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원드컵은 4강 신화와 함께 우리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남겼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슬로건이다. 비록 스포츠 슬로건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일곱 글자가 가긴 힘은 컸다. 삶이란 사건 사고의 연속이다.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나는 그 일곱 글자를 떠올리곤 했다. 그러면 마음 속으로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듯했다.
재작년 월드컵 대회에서 16강 진출이 확정된 순간, 태극전사 두 사람이 펼쳐 든 태극기에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 ‘꺾이지 않는’이란 말속에는 무언인가 우리를 꺾으려 한다는 현실이 들어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던 시절이었기에 이 슬로건 역시 큰 주목을 받았다.
3년 전 겨울, 봉화군 광산 매몰 사고가 일어나면서 두 사람의 작업자가 갱도에 갇혔다. 그들의 생사조차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그들이 9일 만에 구조되었다.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을 때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 “살아야겠다고 버티다 살아지더라.” 그것이 바로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 아무리 힘들더라도 끝까지 버티면 살길이 열린다는 걸 일깨워 주었다.
삶이란 행복과 불행으로만 채워져 있는 듯하지만, 대개는 ‘아무 일 없음’으로 채워진다. 그 ‘아무 일 없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는 종종 잊는다. 중학교 일학년 때다. 누군가 내 몸을 마구 흔들어대는 느낌에 눈을 떴다. 내가 우리 집 마당에 눕혀져 있었다. 내 입에 무언가를 흘려 넣으며 어서 삼키라고 소리치는 게 어슴푸레 들렸다. 연탄가스 중독 사고였다. 다행히 내가 의식을 찾았다. 그날 아버지는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우후에 방구들 고치는 아저씨가 우리 집에 불려 왔다.
그 사고 이후로 아침마다 아버지는 건너편 안방에서 동생과 나의 이름을 불렀다. 처음에는 나지막이, 그러다 대답이 없으면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아무 일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잠결에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버지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평소에 우리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 아버지가 나는 늘 어렵게 생각되어 아버지가 내게 뭘 물어보시면 버버 거리기가 일쑤였다. 그런 아버지가 매일 아침,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낡고 허름한 집에 살아도 내 마음이 위축되거나 꺾이지 않았던 것은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마음의 채질이 다르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어떤 이는 꼼짝하기 싫다며 방으로 들어가는가 하면 어떤 이는 연날리기 좋은 날이라며 밖으로 나간다. 나의 성향은 후자 쪽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다. 노력을 기울였지만 어떤 일이 실패로 매듭지어졌을 때, ‘내가 못 하는 일은 남들도 못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로부터 숟가락 하나 물려받지 못했다며, 자신에게는 인맥도 학맥도 없다며, 그리고 경제적 지원을 해 줄 사람이 없다며 투덜댄다면, 그것은 자신의 삶에 핑계를 대는 게 아닐까. 상어가 최강의 어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부레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어는 잠을 잘 때도 몸을 움직인다.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다.
삶이란 어떤 의미에서 내가 경영하는 기업이다. 그래서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닥쳐온 문제는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다방면의 투지,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이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준비성, 고민할 가치가 없는 일은 바로 가지치기를 하는 결단력도 필요하다. 내 능력보다 조금 높은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이룰 때까지 열정을 쏟아붓는 자세도 나의 기업을 발전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다.
살면서 어떤 일로 잠시 마음이 꺾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그 지점에서 다시 자신의 행보를 이어간다면 실은 꺾이는 게 아니다. 나의 지난날을 그린다면 아마 ‘꺾은선 그래프‘가 될 것이다 이래로 꺾였지 싶으면 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조금이라도 위로 올라가기 위해 아등바등 살았다.
내 삶의 그래프는 지금도 꺾이면서 가고 있다. ‘꺾이지 않으려는 마음’ 하나에 기대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