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 그 사이 / 박소윤

 

 

해가 진다. 2호선 순환선은 한강을 지나고, 지하철 창으로 떨어지는지 올라오는지 모를 해는 벽화처럼 붙어있다.

퇴근 시간의 지하철은 북적인다. 사람들의 손에 들린 휴대폰은 어딘가로 보낼 반딧불이의 신호처럼 활발히 움직인다. 배낭을 멘 젊은 남자는 지하철로 오르고 그 뒤로 핸드백을 손에 든 여자가 급히 내린다. 누군가는 일터에서 집으로, 어떤 이는 출근을 위해 달린다.

지하철을 타고 출 퇴근하는 사람들 너머로 태양은 천천히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퇴근을 해야 출근할 수 있고, 출근했으니 퇴근한다. 눈 앞에 잠시 스치듯 나타난 태양은 퇴근하는 빼곡한 발과 번쩍거리는 휴대폰 불빛 사이로 반사된다.

지하철 속에서 바라본 퇴근길의 도시 풍경은 낮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거리의 풍경은 연해지고 건물의 조명은 진해진다. 빛나는 모니터는 사무실에서 각자의 태양을 가진 사람들을 비춘다. 모니터 속 글자들은 태양보다 더 뜨겁게 자판을 비추고, 자판 뒤로 새겨진 글자들은 그림자처럼 남는다. 차갑게 시작하여 뜨겁게 마무리되는 사무실 모니터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와 일과 일 사이의 팽팽함을 기억한다.

다시 지하철은 쉼없이 달린다. 그 사이 지하철은 다시 지하로 이동하며 슉슉 소리를 낸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엇갈리며 발 디딜 틈이 점점 없어진다. 사람들에 떠밀려서 휘청거리던 몸은 입구에서 가까운 손잡이를 잡고서 안심이 되는지 고개가 뒤로 젖혀진다.

보이지 않는다. 사라졌다. 조금 전, 책을 읽고 있던 남자의 자리에 다른 여자가 서있다. 생각은 머리에서 들락거리고 손은 손잡이를 움켜쥔다. 지하철 객실은 조용하다가 붐비고, 달리다 멈추면서 지난 역에서 다음 역으로 이어진다. 쉼없이 이어지는 지하철 노동 속에서 줄줄이 이어지는 사람들의 행렬이 도시의 하루를 만든다.

불빛 안에서는 불빛의 색이 모호하다. 어렴풋한 선들만 이어진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사이 해는 지고, 도시의 불빛은 다시 태양처럼 환하게 거리를 밝힌다. 번쩍거리는 도시의 빛깔은 어디를 비추는지, 네온사인은 누구를 향하는지 바쁘게 빛을 낸다.

도시의 태양은 두 개다. 낮의 태양과 밤의 네온사인이다. 태양과 네온사인은 질투하지 않는다. 태양이 시들해지면 달아오른 네온사인은 하나 둘 화장을 한다. 높은 건물과, 지하철로 이어지는 긴 에스컬레이터, 시간에 쫒긴 사람들이 달리는 발자국소리, 장애인을 위해 소리나는 신호등과 깜빡거리며 줄어드는 신호등의 숫자는 모두 도시의 불빛 속으로 숨어든다. 그 속에 반짝이는 직장인들의 휴대폰까지 그야말로 불빛의 반란이다.

도시의 불빛을 향해 모여드는 사람은 뜨거움과 따뜻함 사이에 어떤 것이 있는지 알 방법이 없는 사람처럼 제 각각 파편이 되어 달린다. 해가 지기 전까지 하나씩 사그라드는 에너지를 부여잡고 거리의 네온사인이 조금씩 빛을 내면 그제서야 서서히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의 행렬을 본다. 거리로 흩뿌려진 사람들이 다시 지하철로 향한다.

일몰 시간의 지하철에서는 밖이 어떤 곳인지 분간 할 수 없을 만큼 일그러진다. 달리면서 자세한 풍경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마음이 흐려진다. 달리면서 볼 수 있는건 무엇인가. 달리면서 무언가를 볼 수는 있는가. 무엇과 무엇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무언가를 보려고 애쓰는 사람은 달리는 순간에도 무엇과 무엇 사이의 무엇을 알려고 애쓴다.

일몰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인생의 많은 것들은 일몰처럼 훅 밀려온다. 지하철은 빨리 달리고,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해가 지는 풍경을 제대로 못 본다. 실은 해가 지는 것을 실제로 보지 못함을 잊는다. 눈이 보는 걸 마음은 보지 못하고, 마음이 아는 걸 머리는 모른다. 붉게 보이는 태양의 가장 뜨거운 곳은 푸른 색이며, 태양이 지기 직전에는 잠시 초록빛이 보인다. 일몰과 일출 사이에는 일몰도 일출도 아닌 초록과 푸르름의 시간만이 그 자리를 채운다.

무엇과 무엇 사이, 이것과 저것 사이를 메우는 무엇무엇과 이것과 저것들이 무엇무엇이 되어 다시 만난다. 기차 옆으로 일몰이 보인 건지, 일몰이 기차를 구경하는지는 기차와 일몰사이의 일이다. 기차는 일몰을 관통하고도 다시 다음 해를 기다린다.

끝은 새로움을 끌어안는 힘이다. 시작과 끝 사이, 일몰과 일출 사이에는 새로운 끝이 이어진다. 도시의 밤과 낮은 다르지만 같은 곳이다. 낮과 밤 사이는 욕망으로 채워지고 밤과 아침 사이에 들르는 욕정은 다른 감각을 깨운다. 또 다른 시작은 지금의 끝을 마주한다. 곧 해가 뜰 시간이다. 지하철은 다시 분주히 일출을 맞이하러 나선다. 붉그스레 붉어진 태양은 아직 꺼지지 않은 도로 조명등 위로 내려 앉는다. 너와 나 사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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