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하루씩 하루씩 살아가기

김카니 / 수필가
김카니 / 수필가 

[LA중앙일보] 발행 2020/06/03 미주판 16면 기사입력 2020/06/02 18:23

‘스스로 행복하라’는 책을 읽었다. 행복이란 말은 말하기도 쓰기도 쉽지만 느낀다는 게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삶이 건강하고 보람되게 자신만이 만들고 느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 금방 한 일도 쉽게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몸 또한 자고나면 아픈 데가 여기저기서 툭툭 치고 나온다.

코로나19로 아이들과 전화하는 일이 많아졌다.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를 걸어와 "나갔다 들어오면 손을 자주 씻어라, 사람들 만나지 마라” 잔소리가 늘고 있다. 마치 손자들한테 하듯이 나한테 대한다.

특히 작은딸은 잔소리만이 아니라 꾸짖기도 한다. “엄마는 시니어야. 가장 위험하단 말이야.” 이 말이 가장 슬펐다. 그렇지 난 시니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가야 할 날이 적어지고 있으니 맞는 말이다. 딸의 잔소리를 관심, 사랑으로 받아드리기엔 섭섭함이 먼저 앞선다. 나는 아직 늙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는 마음을 헤아려 주면 안 되는지 성급하게 판단을 하게 된다.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도 모르는 나의 노년 생활이 그림처럼 머릿속을 지나간다. 행복하고 보람있게 노년기를 지낼 수 있다면 걱정이 없겠지만, 100세를 바라보는 세상이 된 지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내게는 숙제다. 나이 숫자가 하나씩 늘어날수록 잃어버리는 기억은 둘이다. 하루를 살아도 삶에 만족이 있어야 한다.

나만 모르는 내 모습은 어떤지 생각해 보았다. 지인에게 상처받은 일, 딸의 한마디가 서러움으로 느껴지는 일, 나이 먹어가면서 웃어넘길 일도 오해로 남는 일 등은 나의 부족한 성품 때문이다.

사소한 뒷말 정도는 웃어넘기는 여유도, 오해를 이해로 바꾸어 판단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갖고 싶다. 내가 꿈꾸던 나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닌데 하면서 또 하루를 산다.

언제부턴가 혼자가 된 나는 딸들의 사려 깊은 관심과 보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마치 부모가 아이들을 돌보듯이 바뀐 삶이 되어버렸다. 엄마가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바라는 딸들의 말을 마음에 담지 않기로 했다. 흘러가는 시간에 그냥 늙어갈 것이 아니라 행복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딸의 말을 오해 없이 여유 있게 받아드리기로 했다.

나이가 들면서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아야 한다. 거꾸로 가고 있는 나, 오늘이 내가 살아가야 할 삶에서 가장 어리고 젊은 나이다. 웃어도 하루, 울어도 하루, 감정 소비하는 데 시간 쓰지 않기로 했다.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하루를 늙어 지나가지 않게, 기억할 수 있는 하루가 쌓여가게 하자.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대로 노력하며 익어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소중한 것은 내 안에 있으니 소신껏 살자. 거꾸로 가고 있는 나의 모습을 챙기는 딸들의 효도를 여유롭게 받아들이며 그들의 사랑에 묻어가자. 살아 온 만큼 깨달음이 더해지기도 하고, 지나온 세월을 되새기며 추억을 자양분으로 삼는 시니어의 삶을 즐기자. 이것이 내게 주어진 삶의 몫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