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빗물처럼 - 사모칼럼시리즈 4 (01/31/2003)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며칠 계속오니 비와 연관되어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초등학교 때 ‘비 오는 날’ 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써서 글짓기 대회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뭐라고 썼는지 제목 외에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린 마음에 뭔가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다음엔 이십대 중반 쯤 지금의 남편을 만나 데이트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올케언니의 중매로 만나서 “아니올시다.”라고 거절한 내가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 응답으로 마음이 돌변해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80년도 여름에 만나 장마 때인지 비 오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한 우산을 두 사람이 쓰게 되어 자연히 가까워질 수밖에. 그 후 어쩌다 비만 오면 우리는 ‘우산 속의 연인‘ 하며 웃는다. 캘리포니아에 오니까 워낙 건조해 비 오는 날이 적다보니 겨울에만 잠간 오는 비가 그렇게도 반갑고 좋을 수가 없다.
나는 원래 눈물이 많은가 보다. 마음이 여리고 예민해서인지 쉽게 감동을 받고 잘 우는 편이다. 신문기사의 글을 읽는다든가 설교를 들을 때, 또는 찬양을 하다가도 눈물이 나오고 심지어는 내 글을 읽거나 쓰다가도…….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누구와 함께 얘기를 나누거나 듣다가도 가슴에 부딪쳐오면 속에서부터 나오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다.
남편이 단독목회를 결심하고부터는 정말로 눈물을 많이 흘렸다. 애써 키워놓은 유아원을 고스란히 두고 떠나야 했을 때, 정든 교회의 성도들과 헤어져야 할 때,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교회일로 남편이 어려운 상황에 부딪쳤을 때 고통을 함께하며 눈물을 쓸어내렸다. 그때 주님의 십자가가 없었다면 우리는 정말로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죄 없으신 주님이 당하신 고난에 비하면 우리가 겪는 고난쯤이야…….’그런 아픔과 고통 속에서 일어나고 보니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전에 무심했던 일들이 감사의 제목으로 바뀌고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천하보다 귀한 생명으로 아름답게 보이고 남편의 설교를 꼬집기만 하던 내가 그 말씀에 은혜를 받고 보니 예배가 감동으로 바뀌었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감화를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눈물을 흘릴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목회는 남편이 하는데 눈물은 내가 더 흘린다. 남편은 표현하지 않고 가슴으로 운다면, 나는 온몸으로 운다고 할까. 여하튼 이런 일 저런 일로 눈물을 흘리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나의 뺨을 스치는 빗방울이 모두 내 눈물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이제 내 눈물은 십대의 감상적인 눈물이 아니고, 이삼십 대의 어떤 사랑이나 슬픔의 눈물도 아니다. 갈수록 더 값지고 의미 있는 뜨거운 눈물, 그것은 성숙한 신앙인의 가슴으로 스며드는 은혜의 단비이며, 범사에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눈물이다. 그리고 그러한 눈물이 우리의 메마른 영혼과 갈급한 심령을 촉촉이 적셔준다면 언제라도 빗물처럼 흐르고 흘러 넘쳐도 아름답기만 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