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야 노올자
기다림이 얹힌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 지난 2주를 비디오 대여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는데 드디어 오늘 녹화 테이프가 나왔다. 연예인이 잊고 지냈던 학창시절의 친구를 찾는 프로그램인데 셋째 언니가 나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친구야 놀자’를 외치면서 그 시절로 돌아가 서로의 추억을 되짚어 보는 정겨운 시간을 갖는다.
어릴 적 언니에게 가수 하춘화가 여중 때 같은 반 친구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프로그램의 작가가 언니에게 출연 섭외를 했는데 TV에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나올까 걱정이 되어 거듭 거절을 했단다. 결국 둘째언니가 ‘미국에 있는 가족들이 TV를 통해서라도 너를 보면 반가워 할 텐데…’라며 부추겨서 마음을 바꾸었다고 한다. 방송국에서 자신을 멋지게 꾸며 줄 것이라 예상하고 기초화장만하고 갔는데 아무런 도움을 못 받아 결국에는 대책 없이 ‘생얼(?)’로 녹화를 하게 되어서 당황했단다. 아줌마가 겁도 없지….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 36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이제, 하춘화는 세월의 무상함을 거듭 강조하며 친구를 못 찾을까 봐 걱정을 했다. 단발머리에 교복 차림의 사춘기 소녀를 시간의 발자국인 주름이 얼굴에 굴곡을 만들었고, 부끄러운 듯 봉긋 솟아오르던 앞가슴 대신 나잇살이 붙어 두루뭉술해진 몸매의 아줌마 모습 안에서 찾기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서로를 추억의 장으로 잡아끌며 ‘맞아 맞아’ 하며 맞장구를 치고, ‘언제? 난 안 그랬어!’ 발뺌하면서 옥신각신 정을 나누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무뚝뚝하여 종순이 대신 뚱순이로 불렀던 언니는 TV 속에서 그때 그 사람이 아니었다. 마치 자신이 연예인인 것처럼 떨지도 않고 천연덕스럽게 그 시절의 에피소드를 줄줄이 풀어놓았다. 이왕이면 좀 더 오래 화면에 나오기 위해 시치미를 뚝 떼고 앉아 있다가 마지막에 움직이는 벨트를 탔다는 언니의 엉뚱함을 전해 듣고 긴가민가했는데 정말로 그녀가 자신을 찾지 못하도록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내 인식 속의 언니는 10년 전 아버지의 장례식 때 이곳에서 칠 남매가 다 모였을 때 멈추어 있다.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을까. 반가움에 두 눈 가득 눈물을 글썽이는데 같이 보던 큰언니가 “쟤도 많이 늙었다, 그지?” 하며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순간 둘이 마주 보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울 식구들이 우리를 보면 똑같이 말하겠지?” 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흐르는 세월을 누가 막겠는가. 내가 중학생일 때 언니는 직장생활을 했었기에 자랄 때는 나이 차이가 크다고 느꼈었는데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중년의 아줌마들이 아닌가.
칠 남매 중 딸이 다섯. 오늘의 주인공인 뚱순이―종순언니는 선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딸 부잣집 셋째 딸이라 청소 잘하고 알뜰한 짠순이 살림꾼이다. 큰언니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추운 겨울밤, 속이 출출할 때쯤 창밖에서 ‘찹쌀떡, 메밀묵’을 외치는 소리가 골목 안을 메아리치면 언니들이 돈을 추렴해서 사다 먹고는 했었단다. 셋째 언니는 동참을 안 하고, 같이 먹자는 유혹도 물리친 채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덮고 자는 척을 했단다.
그랬구나. 맞장구를 치며 내가 큰언니에게 내가 겪은 일을 말했다. 맛동산이라는 과자가 처음 나왔을 때, 바삭거리며 씹히는 재미와 땅콩의 고소한 맛에 반해 그때 우리 방의 대장이고 유일한 직장인인 셋째 언니에게 “맛동산 파티하게 딱 이백 원만.” 하고 조르면 “자, 잠자면 다 잊어” 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돌아누워서 나를 많이 서운하게 했었다.
탁구공을 치듯 옛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큰언니와 나는 “우리 다섯이 다 모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렸다. 철없이 부모의 그늘에서 온갖 허물을 서로 덮어주며 감싸주던 피를 나눈 형제들과 지낸 시간이 제일 행복했다. 요즘은 핵가족 시대라 자녀를 많이 낳지 않는 세대에 살지만 지나고 보니 칠 남매가 북적대며 살던 그때가 더 재미있고, 어른이 된 후에도 많은 추억을 공유하며 나눌 수 있어 더 좋은 것 같다.
각자의 생활의 터전이 다르고, 삶의 무게가 제각각이라 모두 한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다. 더 시간이 흐르기 전에, 더 늙기 전에 딸 다섯이 한자리에 모여 추억의 우물에 두레박질해가며 옛이야기를 맘껏 나누고 싶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 같이 여행도 가고, 메밀묵도 무쳐 먹고, 찜질방에도 가서 서로 등의 때도 밀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어릴 적 막내라 잘 삐쳐서 언니들이 양보를 많이 해 주었는데 이제는 그중에서 내가 제일 나이가 어린 아줌마이니 심부름을 맡아 해야 하겠지.
언니의 새 옷에 눈독 들였다가 몰래 밑단을 줄이거나 허리 양쪽을 옷핀으로 줄여 입고 나갔다가 돌아와서 급하게 원상복귀를 해놓고 시치미를 떼고는 했었다.
이제는 두루뭉술 비슷한 체격이라 그때처럼 눈 가리고 아옹하지 않아도 서로 돌려가며 입을 수 있으리라. 같이 늙어가니까…. 빨리 모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TV에서처럼 같이 추억을 더듬으며 ‘그래그래 맞아. 그때 내가 그랬지’ 하며 맞장구도 치고, ‘아니야 난 안 그랬어!’ 하며 옥신각신 사랑의 다툼을 나누었으면 한다. 모든 시름과 아픔을 그 사랑으로 덮어버리고 마음껏 응석을 부리고 싶다. 지금도 큰언니의 그늘에서 막내라는 방패막이를 휘두르며 은근히 속을 썩이고 있다. 나이가 들어도 막내는 막내이니 받아 주겠지.
그리움을 가득 안고 언니들이 놀러 와 주기를 기다린다. 나의 사랑하는 네 명의 언니들, 정말 보고 싶다.
‘언니야 놀자! 언니야 노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