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 자전> 수필의 길을 가서 행복했다 / 곽흥렬

 

아버지는 글쓰기 신봉자였는가 보다. 아직 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이었던 일곱 살 때, 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혀졌다. 연필조차 제대로 쥘 줄 모르는 어린아이가 무얼 옳게 알기나 하였을까. 그런 꼬맹이를 붙들고 당신께서는 글쓰기를 가르치려 드셨으니, 내 기나긴 창작인생은 그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가 3학년이었던가, 먼 산의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한 기억이다. 어느 가을 날 읍내에서 백일장이 열렸다. 그날 나는 학교 대표로 뽑혀 행사에 참가하게 되었다. 시절이 가을이어서였던 때문이리라, 걸개에 나붙은 글제가 '가을 하늘'이었다. 그맘때면 노상 지겹도록 보게 되는 가을 하늘을 대체 어떻게 그려 내어야 할까. 백일장에 단골로 등장하는 너무 흔해빠진 글제 같아서 아무리 궁리에 궁리를 거듭해도 도무지 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내내 제목만 붙들고 끙끙대다 마감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원고지 칸을 메꾸어 제출하고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상머리에서였다. 어머니가 백일장 이야기를 꺼내며 무슨 글제가 나왔는지 물었다. 내가 가을 하늘이더라고 말씀을 드리자 어머니는 어떤 내용으로 써냈는지 되물었다. 나는 "가을 하늘에 붕게구름이 어떻게 저떻고…" 대강 이렇게 적었다고 대답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어머니가 "야야, 가을 하늘인데 뭉게구름이 어데 있노? 쯧쯧, 보나마나 낙방이다." 하는 것이 아닌가. 평소 '가' 자 뒷다리도 모른다며 정규 교육의 기초과정도 채 마치지 못한 한스러움을 노래처럼 되뇌던 어머니의 입에서 생각지도 않게 썩 그런 소리가 튀어나오다니 너무도 뜻밖이었다. 나는 당신 나름의 그럴싸해 보이는 예비심사평에 폭삭 실망하여 결과를 전혀 기대하지 않은 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 달쯤이나 지났을까. 입상자 명단이 발표되었을 때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머니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내 이름이 당당히 장원의 자리에 올랐으니 말이다. 당신으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게 되어 버렸다. 어머니가 그 소식을 듣고서 내게 무슨 이야기를 하셨는지 지금은 전혀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얼굴 가득 잔잔한 미소가 번지던 모습만이 반세기의 세월이 흐른 오늘까지도 정지된 장면으로 뇌리 깊숙이 각인되어 있을 뿐이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평생토록 땅만 일구며 살아온 분들이기에 어찌 글쓰기의 '가나다'인들 제대로 알기나 하셨을까. 그렇지만, 당신들은 설사 창작에는 완전히 문외한이었을지 몰라도 내가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에 그렇게나 깊은 관심을 보이셨던 게다. 생각해 보면, 두 분의 사랑과 응원이 자양분이 되어 주었기에 내가 한평생 수필의 길을 가는 동력을 얻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스무 살 중반쯤 교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 이후 교직 생활 몇 해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되지도 않은 벌글을 수필이랍시고 마구 써대었다. 그리고 무식이 용감하다고, 그 원고들을 묶어서 『가슴으로 주운 언어들』이라는 표제로 생애 첫 작품집을 내었다. 지금 누렇게 빛바랜 예전의 글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온통 수준 미달의 잡문 나부랭이인 것만 같아 부끄럽고 민망하여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지경이다. 어쨌든 그 일이 인연의 끈으로 작용하여, 그때부터 이 땅에서 최초로 생겨난 수필 동호인 단체인 영남수필문학회에 들어가 제대로 된 수필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내 나이 스물일곱 살 겨울이었다. 이십 대에 회원으로 활동하게 된 경우는 영남수필문학회가 생기고 나서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얼마 뒤, 나는 짧은 교직생활을 접고 본격적으로 창작의 길로 들어섰다. 거기엔 학교 최고 책임자의 고압적인 교육방침이 평소 내 가르침의 철학과 너무도 맞지 않았던 게다. 시간이 흐르면서 교편을 드는 일에 심한 환멸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구구한 사연은 언젠가 「가르침의 방식」이라는 수필을 통해 소상히 밝은 바 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준다고, 결국 타의 반 자의 반으로 학교를 떠났다. 주인이 밥 없자 나그네 국 마자 하는 격이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주어진 상황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라는 계시로 여겼다. 달리 생각하면 창작에 대한 목마름을 풀 절호의 기회가 아니었던가 싶기도 하다.

그 이후부터 모든 것을 수필에다 쏟았다. 어느 트로트 가수가 부른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언제든,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수필 생각을 놓지 않았다. 출가 수행승이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일념으로 화두를 참구하듯 나는 낮이나 밤이나 수필 생각으로 하루 하루, 한 달 한달, 한 해 한 해를 보냈다. 어느 순간 충격이 와서 정신없이 글쓰기에 몰입할 때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픈 줄을 몰랐고 잠을 자지 않아도 몸이 피곤한 것을 깨닫지 못했다. 고치고 다듬고 고치고 다듬고를 수십 수백 번 거듭한 끝에 마침내 작품 한 편의 마침표를 찍고 나면, 그 순간 풀리지 않던 무언가를 깨달았을 때의 벅찬 감정처럼 환희심이 솟아오르곤 했다.

고백하건대, **‘수생수사隨生隨死’ 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초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지난 삼십여 년 동안 일구월심 줄기차게 수필을 써 왔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탈고한 작품 수가 줄잡아 700편 가까이에 이른다. 어림짐작으로도 한 해에 스무 편 가량을 창작한 셈이다. 남들이 듣기에는 어쩌면 어쭙잖은 자랑질 같이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는 뿌듯한 자부심이 느껴진다는 게 속이지 못할 솔직한 심정이다. 아무리 못난 자식일지라도 부모 눈에는 세상 그 어떤 자식들보다 사랑스럽게 여겨지듯, 비록 그다지 볼품없는 작품들일지라도 내게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기에 애착이 가는 것만은 부인하지 못하겠다.

앤드류 매튜스는 "행복의 비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매튜스의 말에 한편으로는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개가 가로저어지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적어도 이랬다. 내 행복의 비밀은 스스로 좋아하는 수필을 해서인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수필을 하다 보니 저절로 좋아져서인 것이기도 하다.

논어에 나오는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는 구절을 나는 진리처럼 신봉한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 두고두고 새기고 되새길 만한 참 귀한 말씀이 아닌가. 나는 일찍이 이십 대 때 수필을 알았고, 수필이 좋아서 수필을 하였으며, 수필이 좋아서 수필을 하다 보니 수필보다 더 즐거우면서 마음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이 없었기에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고도 남을 세월 동안 오로지 수필 하나만을 붙들고 씨름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이 시점에서 지나온 길을 가만히 되돌아보니, 어느새 이순의 고갯마루를 넘어가고 있는 나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후유~, 길게 숨고르기를 하면서 말해도 좋으리라, 내 앞에는 두 갈래의 길이 나 있었다고. 그 두 길 가운데서 나는 굳이 쉽고 안락한 교직의 길을 버리고 일부러 어렵고 힘든 수필의 길을 갔다고. 그래서 행복했노라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걷거나 머물거나 앉았거나 누웠거나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거나. 곧 일상생활의 모든 순간순간을 뜻하며, 구도자가 이르러야 할 공부의 최고 경지를 가리키는 말

 

**수생수사 : ‘수필에 살고 수필에 죽다’라는 의미의 조어

('대구문학' 2018년 11, 12월호 통권 135호)

<해설>

곽흥렬,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가

 

이상렬(문학평론가, 수필가)

줄곧 한 분야에 머물러 그에 관해 풍부하고 깊이 있는 지식이나 경험을 가진 사람을 '전문가'라고 한다. 다른 말로 하면 고수다. 실상 고수高手란 固守하는 자리라 기본적으로 외롭다. 지켜야 할 것이 많아 힘에 부치는 자리다. 수필 쪽이 그렇다. 수필에서 지켜야 할 예상치 못한 존재는 '새것'이라는 복병이다. 이것은 '낯섦'과 동일한 성정을 지녀 날렵하고 스마트할 뿐만 아니라 자기 경신의 힘을 지녔다. 문제는 새것만을 추종하는 경향성이다. 하지만 이것도 치명적인 아킬레스를 지닌다. 그것은 가벼움이다. 검증되지 않은 것이라는 불안감과 '새것'에 내포된 또 다른 이면, 경박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추세는 추세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은 모든 미학이 추구하는 본성임에 틀림이 없다. 예술의 방향성은 새로움이라지만 그게 정답은 아니다. 새것의 속성은 머무름을 용납지 않는다는 것. 오늘의 새로운 것이 내일의 낡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새것이 군락을 이룰 때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전부가 새로움을 추종하다 보면 그곳은 레드오션이다. 꽃이 아름답다지만 산야를 뒤덮은 군락은 별로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일체감이 주는 멀미 같은 것. 그보다 쪼잔하게 내 앞에 피어있는 민들레 한 송이가 의미 있다. 사람이 아름답다지만 집단성에 매몰된 사람은 별로다. 개별성이 사라진 '조화'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전체주의보다 고독한 개인이 낫다. 도미노의 흐름을 홀로 막아서겠다는 작가의 고집스러운 개별성이 감동이다. 그런 점에서 곽흥렬의 고유성에 대한 수호는 수필의 치명적인 가벼움에 맞서는 옹골찬 희망이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또 무엇이 고유적이란 말인가. 적어도 두 작품에서는 그렇다. 작가와 닮은 작품, 「우시장의 오후」와 「연」이다. 이 두 작품을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함으로써 '곽흥렬다움'을 찾았다.

곽흥렬의 '곽흥렬다움'은 철학적 글쓰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작가의 글에서 철학적이란, '철학'과 '철학성' 모두를 포함한다. 생의 근원적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나 지식으로서의 철학, 인생과 사물을 대하는 통찰적 자세 그리고 철학 활동으로서의 철학성, 이 둘 다를 말한다. 따라서 작품의 핵심은 문학적 시선과 문학적 자세다. 문학적 시선이라 하면 통찰력이며, 문학적 자세라 하면 진중성이다.

먼저, 작가의 통찰은 뭔가. 제재를 선택하고 통찰하는 과정에서 철학적 시선을 지녔다는 점이다. 본다고 다 보이는 것이 아니다. 철학의 시선을 지녀야 제대로 볼 수 있다. 특히 타인이 볼 수 없는 지점의 깊이까지 볼 수 있다. 가령, 길을 가다 연밭이 눈에 들어왔다고 하자. 범인凡人들은 연잎, 연꽃을 봤다고 하지만 실상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는 "수면 위에 떠 있는 연을 보았다고 해서 연의 실체를 다 알았노라고" 단정할 수 없다. 우리는 연에 대한 기존의 지식체계 안에서 연은 '원래 그런 것'으로 판단해서 겉만 본다. 피상적 시선으로 보는 연, 이것도 저것도 뭣도 아니다. 연을 보는 데 있어서 철학적 시선이란 기존 지식체계를 벗어나 관찰, 해석, 성찰의 단계까지 나아갔다. 즉 "연의 귀함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물 아래 세계"를 보는 단계를 말한다. 그럼, 연을 바라보는 작가의 철학적 시선은 어떨까. 작가는 「연」을 이렇게 보았다.

봄기운이 감돌면 돋아나는 죽순 닮은 연꽃 잎사귀, 한여름 화려하게 만개하지만 연은 생성과 소멸의 대자연의 법칙 아래 생을 그렇게 마감한다. 대개의 경우 여기까지다. 이런 시선은 기존의 상투성이다. 작가는 대상과 엄밀히 접촉한다. 그의 심안으로 들어온 연을 보라. "연밭 가득 자신들이 남긴 육신의 형해形骸로 뜻 모를 그림문자", "생사윤회의 무상함을 설하려고 보낸 부처님의 편지"로 시선의 깊이를 더한다. 완전히 새로운 연이다. 한 단계 더 나아간다. "땅속을 헤집고 들어가면 뿌리를 같이하는 이형동체異形同體" "그 뿌리는 마침내 하나이듯이, 인연법으로 들여다보면 우리들 각자도 궁극엔 너와 내가 한 몸"이라 해석한다.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진실이 만들어진 것이다. 철학적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다. 즉, 기정사실을 파괴하고 새로운 연을 창조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새로움이다. 새로움은 시간의 연장선상에서 '어제의 것'을 지나서 맞이하는 '오늘의 것'이 아니다. 내일이 되면 또 '낡은 것'이 되고 마는 순차적 개념의 새로움이 아닌,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단독성, 단독적 시선을 의미한다.

이처럼 곽흥렬의 철학적 글쓰기는 드러나는 표면보다 보이지 않는 깊은 내면을 존중하는 철학, 거대하고 화려한 것보다 작지만 가치의 깊이를 선언하는 철학이다. 물 아래 감춰진, 보이지 않는 세계가 수면 위에 떠 있는 보이는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를 역설한 것이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깊고 감동적인 존재다. 저마다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삶은 고유한 가치가 있다. 작가 곽흥렬은 한 사람을 존중하고 그의 내면을 성실하게 들여다보는 데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것은 감상주의와는 차원이 다르다. 수필의 물줄기가 흘러나오는 원천이 다르기 때문이다. 단순한 순애보적인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속으로 삼킨 함축적 내면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다. 작가의 대쪽 같은 내면의 힘은 「연」과 많이 닮았다. 그 내면에서 진액처럼 흘러나온 것이 농익은 철학성이다. 그렇다면, 뿌리 깊은 곳에서 응축된 사상의 본원지는 어딜까. 곧, 고향이다.

작가에 관한 두 번째 관심, 그것은 곽흥렬의 진중성이다. 그것은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 선택한 제재와 제재를 다루는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고향이다. 작품 「우시장의 오후」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작가의 수필들에서는 고향을 내면화한 장면이 많다. 고향에 대해서 그리움이 짙고, 기억 속에서 빈번하게 그때 그 시절을 불러낸다는 것은 이미 고향을 멀리 떠나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사십 년간 푸른 세월을 타관 객지에서 보낸 그는 추억을 향해 손짓하며 고향의 정겨운 자연 풍광을 회상한다. 중요한 것은 작가는 고향에 대해서, 타향살이의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인한 정신의 시달림과 후반전 인생을 의미 있게 가꾸어 갈 꿈을 꾸면서 재해석을 이루어내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고향은 그의 글쓰기의 모체요, 저장고였다. 옛 추억과 고향과 자연의 언어들이 다정다감하면서도 깊게, 물 흐르듯 은근하면서도 정확하게, 구수하면서도 촌스럽지 않게 표현되고 있다. 이질적인 도시 언어가 아닌, '우시장' '쇠똥 냄새' '워낭 소리' '고향집 앞마당의 해거름' '달맞이 꽃'과 같은 고향 본색의 언어가 맛깔을 잃지 않고 토속 언어의 꽃으로 피어나는 것은 그의 글쓰기의 모태가 '고향'이며, 소중한 문학적 자양분이 '아버지',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성'이 곧 '새로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수필의 진화는 얼마나 문제성을 지니느냐, 얼마나 자기 경신을 위한 혼신의 쟁투과정이 있느냐, 얼마나 자기만의 고유한 시선을 지녔느냐 이것이지, 단순히 충격적인 소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수필에 있어서 고향과 옛것을 복원한다는 것은 결코 진부한 것일 수 없다. 우리 근대, 현대사에 녹아있는 사회상을 보존, 추적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낯섦만을 추종하는 경박성과 비견되지 않는 그 이상의 가치다. 따라서 이제 '새 것'과 '낡은 것'을 '좋음'과 '나쁨'으로 구별할 것이 아니라, 나다움과 너다움으로 구분할 때이다.

곽흥렬, 그가 그토로 지키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가. 결국은 수필 정신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내야 할 수필 정신은 무엇인가. 수필이 아니면 안 되는 것, 더 이상 넘어서서는 안 되는 수필의 고유성, '수필만의 수필'인 것이다. 이것은 작가 정신과도 맞물린다. 그가 말하는 작가 정신이란 치열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문학에 관한, 글쓰기에 관한, 수필에 관한 고집스러운 사랑이다.

전혜린의 책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박경리 작가에 대해 소개하는 대목이 있다. "멋있는 사람은 박경리 씨, 안 빗고 안 지진 머리, 신경만이 살아 있는 듯한 피부, 굵은 회색 쉐타 바람, 검은 타이트 치마, 여학생 같이 소탈했다." 백지 앞에서 글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도 할 말이 있다. 내가 본 곽흥렬 작가는 이렇다. 걷어 올린 흰 와이셔츠 소매 사이로 드러난 마르고 힘줄 선명한 팔목! 그의 강직하고 치열한 작가정신이 그러하다.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고 한결같은 머리 모양새! 작가의 정확하고 올곧은 문장이 그렇다. 짙은 눈썹 아래 깊은 눈동자, 그의 진중한 철학성이 그러하다. 작가는 자신이 '글을 쓰는 까닭'을 이렇게 말했다. "팍팍한 인생살이가 글쓰기로 하여 위로받을 수 있다면, 까칠한 나날들이 수필로 하여 어루만져질 수 있다면, 나는 이 생명 다하는 그 순간까지 기꺼이 붓대를 잡을 것입니다."

새로움이라는 권력에 수종을 들지 않고 수필의 고유성을 지키기 위해 배수진을 친 고독한 단독자, 곽흥렬 작가는 진정 수필인이다. 이 시대, 그가 있어 다행이다. 맞닥뜨려야 하는 수필가의 가혹한 운명 앞에서 오늘도 백지를 맞이하고 있을 작가의 분투가 새로움이 아니라면 대관절 뭐가 더 새로운 것인가.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