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일에 비친 한인의 긍지
이희숙
7월 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다. 거리와 주택은 성조기로 장식되어 화려한 물결을 이룬다. 별과 줄무늬의 파란색은 단결, 빨간색은 희생, 흰색은 충성을 의미한다. 또한 별은 50개의 연방 주를 상징한다.
성조기 문양으로 디자인한 의상, 양말, 모자를 쓰고 길거리를 많은 사람이 당당하게 활보한다. 애국심을 증명하듯. 거리에서 퍼레이드를 펼치는 곳도 있다. 밤하늘을 현란하게 수놓는 불꽃놀이가 진풍경을 이룬다. 이 축하 행사를 국민의례로 시작하는 애국심도 볼 수 있다. 동네 여기저기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뿔싸 우리 강아지에게는 그 소리에 놀라 구석으로 숨는 공포의 날이기도 하다.
각종 연주회를 한다. 여름밤 야외 할리우드 볼에서 울려 퍼지는 교향곡과 어우러진 불꽃은 인상 깊게 뇌리에 저장되어 있다. 독립의 의미를 강렬하게 남긴다고 할까. 여러 행사를 통해 화끈하게 자축하는 국민성이 멋있다. 미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이 대단하다. 아니, 그렇게 조성하는 숨겨진 힘이 큰 대륙을 움직이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 프리스쿨은 항상 태극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게양한다. 행사 땐 두 나라의 국가를 부른다. 외국 어린이도 힘찬 목소리로 “동해 물과 백두산이...” 열창한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 모범적인 미국 시민이 되기 위한 바람이다. 2, 3세들을 위한 교육목표가 되기도 한다.
미국 독립기념일은 모든 국민이 기다리는 휴일이다. 일상 범주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 내외는 배낭을 메고 나선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찾아 걷는다. 새로운 도전은 삶의 의욕을 주기에 발걸음 가볍게 출발한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독립 국가로 일어서기 위해 고진 분투했던 개척자 정신으로. 땀을 흘리며 정상을 향해 오른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내딛는 발걸음이 무겁지만, 깃발이 휘날리는 정상이 보일수록 박차를 가한다.
마침내 정상에 올라 큰 숨을 내쉰다. 힘들었던 모든 상념을 날려 보낸다. 산 정상에서 멀리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본다. 하늘과 바다 색깔이 닿은 경계에서 푸른 기운이 솟아오른다. 청 쪽빛으로 마음을 씻으며 정기를 담는다. 저만치 카타리나 아일랜드가 보인다. 너른 바닷길이 이어지는 태평양 건너편에 고국이 존재함을 인식한다. 이상을 찾아 태평양을 헤엄쳐 왔던 젊은 꿈을 떠올리며.
아시아 동쪽에 자리를 잡은 두 동강 난 작은 반도가 우리 고국의 현주소다. 스스로 약소 화하지 않고 잠자는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교민들이 부단히 애쓴다. LA 폭동이라는 시련과 상처를 딛고 문화와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이웃 커뮤니티와 협력하며 아시안 증오범죄 등 인종차별에서 오는 어려움을 극복하려 애쓰고 있다. 같이 일하기 위해 스페인어를 배우고 히스패닉 대표 음식인 ‘타코’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해서 ‘불고기 타고’라는 음식의 융합을 이루는 모습을 본다.
몇 년 전 이곳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의 결집력을 보여주었다. 리틀 방글라데시 주민의회 구역 확정안에 대한 찬반투표에 절실한 마음이 되어 하나로 뭉쳤다. 한인타운이 반으로 쪼개진다는 현황에 잠자던 한인 의식을 일깨웠다. 한인타운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로 투표장에 문 열기 세 시간 전부터 오후 일곱 시가 넘어서도 줄은 끊이지 않았다. 계몽과 자원봉사를 통해 모두 일어섰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까지 휠체어를 타고 나오셨다. ‘한인타운은 우리가 일군 곳이다.’라는 1세와 ‘내가 자랐고, 성장에 영향을 준 공간인 고향을 지킨다.’라는 2세의 참여 정신이 세대 차를 넘어 한데 뭉친 것이다. 압도적인 부결로 한인타운을 지켜낸 감동을 어찌 잊으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고 할까. 한인의 숨겨진 저력을 보여 자존심을 지켰다.
1월 13일을 ‘미주 한인의 날’로 제정하고 1903년 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하와이에 첫발을 내디뎠던 한인의 미주 이민사를 기념하고 있다.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동시에 시의원과 시장 출마 등 한인 정치력이 신장하고 있다.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성장을 거듭하여 한인의 위상이 높아진다. 이에 시민의식과 참여 의식을 갖추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덕분에 다민족 학교인 우리는 성조기와 함께 태극기를 자랑스럽게 게양한다.
긴 역사 속에서 단일 민족의 긍지로 강대국의 침범에도 굴하지 않고 고난을 견뎌오지 않았던가. 대한민국의 긍지를 기려본다. 바위에 부딪히는 힘찬 파도의 기상을 닮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