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통신]재활용의 장, 그라지 세일(Garage Sale)


“필요 없는 물건을 헐값에 팔고필요한 물건을 저렴하게 장만하는절약과 실용의 의미를 배웠다”

2018.06.07

이현숙
재미수필가

이웃의 아줌마들이 뭉쳤다. 
며칠 전 하루 날 잡아 세 가족이 모여 고기를 구워 먹자는 이야기를 하다가 그 경비를 그라지 세일(Garage Sale)을 해서 만들면 좋겠다고 마리아가 제안했다. 
미국인들은 날씨가 좋은 주말이면 자신의 차고 앞이나 마당에 필요 없어진 살림살이를 내놓고 이웃들에게 헐값으로 처분한다.
거리에 광고판을 붙이거나 지역신문에 올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즉흥적으로 펼쳐지는 경우가 많다. 
손님도 지나다 들리는 동네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드디어 벼룩시장을 펼치는 날. 마리아의 집 앞마당은 세 가정에서 나온 물건들로 작은 언덕 다섯 개가 봉긋하게 솟았다. 
그라지 세일에 익숙한 마리아와 루시는 척척 알아서 물건을 분류했다.
티셔츠와 청바지는 옷걸이에 걸고, 부엌용품은 1달러, 가방과 신발류는 2달러, 찌그러진 액자, 얼룩 묻은 침대보, 이 빠진 그릇들이 패잔병처럼 주눅이 든 채 웅크리고 있다.
고가의 물건은 어린이용 자전거로 5달러다. 
남편들은 전단을 골목의 네 모퉁이에 붙이고 간이 테이블을 설치하며 도와준다.

나는 이틀 전부터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옷장 안 구석에 있는 상자에서 지난 몇 년간 바깥바람을 쏘지 못한 채 갇혀 있던 옷과 차고 선반에서 커피메이커와 머그잔 그리고 유리그릇을 찾아내 먼지를 닦아내니 쓸 만해 보였다.
살이 빠지면 다시 입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손님을 초대하면 음식 준비에 필요할지 모르니, 추억이 담긴 물건이라 차마 버릴 수 없어서라는 각각의 이유로 쌓아두었던 것을 내놓으니 넓어진 공간만큼 마음도 넉넉해졌다. 

오가는 사람들이 기웃거리며 물건을 들춰본다. 
한인들 보기에는 거저 준다 해도 거들떠볼 것 같지 않은 물건도 의외로 임자가 나타난다.
무릎이 찢어진 리바이스 청바지를 들고 이리저리 재보던 중년 여성은 하단 부분을 오려내고 가방으로 만들면 좋겠다며 2달러를 내밀고, 얼룩진 커튼은 길 건너편에 사는 소피 엄마가 쿠션으로 만들면 자신의 집 소파에 어울리겠다며 얼른 집어들었다. 
물건이 오래됐거나 낡아도 괜찮다. 
적절한 것으로 재활용하는 정보를 교환하고 삶의 지혜도 나눈다.

손님을 기다리며 야외용 의자에 앉아 커피와 마리아가 구운 쿠키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히스패닉인 마리아, 흑인인 루시, 그리고 한국인인 나. 인종은 달라도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
남편의 흉보기와 자식 걱정 그리고 손자 자랑이 서로 질세라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물건을 구경하던 손님까지 합세해 이야기 잔치가 벌어지며 동네 사랑방이 되었다.
온종일 뙤약볕에 손님과 흥정하고 물건을 추스르는 일은 하루 인건비로 따지자면 밑지는 장사인데도 버리면 그만인 헌 물건들을 가지고 그라지 세일을 하는 것일까 의아했었는데 내가 직접 해보니 돈으로 사지 못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물건 가격이 워낙 저렴하니 목돈을 만들 거라는 생각을 안 했는데 128달러를 벌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더니 1달러짜리 물건을 팔아 모은 것이라 몇 배의 무게로 부풀어 올라 돈을 쥔 손이 무겁게 느껴졌다. 
해가 어둑해지며 짐을 정리하고 핫도그와 햄버거로 열다섯 명이 풍족하고 유쾌한 바비큐 파티를 즐겼다. 

어릴 적 과자 상자에 적혀 있던 ‘아나바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미국에서는 불필요한 물건을 거절하자(Refuse), 쓰레기를 줄이자(Reduce), 반복해서 사용하자(Reuse), 재활용을 활성화하자(Recycle)는 4R 표어가 있다.
물건을 버리는데도 돈을 주고 처리를 해야 하는 시대에 부담 없이 정리할 수 있고, 필요한 사람은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나에게는 필요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쓰일 수 있는 물건을 재활용품센터에 기증하면 가격만큼의 세금을 면제해주는 증서를 준다. 
‘굳디-굳디(Goody-Goody)’라고 불리는 트리프티 중고품 상점에서 그 물품을 팔아 이익금은 아동병원이나 구호재단으로 보낸다. 
가끔 주인이 값어치를 모르고 내놓은 골동품을 헐값에 샀다가 횡재했다는 뉴스가 들리기도 하는데 일삼아 그라지세일을 돌아다니는 골동품상인도 있다고 한다.

물자가 풍부해진 세상에 살기에 아끼고 절약하는 것이 더는 미덕이 아니라고 한다.
소비해야 경제가 돌아간다고 하지만 직접 그라지 세일을 해보니 단 1센트도 낭비하지 않고 귀하게 여기는 미국인의 실용적인 사고방식이 부럽다. 
남이 입던 옷이나 가구를 꺼리지 않고 자신에게 맞게 적절히 재활용하는 모습이 유명브랜드의 신상품을 쫓아다니는 사람들보다 여유롭게 보인다. 
다음 주에도 오늘 팔다 남은 물건으로 재활용(Recycle) 마당을 펼치기로 했다.
필요 없는 물건을 새로운 주인에게 헐값에 팔고, 필요한 물건을 공짜나 다름없는 돈으로 장만하는 절약과 실용의 의미를 배운다. 
내 손때가 묻은 것을 타인의 손에 전달하며 이웃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준 그라지 세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