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간결체인가? / 김창식

 

 

1. 간결체의 장점 

 

글 쓰는 이에게 문체는 정체성이다. 누구에게든 자기도 모르는 사이 습관이 든 고유한

문체가 있다. 한편 명 문장가 중에는 소재와 주제에 따라 문체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경우도

있어 일률적으로

어느 것이 좋은 문체라고 주장할 수 없다. 한(恨)의 정서를 표출하거나 고풍의상(古風衣裳)

같은 고전적인 분위기의 글을 쓸 때는 ‘만연체’나 ‘우유체’가 적격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문체는 ‘간결체’이다. ‘간결체’가 뜻을 정확히 전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때문이다. ‘정확하고 빠른 의미의 전달’이야말로 글쓰기의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닌가. ‘간결체’는 박진감과 긴장감이 있어 스피드가 중요시되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에도

부합한다. 문법에 맞게, 추상어와 불필요한 수식어는 줄이고, 몸통(주어와 동사, 목적어) 위주로

써야 비문(非文)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대적인 글쓰기의 본류(本流)는 당연히 ‘간결체’이다. 대표적인 작가는 김훈이다. 요즘 뜨는

젊은 작가들의 문체 역시 간결체다. 사실, ‘문체논쟁’은 오랜 전(1950년 대)에 검증이

끝난 사안이다. 김동리, 황순원 같은 고인이 된 대가들도 ‘간결하고 정확한 글’을 중시했고,

작품으로

‘간결체의 미학’을 직접 보여주었다. 외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헤밍웨이는

하드보일드(hard-boiled) 스타일의 ‘간결체’로 일세를 풍미했다. 대중소설로 일가를 이룬

스티븐 킹 같은 글의 장인도 기회 있을 때마다 ‘간결체’의 장점을 설파한다.

 

 

2. 간결한 글쓰기 사례 

 

가. 김현의 평문

내 마음의 움직임과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한 글을 쓴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은

어느 시인이 ‘수정의 메아리’라고 부른 수면의 파문처럼 겹쳐 떨린다.

 

 미문(美文)으로 이름난 글이지만 현대적으로 간결하게 고쳐 쓰면?

 "내 마음과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한 글을 쓴 사람의 마음은 어느 시인이

 ‘수정의 메아리’라고 부른 수면의 파문처럼 겹쳐 떨린다."

 

나. 이외수의 충고 

처음부터 문장을 복잡하게 꾸미지 말라. 정치법에 따라 문장을 간단하게 쓰도록 하라. 

문장에서의 정치법이란 문장을 이루는 주성분(주어, 목적어, 술어)을 순서대로 배열하는

일을 말한다.

 

“나는 사방에서 매미들이 주변의 나무들이 진저리를 칠 정도로 목청을 다해서 발악적으로

시끄럽게 울어대는,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비켜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비좁은 오솔길을

혼자 쓸쓸히 걷고 있었다.”

 

산만하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문장을 간결하게 고쳐 쓰면? 

“나는 비좁은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마주치면 비켜 설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매미들이 시끄럽게 울어대고 주변의 나무들이 진저리를 쳤다.”

 *이외수는 위 예문을 음식으로 비유하면 쇠고기, 닭고기, 돼지고기에 고등어, 이면수, 

오징어를 집어넣고 미나리, 당근, 시금치, 감자, 마늘을 첨가한 다음 소금, 간장, 설탕,

된장에 후추를 뿌리고 케첩, 마요네즈까지 바른 형국이라고 비판한다.  

 

다. <설야>에서(김창식)

눈 오는 밤엔... 눈은 세상을 깨끗하게 감추고 세상을 조용하게 만든다. 눈 오는 날 밤은 유난히

아늑하고 조용하게 느껴진다. 왜 그럴까? 눈이 오면 도로나 자동차, 나무, 지붕 등에 눈이 쌓인다. 

눈은 육방형의 결정이 모여 여러 가지 크기의 입자가 되고, 그 입자가 모여 고체의 눈이 된다. 

입자와 입자사이에는 많은 틈이 생기고 이것이 흡음판 (吸音板)의 구멍과 같은 작용을 한다. 

눈이 흡음재(吸音材) 역할을 해 주변이 조용해지 는 것이다(인터넷 검색).  

 

위 내용을 문학적 감수성으로 한마디로 때리면?  

눈오는 밤 귀 기울여 들으면 고장 난 시계가 똑딱여요.”

* 위 표현은 ‘일상적(과학적) 진실’과 ‘시적 진실’의 차이를 깨우치는 본보기이기도 하다. 

 

라. <칼의 노래>에서(김훈)

<<칼의 노래>>의 작가 김훈의 작품 속에 이순신의 한 때 애인이었던 여진의 죽음이 나온다.

부하들이 그녀의 시체를 관아로 끌고 온다. 묘사 문장을 다섯 장쯤 썼다가 모두 다 버렸다.

그리고 단 한 문장으로 바꿨다.

 

바꿔 쓴 문장은? 

내다 버려라!”

 

*김훈은 그날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썼다. 원고지 100장 쓴 것보다 훨씬 나았다고 한다. 

<<칼 의 노래>>를 읽으면서 느꼈던 칼끝 같은 긴장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이 한 마디로

느낄 수 있다. 행간에 녹아든 작가의 한숨과 피땀과 환호도. 한 줄 한 줄 써나가는 피 말리는

고통도 함께.

*간결한 글쓰기의 예로 설명했지만, 함축적인 이 말은 절절한 슬픔을 건조하게 객관화한

'거리두기 기법'으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신파조로 처연하다거나 질척거리는 정서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더 큰 울림을 전해주는 것이고. 이것이 문학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