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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포옹, 그 좋은 느낌
이현숙 /수필가
이현숙 /수필가 

[LA중앙일보] 발행 2019/02/05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02/04 18:40

나는 포옹(Hug)을 좋아한다. 결혼 전, 남편에게 만약 내가 토라졌거나 말다툼을 했다면 나를 꼭 안아 달라고 했다. 봄날 햇살을 받은 얼음처럼 스르르 녹을 것이라고. 그는 자신이 불리할 때 이 방법을 사용했고, 나는 아닌데 하면서도 그 포근함에 그냥 넘어가 주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포옹이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한다. 구부러지는 두 팔만 있다면,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데 바로 포옹이다.

며칠 전 생필품을 사러 코스트코에 갔다. 공휴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은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와서 붐볐다. 바로 앞에 열 살 정도 돼 보이는 남매를 데리고 온 히스패닉 여인의 차례다. 남자직원이 물건을 계산하며 여자아이에게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맑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내셔널 허깅데이"라고 답했다. '마틴 루터킹 데이'라 할 줄 알았는데 의외라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직원은 옆에 있는 다른 직원을 안으며 말했다. "맞아, 오늘이 포옹의 날이지." 그의 재치에 어색할 수 있었던 분위기가 풀리며 도미노 현상처럼 한두 사람씩 웃으며 포옹을 했다. '국제 포옹의 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남편과 친정어머니가 처음 만난 날이 생각났다. 남편은 어머니를 보자 덥석 안았다. 외간 남정네가 포옹하니 어머니는 양팔을 어설프게 벌린 채, 그의 어깨너머로 나에게 구조를 청하듯 울상이 됐다. 그 표정이 너무 재밌어서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다. 어색했지만 차츰 두 사람은 만나고 헤어질 때 당연하다는 듯 서로 안고 등을 다독이며 정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척추 수술 후에 거동이 불편해 양로병원에 머물게 됐다. 마침 남편은 정년 퇴직했기에 나와 함께 매일 병원으로 출근했다. 아침이면 곱게 단장한 할머니들이 병원의 복도에 휠체어를 타고 나란히 앉아 가족을 기다렸다. 남편은 어머니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포옹했다. 한동안은 바라만 보던 어머니의 룸메이트가 어느 날 자신은 왜 안아주지 않느냐고 항의를 했다. 그 옆의 할머니도 "나도 나도." 결국 남편은 매번 서너 명의 할머니들을 포옹해 주었다.

미국 사람은 포옹을 자연스럽게 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쑥스럽고 어색해 한다. 부부간이나, 부모와 자녀 간이나, 형제자매 간에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사랑 표현이 익숙하지 않다. 포옹은 혈압을 낮춰주고, 심박수를 안정적이게 하며 스트레스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어린 아이를 안아주면 호흡, 심장박동, 혈당 등 자율신경계가 안정된단다. '허그 테라피'는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만으로 아픈 곳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한동안 붐을 일으켰던 '프리 허그'는 포옹을 통해 현대인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를 이루려는데 목적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움츠렸던 어깨가 활짝 펴지고, 따스한 기운이 온몸에 퍼졌다. 사랑의 날, 밸런타인스 데이도 곧 다가온다. 그저 안아주자. 포옹 한 번으로도 서로의 빈 마음을 채울 수 있다는데, 얼마나 쉬운 방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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