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부기와 폼생이 / 진영숙
내 핸드폰에는 이쁜꼬부기와 이쁜폼생이라는 애칭으로 저장해 놓은 녀석들이 있다. 사실 예뻐서 그렇게 저장해 놓은 건 아니다. 호적에서 이름을 파버릴 수만 있었다면 골백번도 팠을 녀석들이다. 두 아들의 애칭을 이렇게 바꾼 시기는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는 사춘기의 절정기였다.
특히 부자간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곤 했다. 별 시답잖은 사안에 본질은 사라지고 불꽃이 튀었다. 서로 파 놓은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오가는 말들은 새로운 생채기를 냈다. 다시는 마주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헤헤거리며 잘 지내는 남편과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다른 세상을 경험했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보니, 저녁 식사 시간에 주인집 세 딸이 난장판을 벌인다. 고양이인지 인간인지 헷갈리는 건방진 고양이는 주인을 향해 ‘쓸데없는 것을 만들어서 스스로 고생하는 자.’라고 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고약한 고양이의 생각에 동의하고 말았다. 오죽하면 무자식이 상팔자라느니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있을까.
이쁜꼬부기는 큰아들의 애칭이다. 꼬부기는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캐릭터이다. 태어날 때부터 행동이 느려서 내가 붙인 별명이다. 잘 보채지도 않고 느긋했다. 목 가누기와 걷는 것도 느렸다. 1월에 태어난 녀석은 한 살을 더 먹은 친구들과 같이 학교에 들어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에 왜 가야 하는지조차 몰랐던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 하교 시간에, 학교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노라면 같은 학년 친구들은 다 나오고 2학년 선배들이 나올 때야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점심을 먹고 야외 활동 시간이 끝나면 반 아이들이 다 들어왔는지를 확인할 때 “OO이 와샤?”라고 묻는 것으로 인원 파악을 했다고 한다. 오래된 지인이나 한 학기를 보낸 담임선생님은 대기만성형이라고 듣기 좋은 소리로 바꿔 이야기하곤 했다.
큰아들은 먹는 것에 별 관심이 없다. ‘먹기 위해서 사는가? 살기 위해서 먹는가?’ 누군가 묻는다면 녀석은 후자라고 답할 것이다. 음식을 만들어 세팅하고 왁자지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 젊은이들이 맛집을 찾아 한두 시간 기다리다 먹으며 사진을 찍고 SNS를 통해 널리 알리곤 하는데 녀석과는 상관없는 일로 보인다.
맛이라는 게 입에다 넣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잠깐인데, 뭘 그렇게 맛있는 걸 먹겠다고 애쓰는지 모르겠다는 식이다. 큰아들에게 음식은 그저 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쁜폼생이는 작은아들의 애칭이다. 폼에 죽고 폼에 사는 폼생폼사의 다른 말이다. 거울을 통해 자기 외모를 볼 줄 알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면 입지도, 신지도 사용하지도 않았다.
어느 날, 수련회에 가기 전 알맞은 크기의 가방이 없어 사러 갔다. 처음 들어간 가게 주인은 아이가 물건을 보는 것도 만지는 것도 하지 말라며 푸대접했다. 마음이 언짢아서 가게를 나온 뒤 몇 곳을 둘러봤는데, 녀석은 아까 그 가게에, 마음에 드는 가방이 있다는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데, 녀석은 그 가방이어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다. 하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가방을 사 들고 나왔다.
작은아들의 한때 꿈은 요리사였다. 태어날 때부터 미각과 후각이 발달한 녀석은 분유를 바꾸면 금세 알아차리고 단식으로 나의 애를 태웠다. 맛집의 이름을 줄줄이 외우고 우리 동네 배달 음식 책자를 보기만 해도 행복해했다. 나는 음식을 만들면 항상 작은아들에게 간을 보게 한다. 녀석이 맛있다고 하면 더 노력할 필요가 없다. 한 끼를 먹어도 맛있게 먹고 이왕이면 예쁜 그릇에 근사하게 담아서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한 배에서 나와도 아롱이와 다롱이라는 말이 있다. 두 녀석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좋아하는 것과 삶의 가치와 철학이 다르다. 올망졸망할 때 데리고 나가면 아들만 둘 키우는 인생 선배들은 측은지심으로 나에게 눈길을 보냈다.
“고등학생이 되면 경찰을 불러야 해요.”
형제간에 싸움이 벌어지면 부모도 못 말린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직 내 앞에서 말다툼은 했어도 치고받고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다르다 보니 싸울 일이 없었던 듯하다. 물건을 살 때도 항상 작은아들이 먼저 선택했다. 큰아들은 색상이나 디자인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오히려 귀찮게 여겼다.
그런 형제가 닮은 것이 있다. 어느 정도 눈치가 생기고 생각할 나이가 되면서부터 내가 남편에게 잔소리하는 것을 못 봐준다.
“아빠가 분명히 잘못한 것은 알겠는데, 엄마가 좀 참아주면 안 돼요?”
초록은 동색이라더니 남편의 역성을 들며 아무 말도 못 하게 한다. 서로에게 상대의 잘못을 직설적으로 지적하면 누구에게도 동의를 얻기란 쉽지 않다. 자신들이 하나가 되어야만 잘 사는 길임을 일찌감치 터득해 버린 걸까. 꼬부기와 폼생이는 한 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