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광장] 백세시대 효를 생각한다

김카니 / 수필가
김카니 / 수필가 

[LA중앙일보] 발행 2020/02/04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20/02/03 18:39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두 딸이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온다. 저녁 식사 예약은 물론 이틀 동안 스케줄을 이미 짜놓았다고 한다. 덕분에 예쁘게 보이려고 네일숍을 찾았다. 제이는 10년 전 미장원 오픈할 때부터 그곳에서 네일 일을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손톱을 정리하고 있는데 제이의 친정엄마로부터 연거푸 두 번이나 전화가 걸려 왔다. 양로병원에 계시는 엄마한테 일이 생긴 모양이다. 밖으로 나가 한참 동안 통화를 했다. 설사를 하는데 간호사하고 연결이 안 된다고 딸한테 하소연을 한 것이다.

제이의 엄마는 허리와 다리가 불편해 혼자서는 신체활동을 전혀 못하기 때문에 작년에 양로병원에 입원하셨다. 딸 부부가 풀타임으로 일하므로 어쩔 수가 없었다. 그곳에 보내 놓고 안쓰러운 마음에 하루 건너 먹을 것을 사들고 찾아간다. 제이의 엄마는 양로병원에서 종달새 할머니라 불려진다. 누워있으면서도 정신이 멀쩡하고 말이 많다고 하여 만들어낸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친정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한국에 계시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어서 안타깝다. 작년에는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바람에 세 번이나 다녀왔다. 그래도 뇌경색 후유증으로 인해 몸을 못 쓰거나 치매가 생긴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누워서 음식을 받아먹고 대소변을 받아내어도 자식만을 알아보면 좋겠다. 엄마는 잘 듣지를 못하셔서 말 하는 것을 일부러 피한다. 정신은 아직 또렷해서 기억력은 좋은데 기력이 없어 누워만 있다. 그래도 병원 가까이에 삼남매가 살고 있어서 안심이다. 언제부터인가 한밤중에 남동생한테서 카톡이라도 오면 깜짝 놀라 가슴이 뛴다. 나쁜 소식인가 싶어 두렵다.

제이의 걱정이 우리 자식들의 공통된 걱정이며 고통이다. 친정 엄마는 기력이 극도로 떨어져 말도 못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우리 곁에 오래 계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건강이 조금이라도 회복되어 그 사랑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감당하기 어려운 이별의 시련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으면 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살다가 생명이 다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가족과의 마지막 이별은 정말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엄마는 곧 90세 생신을 맞는다. 옛날 조선 시대에는 90세 이상의 백성에게 은전으로 주던 벼슬이 수직이라고 있었는데 지금도 비슷한 게 있으면 좋겠다. 어머니의 건강이 허락된다면 찾아가 구순연을 크게 차려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마음은 가까이에 있는데 너무 멀리 떨어져 사는 게 안타깝다.

인생의 즐거움도 모르고 시부모를 모시고 오남매를 잘 키워낸 엄마는 어머니로서 최우수상 감이다. 부모가 자식을 끝없는 희생과 사랑으로 키웠다면 자식은 그 반도 되돌려 갚지 못하고 만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영원한 짝사랑이다.

두 딸이 생일을 축하해주려고 멀리서 찾아와주는 것만 해도 큰 행복이다.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건강하고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평균 수명이 100세를 넘는 시대가 열렸으니 아직 살 날이 많다. 오늘도 나는 힘차게 러닝머신에서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