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의 땀
이희숙
떠나는 여름이 기승을 부린다. 더위가 절정에 올라 수은주가 화씨 95도를 넘나든다. 노동절 연휴 아침 교외의 넓은 축구 경기장으로 향한다. 손녀가 Labor Day Tournament의 결승전 경기를 하기 때문이다. 말할 나위 없이 손주의 행사는 가족 순위에서 첫 번째다. 우리 내외는 넓은 챙 모자를 쓰고 얼음이 든 물통을 들고 손녀를 응원하기 위해 차로 달린다.
손녀는 아직 응석을 부릴 나이로 열 살, 초등학교 5학년이다. 가늘고 연약해 보여 늘 마음이 쓰였던 꼬마가 부쩍 커서 이제 내 어깨를 견준다. 발도 자라서 내 발보다 훨씬 길쭉하다. 자라는 속도가 빠른 탓일까.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뛰는 탓에 운동화는 금방 닳아 낡아져 일 년에도 몇 차례씩 새 신발로 바꿔 줘야 한단다. 나를 포옹하는 어깨가 제법 넓어지고 단단하여 대견스럽다.
Kindergarten부터 발레 대신 약한 체력을 증진하기 위해 오빠를 따라 시작한 축구다. 처음엔 공을 따라 달려가는 것도 벅차고 공을 상대방에게 패스하는 방법도 몰라 절절매었는데 이제는 멋진 경기를 하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훈련과 연습을 거쳐 발전을 거듭해 온 것이다, 작은 여자아이가 뙤약볕 아래에서 피부는 숯덩이처럼 타서 반들반들 빛나고, 땀을 흘리며 필드를 달린다. 자기 위치에서 상대편 공을 방어하며 공격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여자 어린이로 구성된 팀으로 토너먼트에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한 결과 결승전까지 진출한 것이다. 두 팀의 실력은 겨루기 어려울 정도로 팽팽하다. 여러 번의 좋은 기회를 놓치고 골을 넣지 못한 채 열전을 펼친다.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땀이 나게 한다. 머리에 찬물을 끼얹으며 뛰는 아이도 있다. 우렁찬 부모의 응원 소리가 경기장을 꽉 채운다. 전반전과 후반전이 모두 아쉽게 흐른 채로 무승부다. 연장전으로 이어져 선수들은 전력을 다해 집중한다. 지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경기를 보며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그동안 손녀는 새로운 분야를 도전하며 남과 더불어 팀워크 하는 방법을 배웠다. 한 골을 만들기 위해 서로의 호흡을 맞추어 건네주고 뛰며 목표를 향했다. 축구는 뛰어난 개인 능력이 돋보이는 경기가 아니라 팀워크를 통해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어릴 적 우리가 많은 형제 틈에서 자연스럽게 배우던 양보와 협력을 이곳에서 배울 수 있다. 서로 패스하여 골을 만드는 전략이 축구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덥든 춥든 날씨에 관여치 않고, 일상을 훈련하며 고달픈 도전을 계속했다. 연습을 통해 자신에게 부족한 면을 숙달시키고 동작을 반복하여 집중적으로 보완했다. 훈련은 선수가 기술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집중력과 긴장감이 최고에 달한다. 이런 연습과 훈련이 선수를 강하고 하고 경기력 향상을 가져온다는 것이 당연하다. 더불어 부단한 노력을 통해 그 아이가 목적에 골인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언젠가 경기에 졌다고 슬퍼할 때도 있었다. 꼬마 선수는 눈물을 닦으며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달렸다. 실패에 강하게 다져지며 탄력 있는 회복으로 끊임없는 성장을 가져온 결과라 할까. 앞에 놓인 장애물을 스스로 헤쳐나가는 노력의 결실을 기대해 본다. 고생하는 손녀가 안쓰러워 인제 그만하라고 말한 내가 부끄러워진다.
몇 분 후 손녀가 패스한 공을 다른 선수가 이어받아 골대를 향해 힘차게 찼다. 공이 골대 깊숙이 파고들었다. 끝내 힘차게 뻗은 발밑의 공은 골대 안으로 파고들어 환희의 골을 얻어냈다. 우~아! 한 골을 얻는다. 경기 종료 호루라기가 울리며 1대 0으로 우승을 한다. 마침내 금메달을 걸머진 것이다.
땀을 흘리고 의지로 다진 값진 성취다. 거저 되는 것은 없다. 노력한 만큼의 결과라는 것을 할머니인 나는 잘 알고 있다. 학교가 끝난 후 숙제를 부지런히 마치고 일주일에 두 번씩 연습장으로 간다. 춥든 덥든 날씨와 기후에 상관하지 않고 뛰어야 한다. 주말엔 먼 거리 경기에도 출전한다. 쉬는 날에도 축구를 위해 온 가족이 시간과 열정을 바치는 중요한 행사가 된 탓이 아닐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 눈물과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금메달리스트의 눈물을 TV 인터뷰에서 본 적이 있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교훈을 되뇐다. 빈약한 신체적 어려움을 이겨내고 실력을 성장시킨 손녀가 자랑스럽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우승컵을 높이 쳐드는 선수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나는 금메달보다 더 큰 감동을 목에 걸며.