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서] 애나벨리와 에드거 앨런 포

이현숙 / 수필가
이현숙 / 수필가 

[LA중앙일보] 발행 2019/04/26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04/25 20:42

뉴욕 브롱스 포 파크(Poe Park)엔 포 카티지(Poe Cottage)라는 에드거 앨런 포의 작은 집이 있다. 하얀 목조 건물은 지붕이 얕고 옆으로 길게 지어진 2층 건물이다. 이름 모를 노란 꽃이 잡풀들과 어울려 바람에 흔들리는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집과 함께 위태롭게 보였다. 힘주어 밟으면 부서질 것처럼 삐걱거리는 오래된 계단을 조심스레 밟았다.

포의 어린 아내 버지니아는 결핵을 앓았다.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24살의 나이로 죽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쌉싸름한 슬픔이 협소한 집 안 구석구석에 거미줄처럼 얽혔다. 침실의 작은 침대에서 포의 아내가 숨을 거두었다는데 난로를 피울 장작이 없어 포의 낡은 재킷을 덮고, 그가 손을 잡는 것으로 체온을 유지했단다.

좁은 계단을 오르니 포의 흉상이 슬픈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본다. 주위를 한번 휘 둘러보고 슬그머니 앉았다. 딱딱하고 차갑다. '옛날 아주 오랜 옛날/ 바닷가 어느 왕국에는/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애나벨리라는 처녀가 살았다네' 학창시절 시 낭송의 밤에 빠지지 않고 낭송됐던 시 구절이 떠올랐다. 포는 엄동설한에 가련하게 눈을 감은 아내를 바닷가 어느 왕국에 사는 소녀, 애나벨리로 미화시켜 애도했다. 자신과 애나벨리의 사랑은 천사들조차 샘을 낼 정도의 고귀한 사랑이었으며, 죽음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다고 노래했다.

죽음과 암울한 소재를 독특한 형식으로 다룬 그의 작품은 대중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대공황으로 사정이 어려웠던 출판사는 제대로 된 원고료를 주지 않았기에 미국 최초의 전업 작가인 그는 가난했다. 볼티모어에서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상태로 발견된 고독한 스토리텔러는 40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는 마지막 말은 "신이시여, 내 불쌍한 영혼을 돌보소서"였다.


사랑을 찾아 허덕이고 평생 가난에 찌들어 살다가 길에서 비명횡사한 그의 삶 자체가 미스테리한 작품이다. 추리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는 복수를 바탕으로 한 작품 속에서 독자를 끝까지 놓아주지 않고 흔든다. 주인공을 '나'라고 표현했기 때문일까. 그의 작품을 읽으면 그 안에 빠져들게 된다. 탐정 뒤팽을 만들어낸 그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를 미로로 끌고 다닌다.

2층으로 관람객들이 올라왔다. 집이 좁아 자리를 양보해야겠다. 문 앞에 놓인 방명록에 한글로 이름을 적어 내가 다녀갔다는 기록을 남겼다. 에드거 앨런 포. 그는 파란만장한 삶은 그가 죽은 휘 작품과 연결돼 더 빛이 났다. 그의 작품 안에는 그가 다시 살아난다.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자, 그럼 다시 돌아가야겠어! 아직 절망은 이르거든." 그의 작품 '황금 벌레'에서 말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