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힌 하수구와 마음속 응어리

                                                                                          (2.14. 2020 중앙일보 이아침에 )

                                                                                                                     이희숙

 

 

  물이 거꾸로 올라온다. 우리 학교 건물에 발생한 사고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이치인데 하수구가 왜 막혔을까? 수돗물을 잠그며 기다린다. 시간이 지난 후 조심스레 손잡이를 눌러본다. 이번엔 화장실 변기의 물이 내려가질 않는다. 그 물이 변기 위로 넘쳐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순발력을 동원해 밸브를 잠근다. ~ 옆 화장실에서도 물이 흐른다. 바깥 메인 배수관에서도 물이 위로 치솟는다. 더러운 변기와 시궁창의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흘러나온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아연실색한다.

 

  변기가 많은 건물 관리의 애로사항이다. 원장이 사소한 배관(plumbing) 문제는 손을 볼 줄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화장실에 앉아 두루마리 휴지를 술술 풀며 신나게 노는 아이가 있다. 자기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변기통에 집어넣는 경우도 종종 있다. 때로는 아이의 변비에 의해 유아용 변기의 좁은 통로가 막히기도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어린이와 생활하면서 배수관으로 인해 겪는 경우의 예다. 놀랍지도 않은 빈번한 사건이지만 그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대걸레로 닦아내며 어린이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말리며 통행을 차단한다. 전화를 걸어 배관공을 부른다. 내시경 역할을 하는 배수구 뚫는 기계를 가져와 열심히 돌린다. 끝에 드릴이 붙어 있는 오거 와이어 (Auger Wire) 배수 관통기이다. 배수관 속을 지나가며 걸리는 방해물을 잘라내며 뚫어주는 최신 장비이다. 70 피트(feet) 길이까지 들어갔는데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한다. 오랜 시간 동안 수고했지만, 성과가 없다. 배관공은 더 큰 회사의 기계가 필요하다며 포기하고 간다. 오늘 과연 퇴근할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상업용 배관 회사에 긴급상황이라고 전화한다. 다행히 급한 소리를 한 덕분인지 1시간 후에 도착한다. 나는 제일 먼저 길이가 얼마인지를 묻는다. 200 피트 길이의 기계라 하니 충분하리라. 내심 안도의 숨을 쉬며 믿어본다.

 

  30분 후에 배관 속이 시원하게 뻥 뚫린다. 150 feet 거리에서 나무뿌리가 걸려 나온다. 굵고 가느다란 뿌리가 관통기에 엉겨 붙어서 올라온다. 이 동네가 옛날에 오렌지 농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을 섭취하기 위해 뿌리를 멀리 뻗는 생존력이 감탄스럽지만, 큰 나무가 있어 어려움을 겪는 다른 면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작품상을 포함해 4관왕으로 한국 영화의 위상을 떨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혀 다른 형태로 살아가는 두 집단이 있다. 영화 속에서 빈부의 대조적인 상징을 여러 소재로 의미를 전달해준다. 특히 빈곤층의 실상을 지하에 사는 가정집의 비 피해와 물난리로 보여준다. 아래 계단을 밟고 내려가니 변기에 흙탕물이 솟구친다. 그 모습을 보며 역겹게 생각하지 않았던가. 가족사기단의 최후의 벌로 연출된 장면이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사후 처리가 걱정되어 잠을 설친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클로락스(Clorox) 한 통을 다 쏟아부어 소독해도 개운치 않다. 방법을 궁리한 후, 바깥 운동장의 매트를 다 걷어내고 호스를 연결해 바닥부터 대청소한다. 검은 물이 말갛게 변하니 마음이 놓인다. 추운 날씨에 겉옷을 벗어 재치고 땀을 흘린다. 더러운 물과의 씨름이 끝난다. 배수관이 시원하게 뚫린다.

 

  불현듯 '내 마음속도 막힘없이 뚫려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염려와 걱정으로 꽉 막혀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응어리져 막혀 있는 관계가 있지 않을까? 오염된 생각도 자리 잡고 있을 테다. 누군가 몸 밖으로 나오는 것보다 안에 있는 것이 더 더럽다.’라고 한다.

 

  강력한 힘으로 관통시키고 소독물로 씻어 주어야겠다. 시원하게 마음이 뚫리도록.

 

 

 

 2. 14.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