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서] 나의 소울 푸드

이현숙 / 수필가
이현숙 / 수필가  
크림빵이다. 언니가 한국 식료품점에 다녀왔다며 나에게 주었다.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둥그런 얼굴에 작은 구멍이 셀 수 없이 뚫렸다. 빵을 살짝 벌리니 역시나 가운데에 하얀 크림이 뭉쳐 있다. 빵을 양손에 한쪽씩 나눠 들고, 마주 비볐다. 손힘에 못 이겨 크림이 빵 전체로 퍼졌다. 눈이 단숨에 마중을 나가고,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번지며,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간식거리가 흔하지 않던 그때는 금방 먹는 것이 아까워, 아니 먹어버리는 것이 아쉬워서 혀로 크림을 핥으며 단맛을 음미한 후에 빵을 야금야금 아껴 먹었다.

그때 그 시절. 모든 것이 귀했다. 껌을 씹으면 단맛이 다 빠져도 버리기 아까워 잠들기 전에 벽이나 장의 한구석에 붙여 놓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 껌을 다시 입에 넣어 침으로 적당히 녹녹하게 만든 후 오물거리곤 했었다. 밀가루 반죽에 이스트를 넣어 하룻밤을 재운 후 팥을 넣어 쪄낸 빵. 갓 나온 쑥으로 만든 개떡. 고구마를 찐 후에 적당한 크기로 잘라 바짝 말렸다가 먹으면 쫀득쫀득해 씹을수록 단맛이 입안을 돌았다. 메주를 만들 때, 엄마 옆에 앉아 막 쪄내 김이 솔솔 올라오는 콩을 한 숟가락씩 얻어먹기도 했다.

국민학교 담벼락을 따라 길게 늘어선 좌판은 집으로 향하는 발길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수저에 설탕과 소다를 녹여 그 위에 여러 모양이 찍은 것을 그대로 떼어내면 하나를 공짜로 얻을 수 있는 뽑기와 달고나는 단골 메뉴다. 특히 별 모양은 꺾이는 부분이 많아 온정성을 들였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안에 든 설탕이나 팥에 혀를 데이면서도 호호 불며 먹던 호떡과 붕어빵. 칡뿌리는 껌 대용이고, 신문지로 만든 삼각 뿔대 모양에 담아 주던 번데기와 소라는 그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며칠 전 서울 사는 조카가 단체 카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어릴 때 엄마가 해 주던 막걸리빵을 만들었다며 그 과정을 찍었다. 그 밑에 가족의 댓글이 달렸다. 맛있겠다. 엄마처럼 콩을 넣어봐. 언니는 우리 딸 어느새 살림꾼 됐다며 즐거워했다.

요즘 온갖 기호식품에 맛을 들인 아이들에게 이런 간식을 내민다면 맛이 없다고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향신료와 조미료로 길든 그들 입맛에 담백하지만 투박하고, 흔한 재료를 이용한 간식이 맛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인스턴트식품에 길든 시대는 즉석에서 해결되고, 더욱 강한 맛, 색다르고 자극적인 것을 원한다. 나의 어릴 적 간식은 자연에서 그 재료를 구하고, 그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인내와 기다림을 배웠다. 귀하기에 아낄 줄 알고,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인심과 정이 있었다. 지나온 시간은 다시 갈 수가 없기에 아쉬운 것일까, 기억 속의 음식에는 추억이 담겼기에 그 맛은 잊히지 않고 새록새록 생각난다. 오랜만에 먹은 크림빵은 소울 푸드가 되어 얼굴에 찍힌 구멍만큼이나 많은 생각을 떠오르게 했다. 입가에 묻은 크림을 혀끝으로 살짝 핥는다. 역시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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