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타기(Surfing)
이희숙
손자는 어릴 적 파도타기를 좋아했다. 몰려오는 파도를 리듬 타듯 올라타며 물살에 묻히면서도 보드에 엎드렸다. 밀려오는 푸른 등줄기에서 아찔한 속도를 즐겼다. 햇살에 번뜩이는 물빛과 어우러져 피부가 까맣게 그을리면서 꼬마는 반복해 도전하며 한 낮을 만끽했다.
파도는 대양에서 중력, 바람, 밀물과 썰물의 영향에 의해 일어나는 물결이다. 하얀 포말을 그리며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밀 당긴다. 밀려오는 힘찬 물살이 파도를 마구 일구어낸다. 육지에 다가와 바위에 부딪히며 하얀 거품을 뿜어내기도 한다.
서퍼(surfer)는 파동, 바람의 방향에 따라 앞을 향해 나가거나 이동한다. 널(board)을 이용하여 파도 위에 올라야 한다. 무서워하지 않고 두려움을 떨쳐버린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는 손자의 모습. 긴장하는 기색이 없다. 꼬마는 일찍이 모험의 매력을 알았을까. 새로운 곳을 향하기 위해 먼저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것을 자연스레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그는 코로나 팬더믹 상황일지라도 겨울방학 동안 태평양 한가운데 마우이섬 Hokiokio에서 도전해본다. 정식으로 레슨을 받으며 기본자세를 연마한다. 첫 단계로 균형을 잡고 서야 하는데 양팔과 다리를 벌려야 발란스를 잡기 쉽다고 한다. 이때 아래를 내려다보지 말고 눈은 파도를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려면 앞으로 다가오는 상대를 직시해야 한다고 할까. 적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생의 깊이에서 오는 강한 고통을 감수해야 옳고 풍성한 삶을 이룰 수 있다. 의를 행하기 위해 나아가는 세상 속으로의 도전을 통한 극복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넓은 바다는 역동적인 한 모멘트로 감정을 가진 생명체인 듯싶다. 달라지는 날씨에 의해 하늘과 바다는 한마음 되어 서로를 전한다. 찬란한 햇빛을 반사해 환희로 가득 차다가도 갑자기 어두워져 검정빛으로 분노하며 비를 쏟아내기도 한다. 마치 인생의 항해처럼. 서퍼는 이런 변화무쌍한 날씨를 뱃머리에서 부딪혀 맞아내는 것이다.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선택해 여러 상황과 마주하며 가는 것이다. 여기에 옳고 그름을 가를 수 있을까. 우리 삶은 창의적인 타기(ride)를 통해 숭고하고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다.
잔잔한 물결이 거센 바람에 의해 거친 파도를 몰고 온다. 높은 산 같은 물이 밀려올 때도 있다. 집채보다 더 큰 파도가 벽처럼 덮친다면 난 어찌할 것인가. 쓰나미를 다룬 영상을 보며 공포에 싸인 적이 있다. 큰 파도는 몹시 놀라게 하는 이미지나 비참한 이야기로 그려진다.
위기를 맞는 순간에 오싹한 스릴, 소름 끼치는 공포를 이겨내는 노력과 작업이 필요하다. 가장 극단적인 순간에 조물주와 의사소통해야 하는 함을 절실히 느낀다.
파도가 진짜 클 때 서퍼는 그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는다고 한다. 어찌할 바 모르는 인간은 자연의 힘에 자신을 맡기고 그 품에 안길 수밖에. 태풍이 불 때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가운데 작은 구멍이 있는데 이것을 태풍의 눈이라고 한다. 중심에 가까울수록 원심력이 세어지기 때문에 중심은 조용한 기상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무풍지대와 같이 소용돌이 중심부에서 평화를 맛본다는 이율배반적인 사실을 깨닫는다. 그 순간을 찾는 자연과의 조화는 사람과 신의 관계를 의미한다. 깊은 내면을 규제하는 힘보다 강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큰 속도에 도전해보자. 밀려오는 파도의 힘을 이용해서 더 힘차게 전진하여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Let's try it!
구름 속에서 얼굴 내민 달빛이 백사장을 고요하게 비추고 있다. 북적이던 피서객이 모두 떠나가고 아이들은 엄마를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 파도도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적막 속에서 밀려오는 파도는 모래사장에 흡수되는 듯하지만 되돌아 넓은 세계로 나간다. 역사의 흐름과 진리는 그렇게 반복해 왔다.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에 맞추어 할머니는 읊조린다.
'타 문화 속의 소수 민족으로서 새로이 창조된 고유하고 풍부한 숨결을 숨 쉬며 자라나거라.
파도를 올라타는 기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