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가져다 준 성찰
김카니
왼쪽 무릎이 많이 아프다. 식은땀이 흐르고 다리는 접힌채로 통증이 심하다. 아픔은 순간에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극심한 통증은 초저녁부터 시작하여 자정이 넘어 새벽까지 계속 되고 있다.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야 하는데 시간은 왜 이리 더디게 가는지 한숨만 나온다. 울컥 치미는 서러움. “왜 하필이면 혼자 있을 때람.” 약 두달을 애완견과 함께 머무른 둘째 딸은 이틀 전에 뉴욕으로 돌아갔다. 사위와 두 손자를 데리고 와 3주를 복닥거린 큰 딸도 지난주에 떠나갔다. 뒤치다꺼리를 나 혼자서 다 떠맡았으니 고장이 날 만도 했다.
블라인드 사이로 희미하게 새벽이 열린다. 친구가 놀라서 전화를 받았다. 울먹이며 지금껏 살면서 최고로 아픈 것 같다고 하니 단번에 달려왔다. 휠체어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접수를 끝내고 건물밖에 임시로 세운 텐트 안으로 안내됐다. 밤새 환자에게 지쳐있는 의사는 유니폼 위에 빛바랜 쥐색 후두재킷을 걸쳤다. 머리는 헝크러지고 면도는 언제쯤 했는지 코 밑에 수염이 송골송골 올라왔다. 나는 밤을 새울 정도로 아파서 심각한데 의사는 몇 마디 안 하고 X레이 검사를 받고나서 보자고 했다. 병동의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복도 침대 위 하얀 시트로 덮인 환자가 보였다. 그쪽은 코로나 환자가 있는 곳인 거 같았다.
그 순간에도 저 건너에서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고통으로 견디는 환자가 있다. 죽음은 삶과 결코 무연한 일이 아니다. 죽음이란 삶의 끝이 아니라 다음 생애의 시작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픈 것도 내 삶의 과정이다. 이 모두 겪고 품어야 할 숙제다.
의사는 목발과 무릎 보호대와 진통제를 처방해주고, MRI 오더를 내려주곤 자리를 떴다. 난생 처음으로 목발을 짚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주치의와 통화를 하니 관절 부위가 붓고 염증이 있다고 했다. 병명에 비해 통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정초부터 목발 인생이 되었다. 나쁜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슬며시 비집고 들어오나 보다. 살다 보면 두려움이 종종 현실이 될 때가 있다. 지금 나를 가장 불안하게 하는 건 훗날 무릎 수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다.
오른쪽 다리로만 버틴 지 열흘이 지났다. 통증은 거의 사라졌지만 불편함은 여전하다. 자신을 제대로 보살피려면 먼저 정신적으로 건강해야만 한다.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사람이 이상적이다. 재앙과 비극적인 사건이 이어지는 요즘, 깨달음을 하나 더 얻었다. 내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마음의 결함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사는 거다. 부와 명예를 가졌다 해서 성공한 게 아니고 삶을 건강하게 마감하는 것이 더 가치있지 않은가.
그래 억울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자. 내가 살아가면서 치러야 할 몫이다. 올 한 해동안 겪을 아픔을 이 고통으로 때웠다고 생각하고 싶다. 내가 약해지면 삶은 최악의 상황이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 달라지면 행복도 그만큼 달라진다. 거울 속에 비친 목발 짚은 내 모습 뒤에 빙긋이 웃는 건강한 나를 그려본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자. 올해의 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