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이 있던 시카고의 하루-사모의 마음
-사모칼럼 (4/28/2003)―
지난 달 나는 시카고에 사는 친구 혜순의 아들 결혼 청첩을 받았다. 결혼을 가장 일찍 하더니 며느리도 제일 먼저 맞게 된 그녀는 “내가 벌써 시어머니가 된다.”고 신기해하며 결혼준비에 몹시 바빠했다. 나 역시 너무 바빠서 못 간다고 거절을 한 뒤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녀와 그의 남편 함 장로님께 진 사랑의 빚이 자꾸만 생각이 나서 나는 점점 미안한 마음이 더해갔다. 그런데다 그녀는 성가를 하느라 목을 너무 써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앞으로 목 수술을 받을 준비도 해야만 했다. 그리고 한국에 계셨던 친정어머니를 여윈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마음을 돌렸다. “이번에 꼭 가서 친구를 만나 위로해 주어야해” 친구 아들의 결혼도 중요하지만 내게는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더 귀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되었다.
우리 부부는 어렵게 시간을 짜내어 밤잠은 비행기 안에서 자고 시카고에 오전에 도착했다. 시카고의 거리는 아직 봄을 느낄 수 없는 늦은 겨울이었다. 친구의 자상한 배려로 아침도 잘 먹고 한국에서 오신 그의 가족들과 헤브론 교회에서 하는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동안 많은 결혼식을 보아 왔지만 좀 색다르고 인상 깊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줄곧 싱글벙글하며 마냥 속이 넓어 보이는 신랑과 아름답고 매력 있어 보이는 신부가 무릎을 꿇고 은퇴하신 김 목사님의 축복 기도를 받는 모습은 너무도 귀하고 사랑스러웠다. 또한 양가 부모님께 신랑 신부가 절을 하고 꽃을 전하며 끌어안을 때는 언제 보아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렇게 밝고 명랑했던 신부의 눈에도 눈물이 흐르고 그 눈물을 닦아주는 신랑의 모습 또한 귀하고 아름다웠다. 자녀를 떠나보내는 부모님들과 그 광경을 지켜보는 우리들의 눈망울에도 어느새 촉촉이 눈물이 고이게 된다.
피로연을 할 때 며느리 맞는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나에게 그녀는 너무 피곤해서 음식도 못 넘기면서도 며느리가 예쁘고 좋단다. 그의 남편 역시 아들보다 며느리를 더 믿고 예뻐하는 성숙한 태도는 본받을 만하다.
나도 그녀와 같이 아들만 둘을 두었으니 며느리를 맞으면 몹시 예쁘고 사랑스러울 것 같다. 결혼식과 피로연이 끝난 후 배 장로님 가족들과 잠시 엣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었다. 그 후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가던 중에 함박눈이 내렸다. 나는 집에서 한 시간만 올라가면 볼 수 있는 빅베어 산에 있는 눈 구경을 멀리서 바라만 보았었는데, 시카고에서 상상치 못한 함박눈을 피부에 적시도록 맞은 것이다.
친구 아들의 결혼식을 당일로 무사히 다녀온 일이 얼마나 의미 있고 흐뭇했던지……. 전쟁과 테러의 위험, 그리고 너무나 바쁜 일정 속에 싸였던 모든 갈등과 스트레스를 눈바람과 함께 한꺼번에 날려버린 축복된 하루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