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통신]한 여학생의 선택

“학교·사회 집단 따돌림 현상이한 사람의 성격을 변질시키고자존감과 자신감을 잃게 한다”

2018.04.05

이현숙
재미수필가

방송들이 정규방송을 멈추고 오전 내내 중학교 교실에서 일어난 총격사건을 보도했다. 
LA에 있는 중학교교실에서 총성이 나고 15세의 남학생이 머리에, 15세의 여학생이 손목에 상처를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경찰의 발표로는 문제의 여학생이 학교에 와서 보니 자신의 가방에 총이 있어 놀랐고, 무서워서 바닥에 떨어트리며 총알이 발사된 오발 사고라지만 계속 조사 중이라고 했다. 
발 빠른 한 방송국 리포터는 가해자로 판명된 여학생 할머니와 전화 통화했는데 최근 손녀가 학교에서 왕따(bullying)를 당해 힘들어했단다. 

오래전, 우연히 교육 세미나에 참석했다. 
주제는 ‘한인 청소년 왕따 실태 연구’였다. 
LA 이민자 가정의 아이들 중,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는 학생이 40%고, 75%는 목격했지만 선생님이나 부모에게 알리지 않는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외모나 피부색이 달라서, 성격이 소심하거나 왜소한 체격, 혹은 심기를 거슬렸다거나 아무 이유도 없이 왕따의 희생양이 되어 또래들 사이에서 각종 불이익과 육체적 정신적 폭행을 겪는다. 
이민자 가정은 문화적, 언어적 차이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설명했다. 
그중 방과 후 희생양이 될 아이를 백화점에 강제로 데려가 가방에 몰래 물건을 넣고 그가 곤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즐긴다는 내용에 숨이 탁하고 막혔다.
그 상황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학교에서 돌려보기도 하며 비웃음거리로 만들기도 한단다.
학생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일을 부모나 교사에게 알리면 고자질했다고 더 심한 따돌림을 당할 것이라는 공포로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계속 시달린단다.

작은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당한 일이 떠올랐다.
일하고 있는데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아들이 절도죄로 현장에서 잡혔다는 것이다. 
아닐 거야, 뭔가 잘못됐겠지 하는 마음으로 경찰서에 갔다.
경찰은 아들이 백화점에서 여성용 향수를 백 팩에 넣고 나오다 걸렸는데 경범죄니 집으로 데려가라고 했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 앞에서 무릎의 힘이 빠지며 주저앉고 싶은 걸 참고 집에 와서 아들을 붙잡고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입을 꾹 다문 그는 말이 없다. 
“남의 물건을 훔쳤다는 말이 정말이야, 내가 너를 그렇게 잘못 가르쳤니, 엄마가 장사하며 좀도둑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알면서 네가 그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지 않는 아들이 미웠고, 하루 16시간 힘들게 일하는 게 다 너를 위한 것인데 몰라주고 말썽을 피웠다고, 이민 생활에 지친 한을 그에게 쏟아냈다.
아들은 학교에서 5일 정학을 받았다. 
얼마 후 청소년법원의 판사 앞에서 판결을 받고, 벌금을 내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주위에서는 자식 자랑이 넘치는데 나만 이런 일을 겪는다는 것에 화가 났고, 누가 알게 될까 봐 쉬쉬했다.

실례를 듣고 나니 당시 상황이 톱니가 맞추어졌다. 
아들은 왕따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믿어주지 못하고 다그치기만 했으니 학교에서는 왕따를, 집에서는 무시를 당하며 이중으로 고통을 겪었을 아들이 얼마나 서러웠을까. 혼자서 겪으며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4년을 어떻게 이겨냈을지, 견뎠는지 상상이 안 된다. 
엄마로서 무지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부모는 자녀의 왕따 피해 사실을 알았을 때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행동해 믿음을 심어 주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말에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다.

세미나를 듣고 집에 와서 아들을 보니 차마 눈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니 새삼스레 이야기를 꺼내 당시의 고통을 되살리기 싫었다.
올해로 서른 살이 된 아들에게 아직도 나는 그때의 일을 묻지 못한 채 아픈 상처로 간직하고 있다. 
아니 사과를 하고 위로해 주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나만의 핑계로 난관을 이겨내고 스스로 헤쳐 나온 것을 그저 감사할 뿐이다. 

10대는 가치관이 빠르게 변하고 쌓여가는 시기인 사춘기다.
왕따를 당한 사람은 더욱 소통 없이 고립되어 소극적이고 자신감도 없어져서, 인간관계에서 악순환이 지속하는 경우가 많다. 
집단따돌림 현상이 한 사람의 성격을 변질시키고, 자존감과 자신감을 잃게 한다.
오늘의 사건은 언론에 의해 총기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교사들에게 소정의 교육을 받게 해 총기를 소지하게 해야 하고, 금속 탐지기를 정문에 설치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학교에 총을 가져온 여학생이 왜 그랬을까는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녀가 왕따로 괴로워하다 상대에게 겁을 줄 생각으로 총기를 가져 왔을 것이라는 내 생각은 틀린 것일까. 본질을 벗어난 토론에 TV를 껐다. 
집단 따돌림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학교에서뿐 아니라 사회 구석구석에서도 이어진다. 
뿌리 깊은 문제점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다. 
이현숙
재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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