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모습 속에 -사모 칼럼 시리즈 6 (3/25/2003)
내가 그이와 결혼한 동기는 전적으로 나의 의지가 아닌 묘한 이끌림이었다. 오빠내외와 어머니의 배려, 그리고 기도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지만 더 구체적인 사건은 그가 다니는 교회의 저녁예배 참석 후였다. 나란히 앉아 열심히 설교말씀을 듣던 중 나도 모르게 오른편에 앉아있는 그의 옆모습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 순간 예상치 않은 느낌 세 가지가 순식간에 내 머리 속을 스쳐갔다. ‘십계’ 영화의 주인공인 찰톤 헤스톤 같은 강직한 매력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 모습이 마치 모세 같고, 또 오빠와도 같은……. 그 후 나의 가슴은 방망이질, 인간적인 계산으로 거절만 했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교회 안에서의 그는 신성한 모습인데 나는 보잘 것 없는 보통 여자임에 불과한 것을 발견하고 숙연해져 비로소 그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낮아짐으로 그의 모습이 더 돋보였던 것일까?. 아무튼 이런 과정을 통해 깨달은 나의 결혼은 보이지 않는 어떤 신뢰의 힘과 기도의 열매인 것 같다.
나의 결혼생활 10년은 그가 내겐 자상하고 따뜻한 남편이며, 애들에겐 조금 엄한 아버지 정도로만 알고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남편이 목회를 하고부터는 좀 더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교회를 개척한 후 가장 견디기 힘든 갈등 중의 한 가지가 교회 성장 문제와 이에 따르는 자존심 문제이었다. 특히나 교인 수와 크기로 목회자가 평가받는 현실 속에서 교회성장을 바라지 않는 목사나 사모가 어디 있으랴. 그러나 남편의 생각과 태도는 달랐다. ‘한 영혼을 위해서라도 내가 존재 한다’라는 신념으로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꿋꿋이 주님만 바라보며 숫자보다는 한 사람씩 참 신앙인으로 변화되는 삶을 보며 기쁨과 보람을 갖는다. 그리고 무슨 어려운 일을 당해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과연 그의 생각이 이렇게 나와 다른 모습에 존경심마저 들게 되었다. 힘들면 피하고 마냥 벗어나고 싶었던 나의 좁은 생각은 오히려 부끄럽게 여겨졌다.
이렇게 해서 남편을 따르다보니 교인 수에 얽매였던 조급한 불안한 마음이 점차 가시기 시작했다. 이제는 “교회가 잘되느냐” 라는 비즈니스적인 질문에도, 때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위축감에서도 평안함을 되찾는 것은 남편이 얼마나 진실한 목회를 하고 있는지 그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주님 보시기에 어떤가를 먼저 의식한다면, 주님의 일을 하다가 겪는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으므로 오히려 감사로 받게 되고, 때때로 엄습해오는 불안감이나 좌절감에서도 해방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남편의 모습 속에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진실함과 참신한 종의 모습을 꾸준히 볼 수 있다면, 이젠 더 이상 영화배우나 모세 같은 매력과 기대가 사라지고 검은 머리가 희끗희끗해진들 그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