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대가리
그 애가 태어나자 시어머니의 첫마디가 호박 대가리가 나왔다고 했다.
아들 손자를 끔찍이 원하셨던 시머머니는 시누이랑 통화하면서 홧김에 내뱉은 말이다. 시부모님은 늦둥이 막내아들인 남편한테서 아들 손자를 많이 원하셨다. 위로 두 형이 딸만 있기 때문이다. 임신 6개월이 넘어서자 내 몸이 아들을 가진 몸매라고 단정 짓고는, 그때부터 데리고 나가 맛있는 것도 사주고, 임신복도 예쁘다고 눈짓만 하면 몇 벌씩 사주시고는 했다. 막달에 들어서자 아기 이불도, 베게도, 배냇저고리 모두 파란색으로 준비해주셨다. 기대했던 아들이 아니고 딸이 태어났으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셨겠지만 그 말을 듣자 화도 나고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날부터 가시방석에 앉아서 몸조리를 하려니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난산으로 낳은 아기를 보면 안쓰럽고 마음이 저려와 한 번 더 안아주고 쓰다듬었다. 그날 병원에서 여러 명의 아기가 모두 아들이었고 나만 딸이었다. 남편은 시아버님께 딸이래도 섭섭하지 않으시다면 최고 유명한 작명가한테서 이름을 지어달라고 애교를 부렸다. 어머님께는 비싼 소꼬리로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했다면서 울고 있는 나를 달랬다. 이름도 비싼 작명가한테서 지었고 비싼 꼬리 미역국도 먹었지만 호박대가리는 변함없었다.
눈치가 보여서 산후 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열흘이 지나 시댁에서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친정엄마가 보고 싶었지만 이모부 장례식을 다녀오셔서 아기한테 안 좋다고 오시지 못했다. 가사도우미를 불렀지만 경험이 없어서 전혀 도움이 안 되다. 퉁퉁 부은 몸으로 우유병을 열려니 손가락이 접힌 채로 펴지질 않아서 애를 먹었다. 다리는 마치 바람이 뼛속을 뚫고 드나드는 것처럼 참을 수 없는 아픔의 고통이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산후풍이라 해서 일 년을 넘게 고생을 했다. 지금도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건강이 좋지 않다. 한 달이 지난 후 친정엄마는 산모에게 좋다는 한약과 여러 가지 챙겨오셨지만 그동안 받은 고통에 원망을 많이 했다. 시어머니가 호박 대가리라고 불렀다며 하소연을 하니, 친정엄마 역시 아들을 바라셨는지 한술 더 떠 총각무같이 생겼다며 놀렸다. 엄마는 웃기려고 했지만 난 도무지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천사 같은 아기한테 어른들은 너무하신다고 하면서 아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볼 태기가 통통하게 삐져나온 게 알타리무 같았다. 아이를 생각하니 앞날이 캄캄했다.
백일쯤 되니 아기가 지적으로 생겼다고 시누이가 말해줘서 위로는 되었지만, 두 돌이 넘도록 아들처럼 야구 모자와 파란 점퍼를 입혔다. 여자아이가 이대로 자란다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던 철이 없는 엄마였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수십 번은 변한다고 하지 않는가. 세 살이 되어 제법 머리도 길러 양 갈래로 묶어주고 드레스도 입히니 같은 아파트에 사는 광고회사 PD가 CF에 내 보낼 의향이 없는지 물어왔다. 같은 해 미국으로 이민 와서 유치원에 보냈는데 모 신문사에 예쁜 어린이로 뽑혀서 세상에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드러났다. 자라면서 아이는 눈에 띄게 예뻐져서 주위에 눈길을 끌었다. 호박은 한국에서는 못 생겼다는 의미지만 미국에서는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애칭으로 펌킨이라 많이 부른다. 시어머니가 부르는 호박 대가리는 그 후에도 어려서는 피아노 회사에 모델로도 뽑히고 커서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도 권유받았다. 난 어느새 예쁜이 엄마로 불려졌다. 온 가족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공항에 마중 나온 시어머니께서 가장 눈에 띄는 예쁜 아이가 우리 애라고 해서 모두 웃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전교 회장 선거운동을 하고 다니더니 중학교, 고등학교 전교 회장을 하면서 졸업식 때는 상을 휩쓸었다. 한국 학부모들이 모두 부러워할 정도로 내 자존심을 한껏 올려주었다.
뛰어난 외모는 아니지만 보는 이들이 예쁘게 봐주는 게 자랑스럽다. 특유의 빛을 내는 예쁜 딸이다. 남을 위해 베풀 줄도 알고 봉사도 몸 아끼지 않고 어른들 잘 섬기는 딸이다. 남보다 더 가졌으면서도 자랑하지 않고 있는 척 내색하지 않으면서 남을 유쾌하게 만들어준다. 두 아이도 적절한 훈육으로 잘 키우면서 남편의 내조에도 최선을 다하는 사랑스런 엄마이면서 아내이다. ‘호박 넝쿨과 딸은 옮겨 놓은 데로 간다’는 말이 있듯이 시집가서 시부모님한테서 복덩어리 소리 들으면서 사는 게 내게는 최고의 행복이다. 딸은 호박이 맞다. 영양가 많고 달달하면서 껍질에서 씨까지 어디 한군데 버릴 곳이 없는 알짜배기다. 호박을 넝쿨째 빼앗겼지만 생각을 바꾸어보면 억울하기보단 자랑스럽다. 언젠가 “네 별명이 호박 대가리였는데 섭섭하지 않았니?” 라고 물으니 “어렸을 때 사진에는 정말 못생겼는데 지금 예뻐져서 괜찮아” 하고 당당하게 말했다. 씩씩하고 당차게 자라 자존감이 강한 그 애를 보면 대견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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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호박 대가리라는 별명의 의미를 알고 주눅이 들거나 부끄럽게 생각해서 소심하게 컸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도 하기 싫다. 무심히 뱉은 어른들이 불러준 호칭에 상처를 받았지만 아이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었다. 호박이었지만 예쁜이로 자라 진가를 발휘하는 내 딸. 나는 요즘 그 애를 의지하고 산다. 남편이 떠난 뒤 그 빈자리를 채워주고 부족함이 없이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는 딸이자 남편의 역할까지 떠 앉고 나를 많이 아껴준다. 자주 전화해주는 것도 고맙고, 시간을 내 찾아와 함께 쇼핑하고 맛있는 것 먹으면서 친구가 돼주는 것도 고맙다. 내게는 늘 감동을 주는 특별한 딸이다.
오늘도 아침 일찍 같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호박 대가리가 자랑스럽다.
멋진 '펌킨'을 두셨네요!
즐겁고 힘이 넘치는 기운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