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트(Palette) 위의 열정
이희숙
해마다 어린이와 함께 작품전시회를 준비한다. 그들은 서투른 고사리 손놀림으로 작품을 만들어낸다. 자신만의 빛깔을 뽐내며 자태를 선보인다. 비뚤어진 눈, 코, 입에도 각자의 개성이 숨겨져 있다고 할까. 짜인 틀이 아닌 백지 위에 제멋대로 그리는 것을 아이는 더 좋아한다. 긋는 선 하나만으로 다른 형태의 사물 모양을 그려낸다, 같은 그림은 없다. 아이는 새롭고 독특한 생각을 표현하기에 나는 그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창의력을 엿본다.
창의력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요구되는 인간의 능력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힘을 말한다. 이미지를 새롭게 연결하여 그림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이 또한 훈련을 통해 키워갈 수 있기에 나는 프리스쿨 교육목표에 포함한다.
어린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고른다. 작은 손으로 크레파스를 쥐고 흰 종이 위에 문지른다. 밑그림 위에 색채를 덧입혀 생각을 그림으로 완성한다. 다채로운 색깔 중 자기만의 색을 선택하여 붓에 바르기도 한다. 붓 길이 닿는 곳에 서로 다른 색 물감이 묻어 어울린다.
우리 또한 자신의 고유한 색을 발하며 살아간다. 그 색이 모이는 곳, 팔레트는 물감을 짜 놓은 판이다. 빨강, 파랑, 노란색이 판 위에 놓인다. 독특한 자신의 색을 가지고 있어 독창적인 성격을 내기에 충분하다. 더 나아가 원색이 합하고 섞여져 이차원의 색조를 만들어낸다. 무한히 솟구치는 창조의 샘일까? 자신이 원하는 색을 산출하기 위해 화가는 끊임없이 시도한다. 열정을 다해 덧칠하고 긁어내기도 한다.
인생도 팔레트 위에서 섞여진 조합이라 여겨진다. 모든 자연에는 조화로운 빛깔이 있다. 어릴 적 부르던 동요가 생각난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파랄 거여요. 파아란 하늘 보고 자라니까요 .... 겨울엔 하얄 거여요. 깨끗한 마음으로 자라니까요."
기쁠 땐 노랑, 슬플 땐 푸른색, 소망이 넘칠 땐 초록빛으로 물든다. 봄에 꽃이 피면 분홍빛, 새싹이 트면 연두색, 짙푸른 녹색으로 젊은 활기가 돋보인다. 결실되면 주황빛으로, 나이 들어 가을의 계절이 되면 갈색으로 칠한다. 역경 속에서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회색빛으로 휘몰아친다. 빛이 사라져 검은 암흑으로 절망과 두려움을 주는 시절도 있다. 추운 마지막 계절엔 하얀색으로 뒤덮인다. 빈손으로 돌아가듯이. 나도 예외 없이 많은 색을 만들며 인생 계곡을 지나간다.
게다가 빨강과 파랑 두 색이 합쳐 예상치 못한 보랏빛 꿈을 연출한다. 우리 내외가 만나 가정을 이루었을 때 무지개가 뜬 것처럼. 가정에 자녀는 일곱 색으로 구성된다. 두 딸은 각자의 색을 가진 채 조화되어 살아간다. 큰 애는 배려심 많게, 둘째는 막내답게 창의적으로 도전하며 무지개를 그린다. 무지개가 비가 온 후 태양을 등지고 물방울 입자가 굴절되어 빛을 발하듯이 부모의 사랑을 배경으로 개성 있는 삶을 아름답게 살아간다.
언제였던가 넋을 놓고 쳐다보았던 데스밸리의 아티스트 팔레트 (Artist Palette)가 뿜어내던 색조가 보이는 듯하다. 언덕마다 저마다 다른 고유한 빛을 품고 있었다. 나무가 자라지 않는 산에서 각기 다른 광물질이 산화에 의해 만들어진 색조가 햇빛의 각도에 따라 다르게 발산되었다. 환상적인 색조를 품고 있는 계곡을 운전해 지나갔다. 화산활동과 침전물로 만들어진 여러 색깔의 언덕으로 인하여 감탄을 자아냈다. 시간마다 색깔은 변했다. 산등선 굴곡에 숨겨진 신비로운 색채에 삐져 예술가의 팔레트를 연상했다. 무한한 색의 변화와 가능성이 숨어 있던 그곳을 인생의 여정에 비유하고 싶다.
살면서 소나기를 만나기도 한다. 갑작스러운 일에 대처할 겨를도 없이 빗방울에 몸을 적신다. 어려움을 몸으로 맞으며 담담히 지나간다. 소나기가 그친 후 아름다운 하늘 다리가 펼쳐진다. 고난을 이겨낸 찬란한 환희다. 창조주가 노아 시대에 언약을 세워 생명을 약속하셨던 무지개를 마음속에 품어 본다. 약속을 이루기 위한 나의 빛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빛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창조주와 피조물이 하나가 되어 그 뜻 속에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팔레트 위에서 나의 색채를 만들어 간다. 열정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