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디에


말은 인간에게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터놓게 하려고 만들어졌고, 배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제를 진행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라고 로이드는 말했다.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의 약 70%를 말하거나, 읽고 쓰는 정보교환에 소비한단다. 이중 약 33%를 말하는 데 사용한다니 이 빠진 생활은 상상할 수가 없다.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요, 생각을 정리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것들을 받아들이는 데 필요 충분조건이다. 말과 함께 인류문명이 발달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그 안에 넓게는 시대적 배경과 역사의 흐름이, 좁게는 개인의 지방색과 성격, 나이와 살아온 환경, 또한 세대 간의 의식 차이까지 배어져 나온다. 그래서 말하는 품새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이 드러나게 된다고 한다.


더욱이 이민 생활에서는 이 말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많은 의미가 부여되기에 사랑하며 가꾸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영어권에서 틀릴까 봐 스트레스를 받으며 말하다가도 우리끼리 모국어를 나눌 때 느껴지는 포근함과 친근감은 긴장을 해소하는 역할을 해 준다. 또한 자녀들이 모국어를 배울 수 있는 교육장이 바로 가정이고, 부모는 선생님이 되기에 올바르고 정확한 말을 구사해야 한다. 무심코 나눈 한 마디가 바로 그들에게는 교과서가 되기 때문이다. 자녀들뿐 아니라 타 인종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어느 날 가게에 단골인 호세가 들어서며, 어눌한 한국어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미친놈.”


자기 딴에는 자랑하려고 한 것인데 듣는 우리는 기가 막혀서 입이 딱 벌어졌다.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일하는 가게 주인이 한인인데 자신을 미친놈이라고 부른단다. 남자를 대변하는 호칭쯤으로 알고 있다는 말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다 제치고 하필 욕을 가르쳤을까?’ 하는 생각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미워졌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그 뜻을 알려주면 한인끼리 얼굴에 침 뱉는 격이고, 그냥 두자니 좋지 않은 우리말이 퍼질 것 같아 걱정되었다.

안녕하세요, 친구!”

라는 인사말이 더 좋으니 다음부터는 미친놈 대신 친구로 부르라고 일러주었다.


한 번 뱉어버린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신중히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외국인들에게는 한글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한 마디라도 표준말과 고운 말을 가르쳐 주어야겠다.

말 안에는 감정이 내재하기에 무례하거나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로 잉태되기도 하고,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분쟁을 일으킨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들어서 편안하고, 하면서 즐거운 말을 나눈다면, 따뜻하고 행복함을 서로 나눌 수가 있으리라. 부정적인 말보다 희망을 주고 용기를 심어 넣는 긍정적이면서 부드러운 말이 사용된다면 우리의 삶도 그리 뻑뻑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지인의 딸이 아빠에게 꾸중을 듣고는,

손으로 한 대 맞는 것보다, 말로 맞는 것이 더 아파라고 하더라는 소리에 적절한 표현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지 않는가? 밑천 안 드니 손해 볼일도 없고,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해 줄 테니 좋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전파하는 외교까지 하는 셈도 되니 일 석 몇조가 될까.

내가 방금 나눈 말 한마디를 풀어 셈해 봐야겠다.


      (199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