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푸드(soul food), 크림빵

크림빵이다. 큰언니가 한국 식료품점에 다녀왔다며 봉투에서 꺼내 나에게 주었다.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둥그런 얼굴에 작은 구멍이 셀 수 없이 뚫렸다. 어머나, 크림빵이네. 얼른 받아 비닐봉지를 서둘러 뜯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아니지, 그렇게 먹는 게 아니야.

언니의 말에 머릿속을 번쩍 스치는 것이 있다. 빵을 살짝 벌리니 역시나 가운데에 하얀 크림이 뭉쳐 있다. 빵을 양손에 한쪽씩 나눠 들고, 마주 비볐다. 손힘에 못 이겨 크림이 빵 전체로 널게 퍼졌다. 눈이 단숨에 마중을 나가고,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번지며,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간식거리가 흔하지 않던 그때는 금방 먹는 것이 아까워, 아니 먹어버리는 것이 아쉬워서 혀로 크림을 핥으며 단맛을 음미한 후에 빵을 야금야금 아껴 먹었다. 이제는 나이가 있으니 점잖게 양쪽을 맞대고 베어 물었다. , 맛있다. 바로 이 맛이야.

언니는 말했다. 그게 어디 맛으로 먹는 건가, 추억으로 먹는 거지.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소문난 베이커리에서 구워낸 말랑말랑한 빵에 비하면 뻣뻣하고 밀가루 냄새가 났다. 스르르 입안에서 녹는 생크림과 달리 미끈거리고 고소하지 않지만, 내 혀와 마음은 그 빵 봉지를 받았을 때 이미 어린 시절의 달달한 시간 속으로 달려갔다.

그때 그 시절. 모든 것이 귀했다. 껌을 씹으면 단맛이 다 빠져도 버리기 아까워 잠들기 전에 벽이나 장의 한구석에 붙여 놓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다시 입에 넣어 침으로 적당히 녹녹하게 만든 후 오물거리곤 했었다. 언니가 자주 해주던 찐빵도 그중의 하나였다. 밀가루 반죽에 이스트를 넣어 하룻밤을 재운 후 팥을 넣어 쪄낸 빵. 갓 나온 쑥으로 만든 개떡. 고구마를 찐 후에 적당한 크기로 잘라 바짝 말렸다가 먹으면 쫀득쫀득해 씹을수록 단맛이 입안을 돌았다. 엄마가 메주를 만들 때, 옆에 앉아 막 쪄내 김이 솔솔 올라오는 콩을 한 숟가락씩 얻어먹기도 했다.

초등학교 담벼락을 따라 길게 늘어선 좌판의 군것질거리는 집으로 향하는 발길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수저에 설탕과 소다를 녹여 그 위에 여러 모양이 찍은 후, 그대로 떼어내면 하나를 공짜로 얻을 수 있는 뽑기와 달고나는 단골 메뉴다. 특히 별 모양은 꺾이는 부분이 많아 쪼그려 앉아 옷핀에 침을 묻혀 정성을 들였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안에 든 설탕이나 팥에 혀를 데이면서도 호호 불며 먹던 호떡과 붕어빵. 칡뿌리는 껌 대용이고, 신문지로 만든 삼각뿔대 모양에 담아 주던 번데기와 소라는 그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하얀 별사탕을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한 뽀빠이 과자도 기억난다. 추운 겨울밤, 골목길을 메아리치던 찹쌀떡 장수의 발목을 잡으려고 아버지의 다리를 주무르며 애교를 부리기도 했었다.

25년 만에 고국을 방문했다. 여고시절 친구들과 드나들던 신당동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하굣길에 친구들과 몰려갔던 그곳은 허름한 판잣집이다. 할머니가 연탄불 위에 넓은 냄비를 올려주면, 끝없이 이어지는 수다에 꿈과 희망을 양념으로 떡볶이가 익기를 기다렸다. 가끔 할머니가 덤으로 야채를 얹어주면 약속이나 한 듯, 입 모아 감사하다고 합창을 했다. 그러고는 그것이 웃겨 또 까르르 넘어갔다. 다시 찾은 신당동 떡볶이 골목은 모두 원조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데, 갖은 부재료를 넣어 냄비가 넘치도록 풍성했지만, 그 맛이 아니었다. 할머니도, 그 매콤하고 달던 국물 맛도, 친구들도 사라졌기 때문일까.

며칠 전 서울에 사는 조카가 단체 카톡방에 사진을 하나 올렸다. 어릴 때 엄마가 해 주던 막걸리 빵을 만들었다며 그 과정을 찍어서 올렸다. 그 밑으로 맛있겠다. 엄마처럼 콩을 넣어봐. 댓글이 주룩 달리고 언니는 우리 딸 어느새 살림꾼 됐다며 즐거워했다.

요즘 온갖 기호식품에 맛을 들인 아이들에게 이런 간식을 내민다면 맛이 없다고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들은 내가 사다 놓은 번데기 통조림을 보고 벌레를 징그럽게 먹느냐며 버렸다. 요즘은 풍요로운 환경과 세계 각국의 음식을 접할 수 있다. 온갖 향신료와 조미료로 길든 그들 입맛에 담백하지만 투박하고, 흔한 재료를 이용한 간식이 맛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음식은 그 시절의 풍속과 흐름, 시대상을 말한다. 인스턴트식품에 길든 시대는 즉석에서 해결되고, 더욱 강한 맛, 색다르고 자극적인 것을 원한다. 어릴 적 간식은 자연에서 그 재료를 구하고 삶는 과정을 거치는 인내와 기다림을 배웠다. 귀하기에 아낄 줄 알고,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인심과 정이 있었다. 지나온 시간은 다시 갈 수가 없기에 아쉬운 것일까, 어린 시절의 느낌과 감성을 되새길 수 있어서 그리운 것일까. 세상의 풍파에 시달리다 시름을 잠시 내려놓고 근심과 걱정 없던 순수로 돌아가고 싶어서일까. 고국을 떠나 미국에 살기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멀어진 거리만큼의 아쉬움이 배가되어서인지도 모른다. 기억 속의 음식에는 추억이 담겼기에 그 맛은 잊히지 않고 새록새록 생각난다.

오랜만에 먹은 크림빵은 소울 푸드(Soul food)가 되어 얼굴에 찍힌 구멍만큼이나 많은 생각을 떠오르게 했다. 작은 사건 하나에도 이렇게 즐거울 수가 있다. 입가에 묻은 크림을 혀끝으로 살짝 핥는다. 역시 맛있다.


There are memories contained in the food that I ate as a child.

Food speaks of the culture, trends, and generation of that time.

During the perriod of instant foods, peoples seek speed and convenience,

stronger tastes, and vriety of stimulating flav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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