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편지 / 조미순

 

한바탕 비가 오려나. 몸이 찌뿌듯하다. 몇 차례 수술 후에도 오른쪽 무릎엔 통증이 여전하다. 불편한 걸음걸이가 골반과 허리까지 뒤틀어 놓는다. 습관처럼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는다. 나처럼 연식이 오래된 차에 시동을 걸고 녀석에게로 간다.

이런 날 운전대를 잡으면 생각이 많다. 손자 공부를 좀 더 봐주려면 건강이 받쳐줘야 할 텐데. 참나무 원목 표고버섯 생산량이 줄어 쪼그라드는 친정 형편은 어쩌나. 탈장 수술 후 장에 구멍이 생겨 재수술에 들어간 오빠는……. 답답한 속내 때문에 차창을 연다. 가로수와 드잡이하던 바람이 운전석으로 들이친다. 뭔가 따라 들어온다. ‘낙엽새’다. 바스락대는 가을이 손끝에 만져진다.

220년 전 한 남자의 가을 편지가 가슴에서 물소리를 내는 이즈음이다. 조선시대 화원 김홍도의 전기를 읽다가 유작 〈추성부도(秋聲賦圖)〉에 시선이 못 박혔다. 마치 내게 보내는 가을 편지 같아 죽 읽어 내렸다. 중국의 구양수가 쓴 산문시 〈추성부(秋聲賦)〉를 화제 삼았음을 증명하듯 전문이 그림 왼편에 있다.

어느 가을밤 구양수가 괴괴하고 낯선 소리를 듣는다. 오싹함이 느껴져 동자에게 묻는다. “별과 달이 환히 빛날 뿐 사방에 인적은 없고,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납니다.”라고 아이가 말한다. 그는 문득 ‘가을 소리’였음 깨닫는다.

늙고 건강마저 좋지 않았던 김홍도는 시에서 이 대목을 잡아내 화폭에 옮긴다. 그림 가운데 초옥이 있고 늙은 선비가 둥근 창으로 밖을 본다. 동자와 대화 중이다. 아이의 손가락이 마당 왼편 언덕 낙엽수들이 옷 벗고 선 데를 가리킨다. 위쪽 하늘엔 달무리진 보름달이 흐릿하다. 그림 오른편에도 메마른 가을 산과 거칠고 황량한 느낌의 나무가 섰다. 화면 속은 물기 없는 붓이 지나간 것처럼 생기가 없다. 노년의 비애가 느껴진다.

김홍도는 그림에 천재적 재능이 있었으나 도화서 화원 되기가 쉽지 않았다. 무반 출신 중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열정은 왕의 어진을 그리는 어용화사로 피어났다. 정조가 세상을 뜰 때까지 곁에서 서른 해 가까이 인물화 기록화 산수화 불화 풍속화 등을 그렸다. 한 시대를 기록하고 표현하는데 충실했다. 하지만 정조라는 얼레실이 끊어지자 김홍도라는 연은 허망하게 떨어졌다. 여전히 빛나는 화가였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그를 비껴갔다. 어린 아들 양기에게 훈장 선생 댁에 보낼 월사금이 없다는 편지를 써 보낼 때 61세 아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백우감기심(百憂感其心)이 화폭에 고스란히 담겼다.

통도사에 있다는 김홍도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산문 안쪽 아름드리 노송이 춤추듯 구불거리고 그 푸름이 눈을 씻어 주는 무풍한송로를 걸었다. 주위를 찬찬히 살폈다. 성보박물관 쪽으로 접어들자 우측 거석에 내가 찾는 이름이 있었다. ‘쿵’하고 가슴이 요동쳤다.

대마도 지도를 그려오라는 왕명을 받고 부산으로 향하다 화원 김응환과 통도사에 들른 그. 석수장이에게 이름을 새겨 달라고 한 속내가 궁금하다. 위험한 길을 가는 만큼 부처님께 의지하고 싶었을까. ‘김․홍․도’ 이름을 들여다보는데 갈잎나무를 통과한 바람이 불어온다. 낙엽이 바위를 쓸고 간다. 그의 가을 편지에 답신을 남긴다. ‘아직도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생의 가을을 너무 쓸쓸히 돌아보지는 말라고.’

오토웨이에서 내린다. 아파트단지가 보인다. 오 년째 오가는 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되자 유치원도, 학원도 못 가는 손자가 안쓰러웠다. 녀석은 한자에 흥미가 있었다. 한자 공부는 물론 독서와 글쓰기를 병행했다. 아이가 앎을 꽃피울 때마다 눈빛은 더 초롱초롱해졌다. 손자가 궁금한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할미의 입이 바빠졌다. 내 인생에서 ‘달과 별이 빛나는 가을 한 페이지’를 만들어 주는 여정이다. 아이가 원하고 또 내 건강이 따라준다면 몇 해 더 이 길을 오가고 싶다.

딸네 집 문 앞에서 벨을 누른다. 초등학교 4학년 사내아이가 “할미~”하면서 안긴다. 방금 학원에 다녀와 저녁 먹는 중이란다. 많이 먹으라며 등을 토닥인다. 수저를 놓으면 나한테 두 시간 동안 잡혀 있어야 할 테니….

교재를 펼친다. 가을, 으스름 저녁 빛이 묻어오는 시각 손자와 나는 추성부도의 여백을 채운다.

 

출처- 우리문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