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옷을 입을까?
-사모칼럼 시리즈 11 (9/23/2003)-
“사모님, 점점 예뻐지네요.” 머리는 뒤로 질끈 동여매고, 화장은 로션과 연분홍 루주를 살짝 바르면 땡, 내게 달라진 것이라곤 옷-하늘색 투피스를 입은 것 뿐이었다.
교인의 눈에는 정장을 한 사모의 옷이 그날따라 새로워 보였나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몇 년 동안 친정어머니의 여름옷을 줄여서 입었기 때문에 좀 칙칙하고 노티가 나는 모습에 익숙해져 있었을 것이다.
나는 옷 타령은 안하는 편이었다. 지금가지 늘 언니들의 옷을 물려받아 입는 일에 익숙해져 있어서 새로 해달라거나 졸라본 적도 없다. 옷 사는데 드는 돈이 가장 아깝기도 하여 야드 세일에서 몇 가지 건져 입는 것으로도 족했다. 오죽하면 남편이 부목사로 있던 교회에서 가장 옷을 못 입는 여성 세 명 중에 한 사람으로 꼽혔을까. 나는 언제부터 여자이기를 포기한 것일까? 그때만 해도 삼십대였으니까 그런 소리를 들어도 아무렇지 않고 자신이 만만했던가 보다.
그런데 이젠 아니다. 어느 날 외출을 하려는데 갑자기 남편이 더 근사해 보이질 않는가. 안 그래도 팽팽한 근육에 머리만 자르고 와도 아들의 형님 같다는 소리를 듣는 남편에 비해 나의 모습은 왠지 초라해 보였다. 이런 나에게 남편은 “당신 이젠 옷을 좀 밝게 입어, 나이 들수록 원색계동을 입는다잖아” 가뜩이나 남편이 나의 연상인데도 나를 연상으로 보는 예가 있기 때문에 나는 더욱 예민해졌다.
종일 마음이 뒤숭숭. 다음날 통 연락을 안 하던 한국에 전화를 했다. “언니, 저예요. 여차여차 하고, 야만야만 해서……. 여름이 가기 전에 싸구려도 좋으니까 시원하고 밝은 색의 정장을 좀…….” 난 웬 바람이며 무슨 용기였을까?
나를 남편에게 적극적으로 다리를 놓았던 둘째 올케라 그런지 재까닥 소포가 왔다. 그것도 한두 벌도 아닌 바지 정장까지, 두 벌씩이나……. 우송료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너무 감격하여 말이 나오지 않았고 멍-해지면서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슬그머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거울 앞에서 이것저것 입어 보았다. “왜 이렇게 폼이 안 날까? 당장 살부터 빼야겠네.”
아무리 여자는 옷이 날개라지만 옷으로 나이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그리고 어디까지 나를 커버할 수 있으며 누구를 위해 옷을 입는가? 내가 꼭 옷으로 날개를 달아야 하나? 수십 가지 생각이 스쳐 가면서 주일아침이 되면 나도 모르게 부랴부랴, 허둥지둥 내 손이 가는 옷은 여전히 내가 입던 그 편한 옷이 아니던가.
남편이 내게 예쁘다는 소리는 한 번도 안 해도“당신은 그저 우아-해” 그 소리가 더 고상하고 내게 어울리지 않는가. 나 스스로 자위해보며 나는 은은하고도 내 향이 있는, 나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을 입어야겠다.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답듯이 내 마음을 다스리고,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옷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왜 나는 깜박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