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어머니를 기리며 -사모칼럼 시리즈 7 (5/30/2003)
나의 친정어머니는 내 삶 속에 가장 핵심적인 가치관을 심어 주신 분이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듣고 자란 말씀 중에 가장 기억나는 것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 참는 자가 이기는 자다” 등의 말씀이었다. 그래서 들은 대로 순종하다보니 어머니의 칭찬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것 같다.
어머니는 늘 8남매의 자녀들을 위해 새벽마다 기도 하는 생활을 하셨다. 내가 사모가 된 것도 전적으로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었다. 장로 부인이며 권사이셨던 어머니 가슴속엔 여자 중에 사모야 말로 가장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산다고 믿고 확신하신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이런 어머니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남들은 딸이 고생한다고 목사 될 사람과의 결혼들 반대한다던데 어머니는 나를 위해 눈물의 기도를 드리시며 권하시다니…….”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엘에이에 오신 후엔 내가 좋아하는 유아원을 운영 할 수 있도록 부엌살림과 어린 손자들을 돌봐주셨고 남편이 목회 길을 바로 갈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신 분이다. 또한 신앙서적과 미우라 아야꼬의 글을 즐겨 읽으시며“너도 꼭 읽어 보아라 ”하셨고, “저렇게 바쁘니 언제 책을 읽겠느냐”고 안타까워 하셨다.
내가 샌버나디노로 이사 간 후 부터는 한국에 계신 큰오빠 댁에 사시면서 명필로 신구약 성경을 몇 차례 필사 하시어 수상하셨고, 그 감상문은 모든 읽는 분들의 가슴과 눈시울을 뜨겁게 하셨다. 어머니는 서울에서 복음교회를 거의 50년간 섬기시며 노후엔 재소자들을 위해 털스웨터를 손수 90벌을 뜨셔서 보내기도 하셨다고 한다.
내가 전화를 하면“힘들 텐데 어서 끊어라. 나는 노년에 아들과 며느리를 잘 두어서 호강하고 있으니 아무것도 보내지 말고 네 시어머니께나 잘하라” 하셨고 내가 지쳐서 전화하면 “네가 하늘의 상은 더 받을 테니 참고 견뎌라. 사모는 그 과정을 겪어야한다”고 하셨던 어머니이다.
그러던 1999년 초여름, 당시 79세이셨던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한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세브란스 병원 안치실 이었다. 어머니께서는 평소의 기도대로 자녀들에게 고생시키지 않고 며칠 앓으시다가 하늘나라로 부름을 받으신 것이다. 어머니의 빈소와 식당에는 조문객들의 인사와 담화로, 그리고 장례식엔 은혜가 넘치는 감동의 물결로 가득 채워져 나는 슬픔보다는 천국잔치로 축제 분위기에 푹 젖은 기분이었다.
내가 늦게 안 사실은, 돌아가시기 얼마 전 우리 애들과 내가 제일 보고 싶다고.....그러나 미국에서 오려면 힘들 테니 알리지 말라고 하셨단다. 사실 어머니는 비교적 건강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빨리 가시리라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어머니께 간호는커녕 따뜻한 식사한번 차려 드리지 못했고, 힘들 땐 전화해서 걱정만 끼쳐 드린 것 같아 죄송하기 그지없다. 해가 거듭할수록 가슴에 사무치는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자랑스러운 우리 어머니, 하늘나라에서도 제가 쓴 글을 읽고 계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