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린자기 / 이상수
여울을 가로질러 외나무다리가 건너가고 있다. 참방참방 발목까지 차오를 듯한 물길은 잠시 바위 근처에서 걸음을 멈춘다. 수면 위엔 윤슬이 반짝이며 수를 놓는다. 청단풍나무 그늘이 만든 웅덩이에 뻐꾸기 소리가 나지막이 떠다닌다.
회룡포처럼 물이 돌아나가는 곳을 도린자기라 한다. 수회水回라고도 하는데 하회마을을 물돌이동이라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큰 강이 마을을 감싸며 휘어지는 모습이 웅장하다면, 계곡을 끼고 슬쩍 굽어지는 도린자기는 아기자기한 맛이 난다. 여울 양쪽으로 늘어선 나뭇가지들은 악수를 청하려는 듯 물가로 휘어져 있다. 한길 가량 되는 폭은 도움닫기로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다.
도심의 번잡함을 피해 고요히 사색에 잠길 수 있기에 홀로 산에 오르길 좋아한다. 늘푸른나무와 갈잎나무가 빽빽한 산길에 들어서면 쪼르르 청설모가 앞장서 길을 안내한다. 풀숲에선 장끼가 후드득 날아오르고 산비둘기 소리가 추임새를 넣으면서 산은 점점 더 깊어진다. 가파른 길이 두어 번 휘모리장단으로 몰아친 뒤엔 호흡이 가빠지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지친 다릴 이끌며 산모퉁이를 돌면 거기, 웅덩이가 등산객을 기다리고 있다.
시골 대부분이 그렇듯 집안 형편이 넉넉하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 집은 그럭저럭 막내딸을 대학교에 보낼 수 있을 정도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원하던 직장은 아니었지만 바로 일자리를 구해 별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신혼은 막 시원始原을 출발한 물처럼 설레었다. 곧이어 아이가 태어났고 맞벌이로 생활에는 큰 부족함이 없었다. 이대로 간다면 머지않아 볕 좋은 땅에 아늑한 집 한 채 세울 듯도 싶었다.
시련은 한순간에 찾아왔다. 막 둘째를 출산한 뒤 남편이 갑자기 직장을 잃었다. 백일 된 아이를 떼어놓고 호구지책으로 다시 일하러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결혼할 때 빌린 전세금은 이자를 갚기도 힘들었다.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보험설계사를 하면서 방과 후에 아이들을 가르쳤다. 동료보다 더 많이 벌어야 했다. 곁을 내어줄 시간도 다른 사람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더러는 넘어지고 세상의 벽에 막히기도 하면서 이리저리 흘러왔다.
물가로 내려가 쪼그리고 앉는다. 정상까진 올라 온 만큼 더 가야 한다. 물속에 손을 넣으니 살짝 한기가 돈다. 물은 바닥까지 맑아서 얼굴이 고스란히 비친다. 나르시스가 된 내가 나를 쳐다본다. 나는 지금쯤 생의 어느 순간을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동그란 자갈 사이로 가재가 뒷걸음친다. 그 뒤로 피라미가 병정놀이하듯 따라간다. 납작한 돌멩이를 집어 물수제비를 뜬다. 통통통통. 물비늘을 밟으며 건너간 기슭에 말갛게 물봉선이 피어있다.
잠시 흐름을 멈추고 있는 물은 숱한 격랑의 시간을 지나 이곳에 당도했을 것이다. 험한 골짜기를 내려오면서 바위에 부딪히고 나뭇가지에 긁혀 상처를 입기도 하면서. 아득한 벼랑에서 떨어지기도, 급류를 만나 세차게 휘둘리기도 여러 번이었겠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야 했으리라. 그럴 때마다 주저앉아 흐르기를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을까.
직진의 삶을 나는 바랐다. 멈추어 있거나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물질적인 성공을 목표로 삼았다. 더 나아지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담금질 했다. 남들보다 앞세울 것이 필요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능력과 상관없이 타인의 이목에 맞춰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했고 언제나 그 지점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하며 좌절의 늪에 빠졌다.
산을 오르던 사람들이 도린자기에서 발을 멈춘다. 손수건을 적셔 땀을 닦고 준비해온 음식을 꺼내 먹기도 한다.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더러는 이제까지 올라온 길을 내려다본다. 앞만 보고 걷다가 놓친 산 풍경을 그제야 눈에 담는다.
지상의 모든 길과 강은 적당히 휘어져 있다. 어느 시인은 굽은 나무에 함박눈이 쌓이고 새들도 더 많이 날아온다고 했다. 추사 김정희는 획의 굳셈을 중요시하다가 오십 대에 이르러 부드러워지며 능숙한 추사체를 구사할 수 있었다. 굽어져야 온전하여지고 휘어져야 바르게 될 수 있다는 노자의 ‘곡즉전 왕즉직曲則全 枉則直’을 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도린자기는 물의 모퉁이다. 직선으로 흐르던 각이 시간을 인내하며 만든 둥근 물굽이다. 직선이 목표 지향성을 가진다면 곡선은 과정 중심형이라고나 할까. 자신에게 치열했던 것들만이 굽이치며 반짝이는 모래톱을 형성하고 웅덩이를 만든다. 젊은 날의 열정과 부질없는 욕망을 가라앉히곤 비로소 고요해진다.
인생의 모퉁이를 여러 번 지나온 아버지는 가끔 이렇게 말했다. 일이 아무리 바빠도 손길이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도움을 주고 손해 보더라도 내어주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하나라도 더 갖기 위해 전력 질주했고 나만을 위해 살았기에 그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갖지도 못했는데 나눈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물은 흐르면서 몇 개의 굽이를 만든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욕망을 버린다. 이윽고 하류에 가까워지면서 몸은 사라지고 정신의 뼈만 남게 되리라. 그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깊이를 가지게 될 것이다. 지천명에 이를 때까지 과연 나는 세상의 욕심을 내려놨던가. 도린자기는 자기반성의 자리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이 긴장과 이완의 줄다리기라면 쉰에 이른 나는 변곡점에 서 있는 게 아닐까. 이제까지의 성취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알 것 같다. 물이 모퉁이에서 숨 가쁘게 달려오던 저를 멈추고 사색에 잠겨 있듯 이제 껴안으려고만 했던 것들을 조금씩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물푸레나무 위로 곤줄박이 한 쌍 지저귀고 사람들의 미소가 햇귀처럼 반짝인다. 무거워질 때마다 자신을 비우며 바다에 이르는 물의 자세처럼 우리네 삶도 수많은 도린자기를 거쳐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리라.
피곤하던 다리도 어느새 회복되었다. 아까보다 훨씬 가벼워진 배낭을 짊어지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니 몸이 청정해진다. 문득 맑은 물소리 하나가 내 안의 모퉁이를 돌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