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풀이 땅콩인가. 궁금증의 발로인가. 페이스 북에 올라오는  갖가지 자기탐구(?)에 대한 질문들이 재미있다. 친구가 한 걸 올리면, 너도나도 재미삼아 한 번씩 눌러 본다. 하하. 이번에는 죽고 난 뒤에 새겨질 묘비명 문구다. 
 나야, 화장할 거니까 새길 묘비도 묘비명도 없다. 그렇다고, 손가락 한 번 까딱하면 될 일에 굳이 게으름을 피울 필요는 없으리. 게다가, 나는 궁금증이 많은 여자. 답은 듣고 넘어 가자. 
  허공에 바람처럼 맴돌 내 묘비명. 가슴에 새겨줄 이도 없으련만, 들어나 보자. 돈도 받지 않고 새겨 주겠다니 고마울 수밖에. 아버님으로부터 받은 오리지널 이름, '지희선'을 넣어 본다.  
 
  - 지희선 이 곳에 잠들다
  나는 시도하다 실패했다.
  그러나 또 다시 시도해서 
  성공했다. - 
 
  무슨 말인고? 시도한 것도 많고 실패한 것도 많은데, 어떤 것을 말하는고? 시험도 있고, 결혼도 있고, 사업도 있는데 뭘 두고 하는 말인고? 물어도 답이 없다. 재미삼아 영어 이름으로 들어가 본다. HeeSun Chi.

- HeeSun Chi 이 곳에 잠들다
  고로 여기 이 철학자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뭣이라? 밑도 끝도 없이 '고로'? 철학자는 또 뭔겨? 하긴, 내가 생각이 좀 깊긴 깊은 애지. 아니, 생각이 '깊다'하니 사려깊은 애처럼 보이나, 그 쪽보다는 생각이 '많은' 애지. 공상, 망상, 상상. 환상까지. 문학적으로는 조금 도움이 된 듯한데, 사랑 쪽으로는 영 아니 올시다다. 
  연인으로부터, 전화나 편지가 없는 날에는 얼마나 많은 공상과 망상으로 날밤을 지샜는가. 또한 그 결과는 얼마나 내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었던가. 터무니 없는 오해를 받은 상대방은 또 어떤 기분이었겠는가. 
  어떤 사람은 "상상력이 너무 풍부하신 거 아시죠?" 하고 변명 대신 되묻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시멘트같은 공상 망상은 시간이란 물을 만나 신념이란 콘크리트로 완전히 굳어져 버렸으니. 신공법으로 깨기 전엔 깰 방법이 없다. '내가 좀 심했나?'하고 후회할 땐, 이미 버스도 산모퉁이 돌아 가 버린 뒤다.
  철학자가 생각이 '깊은' 사람이 아니라,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넘어가 준다. 다음은, 시민권을 따면서 '망설이다' 넣어준 남편 성이 라스트 네임으로 되어 있는 영어 이름을 넣어 보았다. Heesun Chi Park. 
 
- Heesun Chi Park 이 곳에 잠들다
  잠시 때가 지나면 그때
  나는 승리하고 있으리라. 
 
 와아-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이 녀석이 우리 부부 냉각기를 어떻게 알고 이렇게 말해 주지? 한 번도 모자라서 두 번이나 사랑에 퐁당퐁당한 남편을 봐 주라고? 그것도 최근 1,2년 사이에 연달아 일어난 따끈따끈한 사건인데?
 '잠시 때가 지나면'이라니? 그래, 어른들이 말 하는 '잠시'는 이때 쓰는 말인가. 그러면 '그때'라는 건 또 뭐지? 용서해 주고 난 뒤? 아니면, 자기들끼리 끝난 뒤? 그도 아니면, 내 죽고 난 뒤? 도무지 모를 노릇이다. 
  하긴, '그때'를 안다면야 늘 깨어 있는 신앙인으로 오죽 잘 살아 가겠나. 하지만, 성경에도 있잖냐. 그때는 도둑같이 와, 아무도 모른다고. '그때'를 모르니, 나도 남들따라 대충 살 수밖에. 여기서, 중간 삽입곡 하나. 2012년에 접어든 신년 벽두. 남편이 잠재적 사랑꾼 능력을 발휘하기 전, 순진했던 시절 얘기다.

- 여보!
- 왜요?
- 올해 2012년이잖아...
- 그래서요?
- 유명한 예언가가 말했대.
- 뭐라구~요...
- 올 12월 12일, 그러니까 12가 세 번 겹치는 2012년      
  12월 12일 세상 종말이 온대. 
- 아이구, 이왕 맞추려면 정확히 다섯 번 겹치지, 왜 
  세 번만 겹친대?
- ???
- 아니, 2012년 12월 12일까지 나왔으면 12시 
   12분이라 하면 더 정확하잖아...
- 그러네? 아무튼, 그 날 세상 종말이 온다니까 
  한 번  기다려 볼려구.
- 하이구, 그런 거 안 기다려도 그 날은 와요. 세상 
   종말이 별 거유? 내 눈 감는 날이, 세상 종말이지.
- ....... 
 
  말 상대가 안된다는 듯이, 하지만 꼭 그날을 기다려 보리라 결심한 얼굴로 남편은 말없이 돌아섰다. 2012년 12월 12일이 왔다. 하지만, 그 날도 아무 일없이 하루 해가 지고 말았다. 몇 번 헛바람 돌리고 간 여느 종말론처럼. 남편은?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경 말씀이 맞다. 그때를 우리가 어찌 알리. 만든 사람도 그 분이요, 걷어갈 사람도 그 분인 것을. 나는 아직도 세상의 종말을 내 눈 감는 때라고 굳게 믿고 있다. 아무려나. '때'라는 말이 짧은 묘비명에 두 번이나 나오는 게 범상찮다. '승리'라는 말은 또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신앙인의 승리는  부활인데, 부부 사이에서의 승리란 무엇인가. 국호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영토 확장이 되는 것도 아닌 사랑과 전쟁. 그 결과물의 승리가 무언지 아리송하다. 철학자의 심오한 생각을 빌어 문자화하면 대강 이런 뜻인가? '참고 기다려라. 그러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혹은, '잠시 죽음 같은 고통의 시간이 지나면 부활의 영광을 맛볼 것이다' 의역한 엉터리 번역에 실소하고 넘어간다. 
  다음은, 남편 라스트 네임을 사용한 내 한국 이름. 성을 갈아버린 이 천인공로할 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시민권 페이퍼에 싸인하고 얻은 이름, 박희선. 내가 아닌 듯, 낯설기 만한 이름을 넣어 본다.  
 
- 박희선 이 곳에 잠들다
  잠시 때가 지나면 그때
  나는 승리하고 있으리라. 
 
  오 마이 갓! 똑 같은 묘비명이다. 남편 성을 영어로 넣으나 한글로 넣으나 똑 같이 나오는 이 변고! 거듭 이렇게 말하는 의미가 도대체 뭔가. 묘비명에 새기기 전에, 가슴에 새겨야 할 부부 십계명 1항이라도 된단 말인가. 허, 참!' 대충 봐 주고 넘어가란 말씀이렸다.
   하긴, 감정은 자연스런 것이며 또한 변하는 것임을 왜 모르겠는가. 게다가, 변하는 것에 목숨 거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 있으랴. 그렇다면, 그 사람 문구처럼, 이번에도 신경 쓰지 마?
  함께 사는 동안,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당신, 신경 쓰지마!"다. 전처가 집을 무시로 드나들고, 한국에 있는 첫사랑이 걸핏하면 전화를 해대도신경 쓸 일이 아니란 거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맞는 것같기도 하다. 감정은 건드리지만 생활에는 무슨 큰 지장을 주느냐 말이다. 그래도 괘씸하긴 괘씸하다.
  "그래, 날 신경마비 핸디캡 마누라로 만들어라. 여우 같은 마누라가 곰이 되어, 신경 끄고 사니 행복하냐?"하고 냅다 지르고 싶다. 도저히 이해불가해도, 그때마다  '그래, 옥에도 티가 있으니 진짜 옥이지. 난 티가 더 많으니 진짜 진짜 옥이고. 됐제?" 하고 넘어 오다 보니, 세월 어느 새 20년 훌쩍이다. 
  오늘, 페북 이 녀석도 은근슬쩍 날 부추기는 듯하다. 
참는 게 복이라고. 에라, 얼굴 볼 일도 없는데 선심이나 한 번 쓰자. "그래, 야야! 나도 신경 끄고 살기로 했다!" 엉터리 묘비명을 써 준 놈에게 듣기 좋으라고 한마디 던졌다. 
  기계는 기계다. 아무리 정밀하다는 컴퓨터요 인공지능이라 해도 다른 이름을 쓰는 똑 같은 사람임을 모르지 않는가. 나는 나인데. 묘비명을 쓰더라도 딱 하나만 쓸 건데, 이토록 다양하게 써 주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아서라. 너한테 부탁하느니 내 묘비명은 내가 쓰고 말련다. 
 
- 지희선 이 곳에 잠들다
  사랑을 사랑하고 간 여인
  아직도 그 사랑 끝나지 않았네. 
 
  화장해서 자연의 일부로 돌아갈 몸. 묘비도 묘비명도 없이 갈 인생. 그래도 한 마디, 내 인생을 자평하며 이렇게 적어 보았다. 그런들 무엇하리. 이 지상에 남은 몇 사람이나 날 기억하고, 유언을 저들 가슴에 새겨 두랴. 
  산산이 부서져 허공 중에 헤맬 내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끝끝내 마자 하지 못할 내 묘비명이여! 혼이 혼을 부르는 초혼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