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다듬기]

 

터울을 잘못 쓰면 집안 망신

 

 

『현산어보를 찾아서』

젊은 생물학자 이태원이 7년 넘게 발로 뛰어 만든 이 다섯 권짜리 책을 읽는 시간은, 즐겁다.

마치 흑산도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느낌 속에 한 권 한 권 읽다 보면 책장이 너무 빨리 넘어가는 것이 아까울 정도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이 아름다운 책에서도 옥에 티는 있었으니…. 바로 이런 구절이다.

 

정약전과 석주명, 100년이 훨씬 넘는 터울을 두고 흑산도를 찾은 두 사람은 해양생물과 나비로 관심분야가 서로 달랐지만 의외로 닮은 점이 많다.

 

흔히 ‘2년 터울로 겨울 지리산을 찾았다’식으로 쓰지만, ‘터울’은 ‘한 어머니의 먼저 낳은 아이와 다음 낳은 아이와의 나이 차이’라는 뜻이므로 단순히 모든 사람 사이의 ‘나이 차’나 혹은 ‘햇수’란 의미로 쓰기는 곤란하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어머니가 같은 친동기 사이에만 쓰는 말인 것. 그러니 ‘사촌 형은 나와 두 살 터울이다’처럼 쓰면 집안 꼬락서니가 영 엉망이 돼버린다.

 

지난 2001년, 언론개혁을 부르짖는 시민단체를 ‘홍위병’이라 했다가 추미애 의원한테서 ‘곡학아세’란 소리를 듣는가 하면, 어느 독자가 책을 반품하겠다고 하자 “법정 최고 이자를 쳐줄 테니 어디 가서 내 작품 읽었다고 하지 말라”고 큰소리치다가 ‘책 장례식’을 당하는 등 곤경에 빠진 소설가 이 아무개.

그를 위로(?)하기 위해 어느 신문이 지면을 한 면이나 할애했다. 그런데 그 지면에 나온 「인물 포커스-이 아무개 부인 박 아무개」라는 조그만 상자 기사는 내용이 이랬다.

 

밀양 박씨로 17세 때 천주교 영세를 받았다. 남편과 동향(경북 영양)으로 한 살 터울이다.

 

‘터울’이라는 말 하나로 이들 부부나 신문사나 모두 엉망이 돼 버렸지만, 더 엉망인 것은 그들 가운데 아무도 그들 자신이 엉망이 된 걸 몰랐다는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진원의 '우리말에 대한 예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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