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면 추억이 됩니다 / 최원현

 

생각지도 않게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좀처럼 시간을 만들지 못했었다. 그런데 우리 부부에게 여러 차례 영화를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던 부부와 함께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마침 시간이 되겠단다. 해서 그 시간에 맞춰 급히 예매를 했다. 만화가 원작인데 연극에서도 흥행에 성공을 했고 책도 15만부 이상 팔린 지라 영화도 기대가 되었다.

 

노년의 남녀가 펼쳐내는 사랑이야기지만 가슴 한 쪽이 먹먹해 지는 그런 영화였다. 특히 대사 중 우리는 다시 부부다. 가족이었는데하는 한 마디가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전에는가족이었는데 지금은부부뿐이다 하는 말일 터였다. 그 말이 풍기는 슬픔의 냄새가 전신을 감싸 안았다.

지나면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는 존재라 했다. 하지만 지나간 것이라고 다 추억이 될 수 있을까. 부족함은 많았어도 오순도순 정겨운 가정을 꾸리며 살던 때, 그 땐 서로 부모를 모시겠다면서 자기가 더 잘 할 거라고 했는데 정작 그 때가 되니 슬그머니 죄송해요한 마디로 등을 보이고 떠나버리는 자식들을 보며 노부부는 정이 있던 지난 시절을 그리워한다.

 

나도 요즘 들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는 지인들을 보면서 왜 좀 더 살갑게 대해 주지 못했을까 후회를 많이 한다. 생명이 떠나가 나를 알아볼 수도 없게 될 때 안타까워한들 무슨 소용이랴. 그래서 지금이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다 하나보다.

 

세상엔 세 가지의 금이 있는데 황금과 소금과 지금이란다. 황금이 가장 귀한 것 같지만 소금보단 못 하고 소금이 최고인 것 같지만 지금만은 못 하다며 지금 이 순간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귀하다고 하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때로 그 지금에 무엇을 먼저 할까를 제대로 판단치 못해 소중한 것을 놓쳐버리기도 한단다.

 

한 아이가 있었다. 부부는 각자의 일에 너무 바빠 늘 이담에 꼭 해줄게약속만 하며 자신들의 일만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드디어 부모는 아이와 놀아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는 그동안 다 자라버려 제 친구들 속에 있었다. 부모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와의 아무런 추억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지금 해야 할 일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제대로 판단할 줄 아는 지혜야말로 지나간 것들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게 하는 힘일 것 같다. 추억이 못 된다면 그건 분명 후회일 것이다. 해서 세상에는 미뤄서는 안 되는 게 있다고 하는가보다. 나중이나 다음이란 시간은 내가 다시 만날 수 있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지금이 소중하다 하는 것 아닐까.

 

하루하루가 참 빨리도 지나간다.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은 가버린다. 나이가 들면 더 시간이 빨리 간다. 그래서 머뭇거릴 틈이 없다. 하루하루 시간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도 지나면 후회되는 일이 한 둘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을 내며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게 살았던 날들이기에 뒤돌아보면 힘들긴 했어도 그 때가 내 전성기였던 것 같다. 할 수만 있다면 안정적인 지금보다도 늘 불안하고 쫓기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만일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은 오늘을 맞고 있지 않을까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막상 무언가 주고자 하면 너무 부족한 게 많은 걸 느끼는 요즘이다 보면 그 때로 돌아만 갈 수 있다면 분명 훗날 더 좋은 것 나은 것으로 줄 수 있는 것을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한 심포지엄에 참석했었다. 내 딸이나 아들 정도의 나이들인데도 발표하는 내용을 들으며 그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저 나이 때 무엇을 했던가 부끄러울 만큼 그들의 안목은 세계를 섭렵하고 있었다. 둘러보니 나만한 나이의 사람은 안 보였다. 다들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의 눈은 하나같이 빛났다. 나도 예술가의 하나라고 생각 했었지만 그들과 나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 같았다. 나는 후천적으로 관심을 가진 정도이지만 저들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데다 이 시대가 주는 각양의 기득권과 문화적 환경적 혜택까지 다 받고 있으니 나와는 비교가 될 수도 없었다. 나는 통역기에 의존하여 발표내용을 겨우 이해하고 있는데 그들은 직접 듣고 이해하면서 내가 수첩에 메모를 하는 동안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세상 속의 사람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들이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들이 누리고 있는 것, 저들이 하고 있는 것들이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시대는 오감(五感)의 지배를 받았다. 해서 기억 또한 그런 오감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돌이켜 보면 자연적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겐 그런 게 있을 수 없겠단 생각이 든다.

 

영화 속의 풍경들이 살아난다. 눈이 내린 골목길, 눈을 얹고 있는 손수레, 그리고 구불구불한 고향 길, 그런 것들은 오랫동안 기억에도 남는다. 힘들게 걸었던 길도, 넘었던 산도, 고달팠던 삶까지도 그리움이 된다. 그래서 지난 것은 모두 그리운 추억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한계일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 오늘엔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보배로움이 되는 게 아닐까.

 

지쳐온 내 삶의 길이 저 멀리로 아스라이 멀어져 보이지만 그 길을 걷고 뛰고 오르던 수많은 아픔과 슬픔 고통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는 것 아니랴. 하지만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는가.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아 이룬 합작품들이 아니랴. 그러고 보면 나는 없고 도움뿐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것은 다 감사뿐이다. 그러니 지나면 다 추억이 되지 않으랴. 나는 그저 오늘을 찍어 추억으로 만드는 사진사일 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