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통신…맥도날드 햄버거의 아이러니

idg201908150027.jpg
맥도날드 햄버거의 아이러니

이현숙

재미수필가

엘에이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커다란 노란색 M자 아치가 자주 눈에 띈다. 미국을 대표하는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맥도날드다. 교통의 요지와 고속도로 주변에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사람을 부른다. 이민 초기인 1980년, 처음 먹어본 맥도날드의 빅맥 햄버거는 너무 맛있었다. 진한 향수병에 시달렸을 때도 내 손에 들려 태평양 바닷가에 함께 갔다. 가족들의 이름을 모래사장에 썼다 지우며 눈물을 흘리다가 누런 봉투에서 식어버린 빅맥을 꺼내 먹고는 했다. 삶의 허기를 달랬던 눈물 젖은 빵인 셈이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자리를 잡고 있기에 맥도날드는 눈을 들면 보인다는 표현도 있다. 창립자인 레이 클록은 로케이션이 사업의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체인점의 부지와 위치결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안목과 관찰력은 대단해 맥도날드 매장이 들어서면 그 주위로 경쟁업체들이 자리를 잡으며 상권이 형성된다. 그래서 맥도날드는 가장 비싼 거리와 교차로에 땅을 갖고 있다고 한다.

지나며 쉽게 만나게 되는 맥도날드의 숨겨진 이야기를 영화 ‘파운더’를 보고 알게 되었다. 미국 최대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맥도날드 창립자는 레이 클록이다. 그런데 영화에는 다른 두 명의 주인공이 더 나온다. 모리스와 리처드 맥도날드 형제다. 그들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버너디노의 작은 승차 구매(Drive-Thru) 시스템의 식당을 운영했다. 햄버거 조리를 분업화하여 30초 만에 만들어냈는데 값이 저렴하고 품질과 맛은 최고였다. 맥도날드 형제가 직원들과 테니스코트에서 주방 위치를 분필로 그려가며 몇 개월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개발한 자동 시스템 덕분이다. 헨리 포드의 자동차 모델 T형 생산라인을 재구성한 방식으로 당시 획기적이었고, 현재까지 미국 패스트푸드 주방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밀크셰이크 판매원이던 레이는 이런 맥도날드의 효율적인 운영방식에 반했다. 햄버거를 사기 위해서 끝없이 몰려드는 손님들을 보고 그의 욕망은 끓어올랐다. 교회의 십자가만큼이나 맥도날드의 황금 아치를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게 하겠다며 끈질기게 형제를 설득했다. 1955년 일리노이주 디플레인스에 맥도날드 1호점을 시작으로 레이의 질주는 멈출 줄 모른다. 가족 경영을 내세우며 재료의 신선함, 음식의 품질관리에 신경 쓰는 형제와의 마찰은 점점 커졌다. 결국, 1961년에 270만 달러와 연 이익의 1.9%를 지급받는 조건으로 상표권을 레이에게 팔았다. 그러나 연 이익금인 로열티는 구두로 한 계약이라 받지 못했다. 오직 하나, 자신들이 시작한 맥도날드 식당만은 남겨달라는 부탁도 거절당했다. 결국 ‘The Big M’이라는 상호로 바꾸었는데 근처에 맥도날드 체인점이 들어오며 망했다. 합법적으로 강탈당하고 난 후 두 형제의 허탈해하는 표정이 화면을 꽉 채우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고민했다. 현재 세계 119개국에 3만4천여 개의 매장을 소유한 글로벌 기업의 진정한 창업자는 누구일까.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며 사업 확장을 한 적극적인 레이 클록인가. 그는 자신이 1955년에 설립한 첫 프랜차이즈 식당을 1호점이라 부르고, 후에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맥도날드 형제는 햄버거를 만들었고 나는 그것을 삼켜버렸다.’ 한국판 영화 포스터에 한마디로 정리가 됐다. 맥도날드 햄버거의 창시자는 두 형제지만, '맥도날드 기업'의 설립자는 자신이라는 것이다.

아니 진정한 원조는 품질 우선을 앞세운 맥도날드 형제가 아닐까. 창립 정신은 가족이지 돈이 아니라는 순박하고 고지식한 형제가 만약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맥도날드 형제는 자신들이 개발한 아이디어로 그 지역에서 안전하게 장사를 했을 것이다. 레이는 그저 그런 시골 레스토랑으로 남을 수 있다고 형제를 비꼬는 내용이 영화에 나온다. 지역의 맛 집 정도로 알려질 수도 있었다.

레이는 야수처럼 탐나는 먹이를 잽싸게 낚아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그 영역을 넓혔다. 야비해 보이지만 그를 손가락질 할 수 없는 것은 소비자인 내가 그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바로 손에 넣을 수 있으니까. 그런 사업가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역주의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기 힘들거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가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아직도 그 아이러니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민한다. 이런저런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사업가 기질이 없는 나는 레시피를 만들고 땀 흘려 기초를 다진 형제가 창립자라고 생각한다. 맥도날드는 모든 곳에 있어야 한다며 가능성을 알아보고 키운 레이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그가 남의 것을 빼앗은 것은 확실하니까.

역시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맞다. 알고 나니 온전하게 빅맥의 맛을 즐길 수가 없으니 말이다.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