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한 포기

                                                                                        김카니

   오랜만에 슈퍼마켓에 갔다. 야채칸에 수북히 쌓여있는 배추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배추 한 포기. 큼직한게 속이 꽉차서 한 손으로 들지도 못할 정도로 무겁다. 겉잎은 한겹 한겹 벗겨내어 삶아서 우거지로 쓰면 된다. 중간 잎은 겉절이로 만들고, 몇 장은 물김치로 담궈서 익힌 후에 김치말이 국수로 먹으면 좋겠다. 속잎은 삼겹살에 쌈장을 곁들여 쌈으로 먹을 것을 생각하니 입안에 군침이 돈다. 서둘러 집에 돌아와 배추를 씻으며 문득 배추만도 못한 인생을 사는 어리석은 사람이 떠올랐다.

 

  지난해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마음을 담아 시간 낭비와 에너지를 소모한 해였다. 현명한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을, 애쓰고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있어서다. 살아가는데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에 끌려다닌 답답한 해였다.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야 직성이 풀리는 이도 있다.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도 다른 것처럼 타인을 내 기준에 꿰맞추면 안 된다. 남의 허물은 말하고 다니면서 정작 본인의 과실은 묻어버리는 사람은 어떤 마음을 품었을까. 자신의 잘못은 감추고 상대의 실수는 인정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흐르는 물에 배추를 씻듯이 얼룩진 내 마음도 함께 씻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찹쌀풀을 쑤고 파를 다듬어 적당히 썰고 마늘과 생강 그리고 사과와 배를 썰어 함께 믹서에 갈았다. 고추가루와 매실액, 멸치액 젖과 양념을 잘 섞어주어야 제맛을 낸다. 양념마다 제각기 특유의 맛을 내기 때문에 모두가 잘 어울려 줘야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만들면 김치는 우리 입맛에 즐거움을 전해준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우려져 김치의 양념처럼 제몫을 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한때는 서로 어울리며 간까지 빼어줄듯 가까이하던 사람이 뒤에서 내 험담을 한 것을 알았을 때의 상실감은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고 했지 않았는가. 

 

 

  우리 주변에는 늘 사건 사고가 일어난다. 때로는 사소한 이유로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이도, 또 큰 사건으로 키우는 사람도 있다.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 보면 별게 아닌데 말이다. 때론 무심코 내뱉은 말이 배로 되어 본인에게 돌아오기도 한다. 남의 아픔을 수용하진 못해도 이리저리 퍼트리고 다니지 말았으면 한다. 누구를 대상으로 삼고 괴롭히면 그사람을 둘러싼 세상의 편견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을 잘 참고 견디면 주위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는다. 모든 시간은 곧 사라진다. 훗날 자신을 되돌아보았을 때 이 순간이 소중했다는 것을 깨달을 거다. 두려움과 함께 산다면 그것은 지옥일 게다. 두려움과 고통없이 살아야 최고의 삶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인간관계가 원활치 못한 데서 비롯된다고 했다. 남의 단점을 포용할 줄 아는 이가 여유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많이 가졌다고 잘난 것도 아닌데 몸도 마음도 지나가면 별거 아니었던 것을 인정하면 안될까. 세상을 보는 올바른 시각과 풍요로운 지혜를 품으며 겸손해질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한다.

 

  버무린 김치를 통에 담으며 한 가닥 입에 넣는다. 싱겁거나 짜지도 않고 적당히 매콤하면서 단맛의 여운을 느길 수 있는 담백한 맛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다. 적당히 어우러진 양념과 싱싱한 배추가 입안에서 아삭거린다. 갓 지은 흰쌀밥에 얹어 먹으면 그동안 잃은 입맛이 돌아오려나.

  오늘 김치를 담그며 배추 한 포기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 김치는 다양한 용도로 나의 밥상에서 기쁨을 줄 것이다. 배추 한포기도 제 역량을 다하는데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힌 사람간의 관계도, 서로에게 불편한 마음을 나누기보다는 서로 배려하고 진실로 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배추만도 못한 인간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시간은 빛의 속도로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다. 머지않아 곧 사라질 우리의 삶. 후회없는 삶을 살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