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
멕시코 국경 주변의 모습이 변했다. 멕시코의 북쪽 끄트머리 땅이자 미국으로 연결되는 국경도시 멕시칼리(Mexicali)가 달라졌다. 국경이 가까워질수록 삼삼오오 모여 있던 사람이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추면 쭈뼛쭈뼛 다가와 구걸을 하는데 모습이 멕시코인은 아닌 듯 보였다. 피부색도 짙고 머리에 터번을 쓴 사람도 있어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캐러밴인가? 캐러밴은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등 중남미 국가에서 마약과 폭력 사태를 피해 멕시코로 입경해 미국을 향해 북상하는 이주자 행렬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은 몸부림쳐도 극복할 수 없는 빈부 격차와 삶에 대한 무기력감에서 탈출하듯 목숨을 내걸고 먼 길을 걸어왔다. 이 캐러밴 행렬은 지난 몇 달간 국제적 쟁점인데 이곳에도 있나 보다. 그 무리를 지나 국경 초입에 들어섰다. 매번 붐비던 지역이 휑하게 비었다. 우리가 가는 길이 맞는 도로인지 놀라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길고 높은 강철 벽이 오른쪽을 따라 길게 이어졌다. 그런데 장벽을 따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어졌던 잡상인 텐트가 보이지 않았다. 반대쪽인 미국 땅에는 군인들이 벽을 설치하며, 이미 있던 장벽에는 새로이 날카로운 면도날이 박힌 철사를 칭칭 둘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철조망 울타리를 설치하고 군 병력도 투입해 밀입국을 막겠다더니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한 셈이다.
그 공사 때문인지 차보다 더 많던 잡상인과 걸인이 사라졌다. 잡화와 음식, 음료수를 팔던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전에는 차 사이로 다니며 물건을 파는 그들을 보며 사고가 날까 불안했다. 더러운 수건을 차의 유리창에 탁 얹으며 강제로 돈을 요구할 때면 불쾌했었다. 차 안에서 그들에게 거부의 손짓을 하느라 불편하고, 단속하지 않는 멕시코 정부에 불만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고개를 돌려 찾아봐 진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하루하루 벌어 생계를 이어갔을 아버지. 저녁 식사거리를 마련하려면 사탕 몇 줄은 더 팔아야지 하며 종종걸음을 쳤을 누군가의 어머니. 용돈을 벌려고 신문과 잡지를 둘러매고 다녔을 젊은이. 그 많던 사람은 어디서 하루의 일당을 벌까. 생계는 어떻게 이어나갈까. 걱정됐다.
국경 장벽으로 인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미국 땅에도 있다. 장벽 건설을 반대하는 민주당과 트럼프의 마찰로 인한 연방정부의 셧다운 사태가 지난해 말부터 이어져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다행히 며칠 전 대통령이 한 발 후퇴하며 정상으로 돌아갔지만, 그동안 일시 업무정지로 연방 공무원에게 월급이 지급되지 않았다. 강제 무급휴직 상태였다. 매달 지급되는 월급으로 지탱하는 중산층이기에 급여를 받지 못한 공무원 가족이 식료품 무료 배급소에 줄을 서고, 생활비가 떨어져 전당포를 찾는다는 뉴스를 봤다. 집세와 생활비, 학자금, 병원비 등을 마련해야 하기에 우버(Uber)나 리프트(Lyft) 같은 승차 공유 서비스 운전기사로 아르바이트를 한단다. 백악관조차 주방과 시설관리 등 상주 직원이 평소의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발표했다. 수도인 워싱턴 D.C.의 한 식당 주인은 연방 공무원증을 보여주면 점심시간에 햄버거를 공짜로 제공한다는 안내문을 가게에 붙여 SNS에서 인기를 끌었다. 항공 교통관제 업무에 지장이 생기면서 수백 편의 항공편이 연기되거나 취소돼 많은 사람이 불편을 겪었다. 국립공원은 관리자가 줄어 쓰레기가 쌓이고, 자유의 여신상도 문을 닫았었다.
이번 멕시코행은 불안했다.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 사태가 계속되면 멕시코 국경을 닫을 것이라는 뉴스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망설였다. 매년 1월에는 멕시코의 재산세 납부 기간이라 비록 작은 집이지만 세금을 내야 했다. 남편은 국경을 닫는 것은 국제적인 문제라 쉽게 결정하지 않을 것이니 일단 가자고 했다. 멕시코로 들어가는 길은 여권이나 비자 심사도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어 간혹 실수로 넘어가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한쪽은 쉽게 넘고, 다른 쪽은 이중으로 벽을 쌓으며 막는다. 불법 이민자 때문에 일자리도 없어지고 범죄자와 마약 등이 유입되는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 때문이다. ‘장벽 예산 50억 달러 vs 장벽 예산 제로 0’가 여러 사람 밥줄을 위협한다. 이쪽저쪽 모두 장벽으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정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멕시코인이 물건을 팔려고 뛰어다녀 복잡하던 길이 유난히 넓어 보였다. 다음번, 이 도로를 지날 때는 누군가 창문에 더러운 수건을 얹으면 거절하지 말고, 얼른 지갑을 열어야겠다. LA 도심 어느 건물의 전광판에 쓰인 표어가 생각났다. 벽을 쌓지 말고, 사랑을 쌓자.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무겁다.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