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와 에밀리 브론테


 

  학부모 채팅방에 글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주고받는 메시지를 읽으며 석 달에 가까웠던 여름방학이 끝났음을 실감한다. 아이의 방학 동안 책을 많이 읽었다. 십여 년간 책과 멀리하고 살았던 터라 읽을 책이 많아 좋다면 좋은 시간이었다. 그 사이 한국 에세이는 형식 면에서 큰 변화가 생긴 듯 했다. 소설처럼 호흡이 길었다. 심지어 각각의 주제를 모은 에세이 시리즈도 있었다. ≪아무튼, 집≫, ≪아무튼, 술≫ 등 관심 있는 주제 몇 권을 보다가 만약, 내가 이 시리즈로 에세이를 쓴다면 무슨 주제가 가능할지 생각해 봤다. 가장 좋아하는 것. 그래서 집착에 가까운 무엇. 그리고 마침내 생각난 것이 에밀리였다. 우리 딸의 이름.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쉬운 발음이었다. 아무리 좋은 이름이라고 해도 내가 제대로 발음할 수 없으면 엄청난 불편이 따를 것이었다. 이런저런 고심 끝에 선택한 이름이 ‘에밀리’였다. 

 

   내가 ≪폭풍의 언덕≫을 읽은 것은 중학생 때였다. 오래 전이라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의 감정은 여전히 기억한다. 거대한 파도가 휘몰아쳐 나를 덮치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 책을 서른이 넘어 미국에 오는 순간까지도 정리하지 못했다. 소유하고 있던 책들을 중고로 팔고, 버리고를 무수히 반복하면서도 그 책만은, 그 낡은 책만은 어쩌지 못했다. 언젠가 한 번 더 읽어봐야지, 그때와 같은 감동을 똑같이 받을 수 있을까, 책을 볼 때마다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 한동안 잊고 있다가 오랜만에 그 책을 꺼내 들었을 때, 우리 딸의 이름과 이 작가의 이름이 같다는 것에 새삼 놀라워했던 기억이 있다. 맞아, 이 소설을 쓴 작가가 에밀리 브론테였지! 사춘기 시절부터 내가 좋아했던 작품. 그래서 아이 이름을 에밀리로 짓는데 주저함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오랜 시간 내 의식 속에 있던 소설이다. 

 

  나와 함께 미국까지 건너온 그 책은 고려문화사에서 1990년 5월에 출간한 것이다. 세월이 흐른 만큼 책머리, 책배 등은 누렇게 바랬다. 본문은 활자도 작고 줄 간격도 좁다. 책장이 가루가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만큼 오래되었다. 아무래도 이 책으로 재독은 할 수 없을 것 같아 몇 년 전 한국에 다녀올 때 한 권을 더 사 왔다. 그리고 훗날 우리 딸이 꼭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 둔 원서도 있다. 아무튼, 에밀리는 이제 내 아이의 이름이다. 그러니 유독 내 눈에 띄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2020년에 방영한 미국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으니 특별히 내 눈에 띈 것은 아닐 것이다.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도 그러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 시트콤 <영 쉘든>에서 맨디 역을 분한 배우가 에밀리 오즈먼트라는 것과 오늘 배송받은 책 The Math Inspectors의 저자가 에밀리 부버라는 것은 딸에게도, 남편에게도 보이지 않는 오직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이다. 소설가 에밀리 헨리를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고, 그녀의 신간을 읽은 이유 역시 그녀의 이름 때문이었다. 전자책 구독 서비스 ‘밀리의 서재’가 ‘에밀리의 서재’로 보이고, 패밀리(Family)라는 영어단어도 에밀리(Emily)로 보일 때가 있으니 아, 더 이상 말해 무얼 할까!  

 

  나는 아이에게 말하곤 한다. 너의 이름은 

 

Every

Moment 

I

Love 

You 

 

라는 의미를 담아 엄마가 지었다고. 사실, 이것은 출산하고 몇 년 뒤, 에콰도르에 살고 있는 친구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친구 역시 딸 이름을 고민하다가 에밀리라는 이름에 관심이 가서 알게 되었다고 했다. 오행시같은 형식과 그 의미가 나 역시 좋았다. 나는 이것을 딸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후천적으로 부여한 의미이지만 부모의 사랑은 선천적이었으니, 이 거짓말이 우리 딸의 자존감에 선의가 되기를 바라면서. 그러니 쉿! 이건 에밀리에게 영원히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