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통신]상자 밖에서 생각하라 Think outside the box                 

“기존 통념 벗어버린 ‘태양의 서커스’모토는 “안주 말고 위험에 도전하라”매번 색다르고 강렬한 감동 밀려와 ”

2018.02.08

이현숙
재미수필가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공연을 보러 왔다. 
다저스 구장의 넓은 주차장에 하얀색의 거대한 텐트 ‘빅탑(Big Top)’이 비밀을 담은 듯 웅크린 채 앉아 있다. 
태양의 서커스는 1982년 거리공연을 하던 캐나다 예술가들이 만든 문화기업으로 이번 공연의 주제 ‘루지아(Luzia)’는 38번째 작품이다.
텐트 위에 높게 달린 15개 나라의 국기는 그 나라 예술가가 참여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알리며 펄럭였다. 

루지아는 스페인어로 빛을 뜻하는 루즈(luz)와 비를 말하는 유비아(lluvia)의 합성어다. 
태양의 신과 비의 신을 숭상하는 멕시코의 전통과 문화를 그들만의 몽환적이고 개성적인 무대에 녹여냈다. 
천장에서 광대가 낙하산을 타고 원형의 무대에 떨어지며 공연은 시작됐다.
그가 무대 앞쪽에 높인 태엽을 돌리자 360도 회전하는 무대 위에 나비 분장의 연기자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달렸다. 
맨발로 수백 ㎞를 멈추지 않고 달렸다는 불굴의 상징인 타라후마라 후손으로, 생존을 위해 먼 길을 떠난다는 모나크나비를 등장시켰다. 
무대 중앙에 달려 있는 대형의 원은 태양을 상징하는데 아스텍 문화에서 사람은 죽은 후 그 영혼이 4년 동안 태양과 여행하고 벌새(허밍버드)로 태어난다고 한다.
벌새들은 2단과 3단의 링에서 재주넘기를 했다. 

사막에서 사는 파충류들이 반신반인으로 마야족의 전통을 나타냈고, 마리아치 밴드가 라틴 아메리카의 리듬을 연주했다. 
멕시코 전통의상을 입은 여성이 주술을 거는 듯, 스페인어와 흥얼거림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목소리에 묘하게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혁명가 사파타가 좋아했다는 종마가 무대 위를 장악하며 힘차게 달렸고, 야생의 재규어와 밧줄묘기를 하는 사람은 경계심을 풀고 교감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모습을 보여준다.

천막 지붕에서 떨어져 내리는 관능적인 비는 꽃, 동물 등의 무늬를 만들며 자연을 품었다가, 유카탄의 기후처럼 순간 증발해 버렸다. 
사막의 갈증에 지친 광대는 갑자기 나타난 호수에 뛰어들었는데 순식간에 물이 사라지며 맨땅에 머리를 부딪쳐 관객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원형의 무대를 평지에서 수중 무대로 바꾸려 수압 조절 장치를 써서 몇 초안에 물을 빼고 채우는 기술을 개발했다. 

과거로 돌아가 전통을 표현하고, 멕시코시티의 댄스홀에서 벌인 신나는 춤판과 온몸을 이용한 축구공 묘기로 현재의 무한한 가능성을 펼쳤다. 
그들은 직선과 곡선으로 신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아크로바틱으로 공중제비를 넘고, 그네를 타며, 폴 댄스로 아찔한 연기를 했다. 
그중 큰 환호를 받은 공연은 ‘연체곡예(컨토션, contortion)’다.
뱀의 형상을 한 곡예사가 신체를 굽히거나 뒤틀며 유연성을 보였다.
몸을 뒤로 젖혀 머리의 뒤통수가 발뒤꿈치에 닿는가 했는데 순간 무릎 사이로 얼굴을 내밀자 관객들은 비명을 질렀다. 

뱀처럼 똬리를 틀며 상상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고 다른 공연자들은 주위에서 “괴물이 나타났다(알레브리헤스, Alebrijes)”라고 외쳤다. 
고대 멕시코지역에서는 신비한 뱀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한단다.
그는 인간이 아니라 그냥 뱀이다. 

태양의 서커스는 기존의 서커스와는 다르다. 
무대에 동물이 등장하지 않고 막이 없다. 
연기자들이 무대 장치를 직접 설치하고 해체한다. 
광대가 팬터마임으로 관객들과 소통하는 동안 뒤편에는 다음의 쓰일 도구들을 들고 나오는데, 그 자체가 연기인 것처럼 자연스레 소화하기에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고 몰입할 수가 있다.

그들의 모토는 ‘상자에서 벗어나 생각하라 (Think outside the box)’다.
상자 안의 정해진 틀 안에 안주하지 말고 밖으로 나가 위험에 도전하라. 세상의 편견에서 벗어나 열린 사고를 하라는 의미다. 
담당자는 세계 각국을 돌며 이야기 감과 최고의 인재를 찾는다.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벼랑 끝에 서 있는 마음으로 특수한 메이크업과 의상을 개발하고, 악기와 음악도 새로운 장르를 접목하려 노력한다. 
그것이 서커스의 통념을 벗고 아트서커스로, 종합 예술로 바꾸어 빠른 속도로 변화는 다양한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다. 
뻔한 내용의 서커스를 여러 번 보는 사람들은 없을 터이니까. 네 번의 ‘태양의 서커스’를 보았는데 그때마다 색다르고 강렬한 감동이 다음에는 어떤 공연일지 기다리게 만든다.

예술은 관객에게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데 의미가 있다고 한다.
돌아오는 내내 생각에 잠겼다. 
미국에 이민 온 것이 커다란 도전이었는데,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다는 생각에 똬리를 틀고 그저 그런 일상을 보내다가 모국어로 글을 쓰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한정된 소재의 테두리에 갇혀 허덕이지 말고, 양쪽 언어와 문화 사이를 오가는 것이 아니라 둘을 잇는, 진정성 있는 삶을 그려내야겠다. 
이민이라는 상자에서 벗어나 현재의 자리에서 열린 세상을 바라보고, 그 새로운 발견을 글로 옮기자.
이현숙
재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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