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서] 주유소 새치기

이현숙 / 수필가
이현숙 / 수필가 

[LA중앙일보] 발행 2019/03/05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9/03/04 18:54


황당한 일을 겪었다.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다고 했던가. 코스트코 주유소에서 말다툼이 있었다. 일반 주유소보다 갤런당 10~15센트 가격이 낮기에 대기하는 차들로 항상 줄이 길다. 오늘도 우리 앞으로 여섯 대의 차량이 기다렸다. 남자들은 왜 그렇게 자동차 기름값에 민감한지 모르겠다. 차량 두 대가 주유할 수 있는데 맨 앞에 있던 차가 주유를 마치고 떠났다.

드디어 우리 차례다. 차를 슬슬 이동하는데 남편이 "어, 저 사람 뭐 하는 거야."라고 소리쳤다. 뒤에서 달려 온 차가 우리를 스쳐 지나가 앞쪽의 주유 대에 차를 세웠다. 새치기다. 차례를 빼앗긴 것이다. 남편이 차에서 내리려 하기에 나는 그의 오른쪽 팔을 붙잡았다. 그냥 놔둬요. 참아요.

남편은 저 사람이 질서를 어겼으니 알려줘야 한다며 나를 뿌리쳤다. 문제의 차에서 중국계로 보이는 중년의 여자가 내려 주유기에 회원 카드를 입력하려고 했다. 옆의 기계에서 주유하던 백인 할머니가 새치기한 여인에게 당신의 차례가 아니니 차를 빼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남편은 "뒤를 봐라, 저 많은 차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순서를 지켜라. 당신 때문에 사고 날 뻔했다"라며 항의를 했다. 그녀는 들은 척도 않고 주유기를 빼 들었다. 남편이 그녀 앞을 막아섰다. 한 둘씩 구경꾼이 모여들었다.

히스패닉 남자가 그 혼란을 뚫고 나오더니 자신이 다 보았는데 저 여인이 분명 새치기를 했다고 증언(?)했다. 그녀는 당당하게 코스트코 회원이면 누구나 주유할 수 있고, 앞자리가 비었는데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 내가 온 것이다. 뭐가 잘못이냐고 항변했다. 안하무인이다. 뻔뻔스럽다. 주변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들며 그녀의 잘못을 지적했다. 누군가 경찰을 부르자고 했다. 사태가 커지자 그녀는 겁이 났는지 자리를 떠났다.

아마도 저 여인은 몇 차례 이렇게 새치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그랬겠지만 이번에는 딱 걸린 것이다. 오늘 당한 망신이 그녀를 변화시켰으면 좋겠다. 잘못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는 나처럼 방관이나 침묵하기보다 경고와 항의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줄을 선다. 줄 서는 것은 먼저 온 사람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간단한 원칙이다. 이것만 지키면 얼굴을 붉히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생기지 않는데 틈새를 노려 새치기하는 얌체족이 있어 문제가 발생한다.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우선시하는 이기심과 욕심에서부터 나온 행위다. 내 시간만큼 타인의 시간도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오늘 같은 소동은 사라질 터이다. 5분 먼저, 혹은 한두 발자국 앞선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데 조바심을 내는 것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다.

나는 굼뜨고 눈치가 빠르지 못하기에 줄 서는 것에 불평하지 않는다. 줄에서 기다리면 남보다 앞서지는 못할지라도 딱히 손해도 보지 않을뿐더러 남들과 어우러져 평범하게 사는 방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