부를 못했다고 펄쩍펄쩍 뛰는 내게 엄마는 찰밥을 내놓았다. 찹쌀이 골을 메운다고 믿었던 엄마는 잠이 모자란 딸을 깨우는 대신 시험을 칠 때마다 찰밥을 따로 지었다. 골을 채웠는지 배를 불렸는지 여하튼 김이 나는 찰밥을 먹는 동안 나는 공부를 곧잘 해서 엄마의 마음을 두둑하게 부풀렸다. 나의 마지막 효도였고 내가 누린 짧은 호사였다. 엄마의 찰밥은 자식을 지키는 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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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이 기숙사에 들어가자 밥 동지를 잃은 작은아들은 일하는 시간이 불규칙한 나와 때가 맞지 않았다. 그즈음 가까운 김밥집을 단골로 드나들었다. 간식거리부터 밥까지 메뉴가 다양해 그야말로 아이에게는 천국 같았다. 그래도 사장님은 혼자 오는 먹성 좋은 학생이 안쓰러웠는지 감투밥에 ‘맛있게 먹어’라는 말을 잊지 않으셨다. 수북한 양에 눈이 먼저 감동하고 말에 배인 온기에 이미 배가 부르다. 밥을 내놓는 이의 마음은 비슷한가 보다. ‘괜찮다’라는 실한 배짱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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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형제를 먹여주었던 생선 구이집, 보리밥집, 고깃집, 김밥집은 몇 년 간격으로 흔적도 없이 문을 닫았다. 그 공간에 식당이 있었다는 증거는 아이들의 몸과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다행히 상호와 장소를 바꿔 계속 영업하고 있는 집을 찾게 되어 지금도 가끔 간다. 주인아주머니는 성인이 된 큰아들은 몰라보지만 한눈에 나를 알아본다. 사장님이 해주신 밥을 먹고 꼬맹이들이 이렇게 컸다고 뒤늦은 인사를 전한다. 푸짐하게 들여오는 식찬이 외할머니의 밥상처럼 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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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외할머니의 밥은 소리로 기억된다. 못난 시골아이였던 나를 가리켜 ‘모순아, 모순아’ 부르면 밥때다. 외가에 있었던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을 따라 들로 산으로 다니느라 때를 놓치기 일쑤였다. 나를 찾는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멀어져갔고 배꼽시계의 울림을 참지 못해 돌아오면 외할머니는 밭일을 나가고 없다. 곧장 부엌으로 달려가 아궁이 앞에 서지만 덩치 큰 가마솥이 꿈쩍 않는다. 부뚜막에 폴짝 뛰어올라 두 손으로 솥뚜껑 꼭지를 잡고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든 채 힘껏 당긴다. 덜그르렁 소리와 함께 무쇠솥이 품을 내보인다. 온기를 잃지 않은 밥 한 주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너무 뜨겁지도, 그저 차지도 않은 밥이다. 부엌방에는 쫑쫑 썬 김치와 빠박한 된장조치가 수저와 나란히 밥 수건 아래 앉아있다. 머릿수건을 쓴 할머니를 닮은 밥상이다. 내일이면 엄마가 데리러 오고 언니와 오빠가 와서 내 편이 되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들어선다. 밥을 먹는 동안 주린 배만큼 쪼그라들었던 마음이 팽팽해졌다.

의미를 부여하는 온기가 있다. 찰밥에 스며든 엄마의 간절함은 자식을 든든하게 하고, 가마솥의 한 그릇 밥은 여린 것을 품어 담담하게 지켜낸다. 밥집에서 덤으로 받은 격려는 거래의 경계를 허문다. 뭉근한 기운으로 배에서 가슴까지 뜨겁게 데워 아무것도 아닌 내가 특별하다고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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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겨울이었다. 나를 위해 밥을 지어줄 엄마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었다. 빈집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얼음 같은 물로 쌀을 씻어 안쳤다. 터서 까슬한 어린 손은 감각도 없이 얼얼했다. 처음 짓는 밥이었다. 눈물 한 방울이 밥물에 툭 떨어졌으나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연탄 위에 올려놓은 솥이 부르르 끓더니 순식간에 밥물이 넘쳤다. 마저 울지 못한 내 눈물인지 밥이 따라 운 것인지 부뚜막에 홍수가 났다. 누군가의 첫 밥은 눈물로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그 한 방울이 온기의 근원일 거라 짐작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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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고3 아이가 돌아올 시각이다. 나는 입 다실 것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늘어져 들어오는 아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이 무게에 짓눌려 들어갈 여유가 없다. 간식을 앞에 두고 맛있겠다는 추임새로 턱받침을 하고 아들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제서야 “엄마도 좀 드세요.”라며 말문을 열어 하루를 주섬주섬 꺼내 놓는다. 처진 어깨가 슬며시 올라간다. 내일 아침밥에는 찹쌀을 한 줌 섞어야겠다. 그때 부적을 내가 또 지켜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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