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의 낯선 고독… 더 뜨거워진 신춘문예 열기[광화문에서/손효림]
손효림 문화부 차장
가을바람이 쌀쌀해지면 문화부로 걸려오는 전화가 많아진다. 신춘문예 때문이다. 응모 방법과 관련된 여러 질문이 줄을 잇는다. 신춘문예 문의 전화가 늘어나면 한 해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한데 올해는 유독 연초부터 문의 전화가 많았다. 1, 2월쯤으로 기억한다. “당선되면 저작권은 누가 갖게 되나요?”라고 묻는 이가 있었다. 이런 질문은 처음이었다. 올해 1월 저작권 문제로 김금희 최은영 이기호 작가가 이상문학상 수상을 거부해 40여 년 역사상 처음으로 이상문학상 발표가 취소된 것이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수상작에 대한 저작권을 이 상을 주관하는 문학사상사에 3년간 양도하고 작가가 개인 단편집을 낼 때 수상작을 표제작(책 제목이 되는 작품)으로 쓸 수 없다는 계약 조항에 작가들은 강력 반발했다. 이를 계기로 작가의 저작권에 대한 논의가 물 위로 떠올랐다. 참고로 본보의 경우 신춘문예 당선작에 대한 저작권은 당선자 본인이 갖는다.
신춘문예 문의 전화는 1, 2월을 지나 봄, 여름에도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코로나19 때문인 것 같다는 확신이 점점 강해졌다. 외출하거나 누군가를 만나기 어려워지자 집에서 글을 쓰는 이들이 늘어난 것 같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문득 12월에 마감하는 신춘문예의 응모 방법이 미리 궁금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1925년 국내에 처음 신춘문예를 도입한 본보에는 이와 관련된 일화가 많다. 영화 ‘동주’에는 윤동주(강하늘)의 사촌 송몽규(박정민)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는 소식에 집안이 들썩이는 장면이 나온다. 좋아하면서도 쑥스러워하는 몽규, 언제나 한발 앞서가는 그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동주의 얼굴을 비춘다.
실제 동아일보 수상작 명단에는 1935년 콩트 부문에 송한범의 ‘숟가락’이 있다. 송한범은 송몽규의 필명이다. 당시 표기로는 ‘술가락’이라고 돼 있다. 집안에 먹을 게 떨어져 고민하던 ‘나’는 해외로 망명한 장인이 결혼 축하 선물로 보낸 은숟가락(당시 표기 ‘은술가락’)을 맡기고 쌀을 구해오겠다고 아내를 설득한다. 간신히 아내를 달래 쌀과 반찬을 구해오고 밥상이 차려진다. 한데 아내는 아무리 권해도 눈물만 흘릴 뿐 밥을 먹지 않기에 살펴보니 그제야 아내의 숟가락이 없음을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가난으로 인한 고통과 그로 인해 벌어진 아이러니를 짧은 글에 압축적으로 녹여낸 솜씨가 돋보인다.
올해 본보의 신춘문예 마감일은 12월 4일이다. 이전에 비해 응모작 수가 크게 늘었는지는 최종 집계를 해 봐야 알겠지만, 피부로 느끼기에 올해 신춘문예 열기는 정말이지 뜨겁다.모든 게 처음 겪는 일투성이여서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은 2020년, 작가를 꿈꾸는 이들은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광기로 가득할까,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하게 될까. 혹은 고독을 처절하게 잘근잘근 씹고 있을까.
한 달여 후에는 궁금증이 풀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판을 쉼 없이 두드리며 새해 첫 지면의 주인공을 꿈꾸는 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