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큐브 15 

 

 

  종이접기 영상 하나가 눈에 띄었다. 색종이로 상자를 만들어서 여러 개 이어 붙이면, 접고 펼 수 있는 종이 큐브가 되었다. 영상에서는 그것을 매직큐브라고 했다. 아이와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았다. 

  하교 후 심심해하는 딸에게 그 영상을 보여 주었다. 관심 있으면 하고 아니면 말 생각으로. 예상대로 아이는 흥미로워했다. 빨리 만들자며 색종이를 한 묶음 꺼내 왔다. 우리 둘은 식탁 위에 태블릿을 올려 두고 나란히 앉아 동영상을 여러 번 일시 정지하며 첫번째 상자를 완성했다. 두 번째부터는 수월했다. 상자 다섯 개를 만들어서 이어 붙이니 영상처럼 매직큐브가 만들어졌다. 아이는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는 신 나는 얼굴로 재킷 주머니에 매직큐브를 넣고 등교했다.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많은듯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큐브를 친구들에게 보여줬느냐 물었다. 딸은 싱글벙글 웃으며 자기 재킷 주머니를 확인해 보라고 했다. 주머니에는 아침에 챙겨간 큐브와 함께 기다란 종이가 하나 있었다. 이건 뭐야?

  종이에는 친구들의 이름이 죽 적혀 있었다. 각 이름 옆에는 색깔과 숫자도 있었다. 주문서였다. 친구들의 주문을 받아온 것이었다. 원하는 큐브 색깔과 개수까지. 아이고! 이게 다 몇 명이야? 

  아이마다 요구한 색깔이 다른 것은 괜찮았다. 우리 집에는 남편이 한국 출장 때마다 사 온 색종이가 많이 있다. 문제는 노동력이었다. 상자 하나를 만드는데 두 번의 종이접기가 필요했다. 커스터마이징이라 어떤 아이의 것은 일곱 개의 상자를 연결해야 했다. “얘는 일곱 개 해달래?” 목소리가 커진 나를 달래기라도 하듯 딸은, 처음에는 그 친구가 여덟 개를 해달라고 했는데 그건 너무 길다고 말해서 일곱 개가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꾹 삼켰다. 이 모든 것의 시초는 나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아이는 힘들어했다. 지켜만 볼 수 없어서 몇 개 도와주기는 했지만, 상자 조립 후 풀로 붙이는 과정은 온전히 아이가 했다. 혼자 해내고 싶어 했다. 자신이 벌인 일이니 책임 또한 자신이 지려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은연중에 했을 내 잔소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열 살. 자존심이 있을 나이였다. 그렇게 꼬박 삼 일에 걸쳐 아이는 모든 제작을 완료했다.  

  지퍼백에 그것들을 담아주며 물었다. 오늘 또 다른 친구가 해달라고 부탁하면 어떻게 할 거야? 아이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오케이, 나중에 해줄게. 

  “진심이야? 또 만들고 싶어?”

 정말 좋아서 하는 작업이라면 응원해 줄 생각이었다. 노동에 가깝기는 하나 종이접기가 텔레비전이나 아이패드보다 훌륭하니까. 하지만 아이는 내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했다. 힘들다고. 그렇다면 거절하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상황극을 시도했다.    

  지난 내 삶에서 거절은 어려운 일이었다. (거절 못 해 사귄 남자 친구도 있었다.) 내가 그랬듯 아이도 거절해야 하는 순간이 끊임없이 생길 것이다. 나는 몇 번의 상황극을 마치고 딸에게 말했다.   

  “네가 힘들면 거절하는 거야. 제일 중요한 건 너야.” 

  나는 일부러 승낙의 여지가 있는 ‘괜찮다’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삶의 중심이 아이 본인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나’를 먼저 생각한 후, 감당이 될 때만 타인의 요구를 받아주라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다. 나 다음에 타인이 와야 삶에 중심이 설 것이었다. 우리는 타인 중심으로 살기 위해 학교에 가고, 돈을 벌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아주 늦게 알았다.  

 

  시계를 본다. 하교 시간이다. 오늘 아이의 주머니에서 또 다른 주문서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아이를 데리고 오기 위해 학교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