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자요? 
밤 열 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각, 아리조나 대학에 가 있는 손녀로부터 텍스트 메시지가 들어 왔다. 
무슨 일일까.
대학생활 삼 년 째 접어 들지만, 이런 늦은 시각에 메시지가 들어온 건 처음이다. 
- 아니.
- Wifi 트러노세요
여기서 태어난 아이, 게다가 엄마는 세 살 때 미국에 온 1.5세다.
주말 한국학교에 다녔지만, 여전히 맞춤법은 틀릴 때가 많다.
그래도 나를 위해 소통은 꼭 한국말로 해 준다.
- 틀어 놨는데?
- 어, 이상하다. Face Time 왜 안돼지?
- 오, Face Time? 할머니가 block해 놔서 그럴 거야!
  할머니 얼굴 이상하게 나오고 쭈굴쭈굴해서 
  Face Time 안 하고 싶어. 
- 하하! 할머니, 저도 안 예쁘게 나와요. 밑에서 찍으면 이상하게 나오고, 약간 위에서 찍으면 괜찮아요. 지금 페이스 타임 트러 노세요. 
Face Time을 열었다.
전화기를 위 아래로 움직여 본다. 
여전히 얼굴이 길어졌다 넓어졌다 하며 괴상한 모양이다. 
눈만 내놓으니 조금 낫다.
- 됐나? 할머니, 잘 보여?
- 하하, 노무했어요. 눈만 보이고 얼굴 잘 안 보여요. 
저 고양이 $1 주고 샀는데...
아하, 이제야 알았다. 
$1 주고 산 고양이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손녀는 어릴 때부터 동물을 무척 사랑하는 아이였다. 
이제부터는 텍스트 메시지가 아니라 본격적 영상 대화다. 
조금 있으니, 동영상 두 개가 텍스트 메시지로 들어 왔다.
꾹 눌러 봐도 열리지 않는다.
열릴 듯하다가,  다시 사진처럼 정지해 버린다.
- 안 열리네 ?
SOS를 쳤다.
- 알았어요. 그럼 카톡으로 보내 볼게요.
- 그래, 그래라. 그런데 카톡 쓸 때는 Face Time 끊기나?
- 하하, 아뇨. 계속 말할 수 있어요.
- 알았다. 할머니는 Online person이 아니잖아. 카톡으로 들어가 볼께. 
- 네...
- 아, 들어왔다. 움직이네? 와, 진짜 귀엽네? 어디서 샀어? 이름은 뭐야?
약간 호들갑을 떨며 따발총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미국 사람들하고 얘기할 때도 그렇지만, 아이들하고 얘기할 때는 특히 호들갑스럽다할 정도로 리액션을 잘 해줘야 한다.
대화에 탄력이 붙고 생기가 돌아 얘기가 재미있게 진행 되기 때문이다.
- 노란색 고양이라 이름은 티거라 지었어요. 위니 더 푸우에 나오는 캐릭터에요. 할머니도 알지요? 
위니 더 푸우라면 아기곰 푸만 생각나고 티거 캐릭터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손녀는 할머니가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하나 보다. 
- 그래? 스펠링이 어찌 되는데? 
- T, I, G, G,E,R Tigger요. Winnie-the-Pooh. 
동화책도 읽지 않고, 디즈니 영상도 안 본 터라, 리액션 해 주기가 힘들다. 슬쩍 건너 뛰어, 동영상 고양이 이야기로 넘어 간다. 
- 그런데 이 고양이 어디서 구했어? 진짜 귀엽네? 
- 진~짜 귀엽지요? 코스코에 갔다가 그 옆에 팻샵이 있어 구경하러 들어갔는데 고양이 $1에 어답트할 수 있다잖아요. 그런데 이 고양이가 나를 보고 "야~옹"하고 인사하잖아요. 나하고 같이 가고 싶었나 봐요.
평상시에도, 나나 저나 영어가 더 친숙한 말은 중간 중간에  섞어 쓰곤 한다. 
주차장보다는 파킹랏이 더 익숙한 말인 것처럼.
- 오, 그래? 진~짜 귀엽네? 눈도 똥그랗고. 엄청 조용하네? 
- 네. 아까는 똥 누고 나를 보더니 "야~옹"하면서 다 눴다고 알려 줬어요. 귀엽지요? 
- 그래. 애기하고 똑 같구나!  모래 깔고 고양이 오줌통은 만들어 줬나? 
- 물로온~ 
- 그래, 잘 했다. 오줌 냄새가 독하니, 자주 갈아 주어야 한다. 그런데 네 공부에 방해 되지는 않겠니?
- 아뇨, 강아지보다는 훨씬 인디펜던트하구요 페이 어텐션 안 해도 되요. 아까도 리빙 룸에서 청소한다고 두 시간 넘게 있었는데 방에서 놀다가 한번씩 나 쳐다 보고 다시 놀더라구요. 나 닮았나 봐요. 나도 방학 때 집에 가면, 혼자 잘 놀잖아요.
고양이를 사더니, 말 없이 진중하기만 하던 애가 수다장이로 변했다. 
보고가 많고, 설명이 길어진다. 
목소리는  들떠 있다. 
정말 기분 좋은 모양이다.
진작에, 엄마 앞에서도 이렇게 좀 재잘거려 주지. 
방학이라고 집에 오면, 늘 책이나 보고 조용하니 딸도 이제 애 키우는 재미가 없단다.
- 야, 그러니까 엄마가 너 크니 재미 없대. 말도 잘 안 하고 애교도 안 부려 주니. 어릴 때는 너 애교덩이였는데...
- 하하, 하알-머니이! 저 이제 컸잖아요?
- 그래 , 그래. 알았다. 
- 그런데 진짜 조용하네? 지금까지 한 번도 야옹 안 하네?  이제 고양이가 있으니 심심하지 않고 좋겠다. 문 열고 닫고 나올 때, 조심해라. 잃어 버릴라.
- 네. 고양이도 졸리나 봐요. 이불 속에 쏙 들어갔네? 
- 그래, 우리도 자자. 고양이 산 거 축하한다. 그리고  할머니하고 share 해 줘서 고마워.
- 네, 할머니! 다음 겨울 방학 때 집에 데리고 갈께요.
- 그래, 그래라. I love you. 
- 네. 할머니, 아이 러뷰 투. 
 
오랫만에 나눈 손녀와의 수다가 끝났다. 
$1 짜리 고양이 한 마리가 선물해 준 사랑의 대화다. 
그 애의 따뜻한 마음이 가슴으로 전해와, 한참 뒤척였다. 
"그래, 사람을 사랑하고 동물도 사랑하고 네 눈에 보이는 모든 삼라만상을 사랑하면서 살려므나. 

제이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건, 사랑밖에 없단다."

마치, 손녀가 내 곁에 있는 듯 가만히 속삭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